연말결산
2018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올해 본 공연들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아직 2017년에 본 공연들도 정리를 안한 상태였다. 그래서 예고편 겸 2017년의 밀린 결산을 이제서야 작성한다. 아래는 2017년에 본 공연의 목록이며 해시태그로 각각의 테마를 나누어보았다.
고상지 (0106), BABYMETAL (0111), Whitney (0116), MONO (0121), Bonobos (0212), Hom Shen Hao(0219),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 (0220), 실리카겔X파라솔 (0304), 줄리아드림, 호랑이아들들 (0318), Coldplay (0415), Ludovico Einaudi (0419), F.W.D, 75A, 신해경, 사람12사람, Room306 (0422), 뮤즈인시티 (0423), Live at 146 (0507),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 (0729), 오지은 (0805~0806), 검정치마 (0811), 서울인기 페스티벌 (0812),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0813), 서태지 (0902), 신해경, 새소년, 아도이 (0922), 김사월 (1001), SLOW LIFE SLOW LIVE (1007), 태민 (1014), 춘천시립교향악단 (1019),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1020), 줄리아드림 (1021), 새소년 (1118), 전자양 (1125), 박지윤 (1201), 실리카겔 (1202), 이랑 (1223) 단편선과선원들 (1228)
MONO의 라이브를 처음 보고, 들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온갖 생각이 떠올랐고 아무것도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다가 이걸 어떻게든 나누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좋다’라는 단어론 아무래도 부족해서 내 언어의 빈약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의 한 장면이 떠올랐고, 소노시온의 <두더지>가 많이 생각났다. "희망에 져버렸다"는 소노시온 감독의 말을 좋아하는데, MONO의 라이브를 보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망해버린 세계의 폐허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타를, 베이스를, 건반을, 드럼을 치는 것 밖에 없는 4명이 그저 묵묵히 연주를 하는 이미지가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10분이 넘도록 계속 울었다. 당시에 내가 느낀 감정과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는 것만 알겠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공중캠프라는 공간이 주는 정서가 정말 좋았다. 우연히 공중캠프의 홈페이지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한번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주는 무해하고 따뜻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사실 bonobos라는 밴드에 대해서 하나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공중캠프에 올라온 추천글 하나 읽고 일부러 음악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그리고 정말 눈물이 핑 돌았던 순간이 있을 정도로 좋았다. 좋은 공간에서 훌륭한 연주 뿐만 아니라 행복한 에너지를 주는 밴드의 음악, 그것을 오롯이 즐기는 팬들과 2시간 남짓의 시간을 보냈다. 작년부터 좋은 공연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좋은 공연이었다.
실리카겔과 파라솔은 원래도 좋아하는 두 팀이었지만 함께 하는 공연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첫 곡 시작마자마자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3월에 보자마자 2017년 베스트 공연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단독공연을 본 경험이 있기에 각각의 공연은 딱 알고있는 만큼 좋았는데, 두 팀이 함께 연주하는 순간 그 에너지가 무한대로 발산됐다. 특히 두명의 드러머가 함께하는 앙상블이 진짜 끝내줬는데, 때로는 주거니 받거니 때로는 함께 소리를 꽉 채우는데 몸 안에 불덩이가 나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vol.3도 무조건 가야지.
데뷔부터 음악을 들었지만 단독 공연을 본 건 처음이었다. 10년이 흐른 뒤 다시 10년 전 자신이 썼던 곡을 부르는 느낌은 어땠을까. 공연 중 오지은은 그 시기를 재현하는 것과 현재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것 중 고민을 하다 오늘은 후자를 택했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 선택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내가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내가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을 분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내가 이 공연이 좋았단 이유 중 하나도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팬의 마음'이라는걸 진짜 간만에 느꼈다. 마지막 곡으로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를 부르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벅찬 마음이 들었는지 오지은도 노래를 부르다 울음이 터졌다. 그걸 보는 나도 눈물이 나는데 부디 오랫동안 글과 곡을 쓰고 노래를 불러줬으면 했다.
시간여행자라는 컨셉으로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1집부터 9집까지 총25곡 정도를 새로운 편곡을 하지 않고 원곡 그대로 불렀다. 덕분에 서태지 음악을 6집부터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나는 진짜 시간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어린시절 놓쳤던 공연과 무대를 하루만에 몰아서 본 기분이 들어서 벅찼다.
정말 뻐킹매드니스한 공연이었다. 무대 위에서 리허설을 하나 라고 느껴질만큼 온갖 애드립과 불협화음, 음이탈이 난무했는데 그것이 이상한 지점에서 시너지를 내며 폭발하니 정말 오랜만에 페스티벌 라이브를 보여 희열을 느꼈다.
시규어 로스를 보러 갔지만 기억에 남은건 갈란트였다. 무대를 안방삼아(정말 방처럼 무대를 꾸몄다)몸을 흐느적대며 가성과 진성,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었다. 그의 몸짓과 함께 첫 음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크으” 하는 감탄이 나와버렸다.
코첼라에서의 라이브가 그렇게 멋졌다는 소문을 듣고 어느정도 기대는 했지만 과연 대단했다. 이병헌이 나왔을 때의 의아함과 간혹 텐션이 쳐지는 부분을 제외하면 한스짐머 특유의 박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노라존스 한 명을 보기 위해 갔다. 살짝 고민 했지만 안가면 후회할 것 같아 얼리버드를 구매했다. 덕분에 2005년 쌈싸페 이후로 다시는 페스티벌을 혼자 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어겼다. 긴 기다림 끝에 노라존스가 무대에 올랐고 그녀의 목소리가 첫 음을 떼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아서 울뻔했다. 아 이게 어린 시절 열광 했던 전설의 뮤지션을 실제로 맞닥뜨리는 기분이구나. 열심히 들어서 선명히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를 라이브로 들으니 너무나도 감격적이었다. 게다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비록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부르진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아마 이제 다시는 한국에 올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메탈리카 오프닝이라도 다녀온게 다행이다………….. BABY!!!!METAL!!!!!DEATH!!!!!!!!!!!!!!!!
아름다운 존재를 목도하는건 아름다운 일이다.
기타, 베이스, 드럼, 이 3인 체제에 푹 빠지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3인 밴드가 줄 수 있는 순수한 쾌감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