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두나 Apr 20. 2019

#02. 공사다망, 그 찬란한 시작.

남편과 내가 고른 지난해를 대표하는 타이틀은 [공사가 다 ‘망’한 해]였다.


공사다망이라는 말을 적절하게 비꼰 타이틀, 공사가 다 망한 우리.

우리는 인별그램 등에도 이 태그를 써가며 좋다고 웃었다. (당시 올바른 정신으로는 결혼을 준비할 수가 없었다.)


작년, 결혼도 해 놓고 공사가 다 ‘망’했다니?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다 ‘망’했다. 정말, 진짜로. 심지어 결혼을 준비하면서 빈털터리가 된 것까지 포함해서.


사실 우리의 결혼식은 시작만 내가 했지, 나머지는 양가 부모님께 휘둘린 결혼식이었다.



해의 시작, 1월.

나는 엄마에게 폭탄선언을 했다. 추석쯤에 결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 엄마는 내가 농담하는 줄 알고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그래서 알겠다, 신랑감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나는 그 사이 물밑작업으로 비버씨의 부모님을 만나 먼저 인사를 드렸고, 비버씨는 당연히 나를 '결혼하고 싶은 사람'으로 소개했다. 비버씨에게 삼십 년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얘기를 들었던 시댁 식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심지어 시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두 손을 꼭 잡으며 '비버를 잘 부탁한다'라고 말해주셨다. 흔쾌히 허락을 받은 나는 우리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설날, 비버씨와 맞닥뜨린 엄마는 실제로 행동하지만 않았지, 날 잡아먹으려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비버씨와 함께한 설날은 오히려 평화로웠다. 엄마도 비버씨에게 중간중간, 쓴소리를 하기는 했으나 결혼 자체를 반대하진 않았다.


나는 걱정한 것과 달리 평화로운 엄마, 아빠의 반응에 마음이 놓였고 안심했으나 이것은 착각이었다. 엄마의 분노는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었다. 엄마는 내가 돌아간 그 날부터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전화를 걸어 나를 괴롭혔다. 대부분의 전화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내가 이 꼴 보려고 널 키웠냐" "네가 이렇게 나를 배신할 줄은 몰랐다."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라, 나는 결혼식 안 간다"


곰두나, 나란 인간 성격 더럽다.

도대체 내가 결혼하는 게 뭐가 어때서 배신이라는 거냐, 내 꼴이 뭐가 어떻길래, 비버씨가 뭐가 모자라다고 이렇게 뜯어말리냐 등등.


나는 엄마의 저런 말과 태도를 일일이 받아치며 매일 같이 싸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다 울었고 애꿎은 아빠에게 전화해서 아빠 마누라는 왜 저 모양이냐고 화냈다. (물론 그 전화를 받는 아빠 옆에는 엄마가 있었다. 아빠는 내 전화가 끊기면 다시 엄마의 울분을 상대해야 했다. 이제와서보니 미안하네..아빠 미안..)


결국 이 되지도 않는 싸움은 설날 만남을 기점으로, 5월 양가 상견례를 치를 때까지 계속되었고 우리는  매일매일 전쟁을 치렀다.




작가의 이전글 #01. 나는 스물아홉에 결혼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