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9
멀미가 없는 사람은 멀미가 심한 사람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아주 사소한 흔들림이나 외부적인 자극에도 쉽게 멀미를 느끼는 사람에 속한다. 멀쩡히 자리에 앉아 일하다가도 불현듯 멀미가 나서 멀미약을 먹어야만 가라앉는 일이 종종 있다. 아마도 업무의 과로나 기타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그런 것이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여러 가지 멀미들도 늘 달고 산다.
차멀미
차멀미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겪는다고 생각한다. 차의 덜컹거림과 상관없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는 그 무엇도 집중해서 쳐다봐서는 안된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당연하고, 책을 읽는다거나 모바일로 무언가를 시청하는 것조차도 굉장한 멀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으로 돌아 들어가는 곳에서는 아예 눈을 감고 천장을 바라봐야 한다. 눈을 뜨는 순간 지옥이다. 운전자도 힘들지만 나도 죽어난다. 그래서 장거리를 차로 이동해야 할 때는 최대한 빨리 잠들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마저도 보조석에 앉으면 잘 수 없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 귀 밑에 붙이는 거라던지, 먹는 멀미약을 미리 먹으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멀미약들은 멀미를 안 나게 한다기보다는 멀미가 나기 전에 졸음을 몰고 오는 류의 대처에 가까운 듯하다. 심지어 운전을 하는 당사자는 멀미를 안 느낀다는데, 나는 내가 운전하면서도 멀미를 느낀다. 당혹스럽다.
전철 멀미
전철에는 일반 지하철이나 일반 기차, KTX가 모두 포함된다. 차에 비해 별로 흔들리지도 않고 얌전히 간다고 생각하지만 내 몸은 내 의자가 아닌 무언가에 의지해서 이동하는 것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 같다. 해서 평소 출퇴근길에 늘 타야 하는 전철은 내게 굉장한 피로감을 준다. 지하철을 타면서 멀미를 한다고 매일 출퇴근마다 멀미약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꾹 참고 견디긴 하지만 출근 직후와 퇴근 직후에 밀려오는 멀미는 꽤나 심각한 구토를 유발하곤 한다. 그나마 KTX나 일반 기차는 급출발이나 급정거가 적어서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가끔 거칠게 운전하는 지하철을 타면 그 열차는 아마도 지옥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뱃멀미
앞서 두 멀미를 느꼈다면 뱃멀미 또한 심하게 느껴야 정상인 듯하다. 하지만 조금 신기하게도 뱃멀미는 그리 크게 느끼지 않는다. 다만 배를 타고 갈 때의 그 이상한 느낌, 물 위에 떠있는 그 느낌에 이질감을 느껴 어색함을 느끼곤 한다. 신혼여행에서 장장 두세 시간을 넘게 탔던 요트에서도 멀미를 느끼지 못했고, 비바람 부는 날 부산에서 탔던 유람선 위에서도 멀미를 느끼지 않았다. (이때는 사실 멀미보다 죽고 사는 문제가 더 시급했다.) 부산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후쿠오카에 놀러 갈 때도 멀미를 느끼지 못했다. 호주 시드니에 살 적에 인근 마을로 건너가는 배를 탔을 때도 물론 느끼지 못했다. 차멀미가 없는 사람도 뱃멀미는 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나는 반대로 차멀미보다 뱃멀미가 적은 편이다. 이유는 사실 모르겠다. 그동안의 경험이 그랬다.
생활 멀미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생활 멀미. 이건 진짜 답이 없다. 이유도 모른다. 방금 전까지 너무나도 멀쩡하게 일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찾아온다. 어지러운 걸 본 것도 아니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 것도 아니다. 평소 안 먹던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그냥 불현듯 멀미가 난다. 문제는 어마어마한 하품과 눈물을 동반한다는 것인데, 기껏 시간 들여 한 메이크업이 지워지는 건 당연지사다. 눈물이 날 때마다 휴지를 받쳐 닦아내지만 하품할 때 흐르는 눈물의 양이 남들에 비해 많이 나오는 편이라 그런지 눈물을 닦는 것도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모르는 누군가가 보면 '갑자기 왜 울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하품을 하며 멀미를 이겨내 보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견디지 못하고 멀미약을 먹어버리고 만다.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 살다 보니 숱한 상황에서 멀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난, 그게 좀, 힘들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