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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Oct 20. 2023

열녀를 위한 장례식 2

2023.10.27-11.05.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020년 이후, 제작이 요원해지며 <규방>의 시놉시스는 저의 하드 속에서 잠들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21년 말 즈음, 제가 속해있는 창작집단 ‘글과무대’는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사업을 준비하면서 극단에서 소속작가 4인의 신작 시놉시스를 준비하기 위해 회의가 진행됐죠. 기존의 ‘우리는 처음 만났거나 너무 오래 알았다’와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공동창작 작품이 공연되었지만, 작가 개인의 역량을 보여주는 자리도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이러한 기획이 진행되었습니다.

저 역시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놉시스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하드를 털어 여러 시놉시스를 가지고 (방판처럼) 연출님 앞에 늘어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규방>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글과무대의 대표인 이인수 연출님은 제가 제출한 여러 편 중에 <규방>에 한 표를 던지셨는데, 글과무대가 공동창작을 하는 집단인데, 공동창작을 하는 여인들 이야기를 한다니 재미있지 않느냐는 반응도 있었고,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소설을, 사실은 여인들이 썼다는 발상 자체가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배제되었던 여성들이 바로 언어를 통해 세상을 전복한다는 지점을 이인수 연출님이 주목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의 시놉을 포함하여 총 4편의 새로운 시놉이 ‘전복’이라는 주제하에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2017년에 시작된 글과무대라는 신생극단이 이런 큰 사업에 선정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아마 김윤영, 최보영, 황정은이라는 재능 있고 탄탄한 글을 쓰는 작가들과 드라마투르기, 번역, 연출 작업들을 이어온 이인수 연출님의 활동 등이 인정받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장기 사업 1년 차에 공동창작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와 최보영 작가의 신작 <그 여자 이야기>가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2년 차에 김윤영 작가의 신작 <번아웃에 관한 농담>에 이어 10월에 <규방>에서 이름을 바꾼 <열녀를 위한 장례식>이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생각보다 빨리 결정되었지만,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구상이었던 음악극이자 가족극으로서의 <규방>이 창작집단 글과무대의 지향성과 적합한가에 대한 긴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전복’의 키워드는 여전히 유효했지만, 문제는 단순 플롯의 가족극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으로 희곡화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러한 고민과 함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제작은 결정이 되었는데, 희곡이 써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그전에 <클래스>와 <배소고지 이야기>의 공연이 이어지고 또 다른 작업들이 산적해 있어 시간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희곡을 쓸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고민의 시작점에는 <규방> 시놉시스의 가장 문제적인 인물이자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인물 ‘헌’이 있었습니다. 시놉시스를 썼던 이후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 장애감수성에 대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연극계에서는 여러 시도와 필요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고, 공연환경 변화를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을 거치면서 제 안에서도 작은 동요가 일어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납작한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규방>의 인물인 양반 ‘헌’은 장애를 가진 인물로 시놉시스에서 그려졌을 뿐, 어떤 인물인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그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장애인 배우와 작업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을 뿐 아니라, 장애를 지닌 등장인물이 자신의 장애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직접적으로 말하게 하는 희곡을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잔뜩 겁을 먹었습니다.  최초의 구상에서 ‘헌’은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고, 박씨전에서 허물 벗는 모티브를 제시하는 인물이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어떤 몸을 가지고 있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이르자 제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헌은 누구인가?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가? 결정할 수 없음이 저를 계속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단순히 모티브를 위해 ‘헌’을 장애를 갖고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졌습니다.  글을 쓸 때 항상 두려워하는 점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ANAK을 쓸 때도 클래스를 쓸 때도 그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유난히 두려웠습니다. 저 자신의 납작한 인식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었겠지요.

     

그래서 ‘장애’가 아니라 같은 질병일지라도 ‘몸’보다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바꾸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전혀 다른 시간을 사는 조로증을 다루어보는 것은 어떤가? 이런 생각들도 있었죠. 그때쯤 김지혜 드라마터그를 만났습니다. 그때는 차 한잔 마시면서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죠. 저는 이런 시놉시스가 있고, 개발 중에 이러이러한 고민을 갖고 있다. 그래서 조로증을 공부하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문득, 너무 도덕적이고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현재의 몸을 벗어나기를 욕망하는, 장애를 지닌 인물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도 물었습니다. 그러한 인물을 다루는 것이 위험해 보인다고 해서, 피하려는 건 너무 쉬운 선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욕망은 나쁜가? 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미추에 대한 기준과 관점, 사회적인 편견, 몸에 대한 부정과 긍정, 장애를 바라보는 내부와 외부의 시선, 온도의 차이, 이해. 여러 생각이 뒤엉키면서 장애가 있는 몸은 ‘허물’이라고 인식할 것이라고만 짐작했던 제 납작한 생각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조금 사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꽤 오랫동안 제 외면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제 몸을 허물, 껍데기처럼 여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무척 아름답고, 부럽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몸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요.

더 넓게, 사람의 몸에 대해 생각하기로 하자, 그때부터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새로운 몸을 욕망할 수도 있고, 욕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몸이건 아니건 간에, 자신의 몸을 긍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저 자신의 경험까지 보태져, 허물을 벗는 모티브가 더 이상 헌에게 머물지 않고, 규방에 갇힌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허물이 벗어진다면 진짜 드러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있을 때, 보여주고 싶은 진짜는 무엇일까? 아마도 진실한 영혼의 모습이 아닐까, 신분과 계급, 성별과 장애의 유무, 성적지향성을 다 떠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 우리가 진짜 만나야 할 영혼의 모습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헌은 더 이상 허물 벗기의 모티브를 작동하기 위한 인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그 허물을 벗기를 원하는 인물이 되었죠. 헌은 그들 중의 하나이며, 가부장제에 갇힌 사대부 남성으로서 독특한 위치를 보여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곧 신강수 배우를 떠올렸습니다. <규방>은 이야기를 짓는 이야기입니다. 헌은 유려한 언어를 쓰는 이야기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배우이면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신강수 배우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추락2>나 <옥상 위 카우보이>, <당선자 없음>에서 보았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신강수 배우를 바로 만나보고 싶었지만 아직 생각들이 미처 다 정리되지 않았던 터라, 선뜻 연락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헛소리를 하면 어쩌나 실수하면 어쩌나 내 납작한 생각들이 들키면 어쩌나 내 얕음이 드러나면 어쩌나 하는 자의식 과잉 대폭팔의 시간을 1년이 넘게 보냈다고 하면 다들 뜨악해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 시간을 걸쳐 겨우 허물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동료 작가이자 보편적극단의 대표인 이보람 작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신강수 배우는 보편적극단 소속이었거든요. 이보람 작가는 주저하는 저에게 늘 그렇듯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한번 만나봐요!”     

그리고, 신강수 배우님과 만나기로 했습니다. 낯가리는 작가와 낯가리는 연출과 낯가리는 배우의 대환장조합. 우리가 밥이나 제대로 삼킬 수 있을지.     


<계속>     





<열녀를 위한 장례식>

2023.10.27-11.05.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진주 연출 이인수

출연 김주연 박소연 변효준 송인성 신강수 윤현경 이강우 이선휘 이현지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예약 창으로 연결됩니다 : )

아르코.대학로 예술극장

https://theater.arko.or.kr/product/performance/257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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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3014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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