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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자 Mar 28. 2018

겨울바다, 아이스크림

낙엽을 털어낸 가지에 서리가 내려앉은 어느 날, 나는 그녀와 함께 겨울바다를 보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소가 유리창에 습기 가득 찬 카페가 아니길 바랐다. 히터의 열기로 아이스크림이 금세 녹아내리는 자동차 안이 아니길 바랐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이야기 대신 그녀를 데리고 강화도로 향했다. 겨울의 자동차는 유난히 덜덜거렸고 손이 차가운 그녀는 기어를 잡은 내 손 위에 살며시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그녀는 목적지를 모르고도 내게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바닷가에는 우리처럼 겨울바다를 보러 온 여행객 몇몇이 전부였다. 그들이 남긴 발자국이 만을 따라 이어졌다. 겨울바다가 쓸쓸한 이유는 다만 찾는 사람이 적어서일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전혀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잠깐 바다를 보는 중에도 그녀의 머리카락은 바닷바람을 따라가려는 듯 찰랑였다. 코끝은 빨개졌고 손은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차가웠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따뜻한 캔 커피가 아닌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먼저 다 먹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자는 말을 하면서. 스산한 느낌마저 드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랫동안 냉동실에 갇혀 있던 아이스크림보다도 바람이 차가워서, 아이스크림은 시간이 지나면서 표면이 하얗게 얼어갔다. 찬 음식을 못 먹는 그녀는 절반을 남겼고 나는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끝까지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놓지 않았다. 유난하게 추웠던 겨울바다에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우리를 보며 신기하게 여길 사람조차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도 그날의 내가 그녀에게 무슨 소원을 말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진짜 소원은 함께 겨울바다를 보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었고, 내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소원은 이루어졌다.



*



기껏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밤, 나는 그녀와 함께 갔던 바다를 다시 찾았다. 거리는 텅 비어 흔한 택시조차 보이지 않았다. 빗방울은 차창에 부딪혀 분산됐다. 달을 닮은 가로등 불빛이 빗방울에 닿아 갈피없이 번졌다. 비에 가려 표지판이 흐릿했다. 정체된 도로를 지나듯 천천히 강화도로 향했다. 나의 밤은 길었고, 내게는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팔월의 해변은 시끄러웠다. 세시의 바다는 지옥의 입구처럼 캄캄했다. 번개가 섬광탄처럼 짧은 빛을 뿜을 때마다 바다는 개펄과의 경계를 잠시 잠깐 보여 주었다. 천둥이 치는 바다는 기괴했고, 기괴한 만큼 매력적이었다. 만약 그곳에 작은 쪽배라도 있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단테를 따라 지옥으로 향했을 것이다. 사람을 홀리는 바다. 그게 폭우가 치는 바다를 향한 유일한 감상이었다. 수평선을 때리는 빗줄기가 우산에도 들이쳤다. 나는 수평선 아래 깊은 바다 속에 잠긴 것처럼 무거워지는 우산을 들고 해변을 걸었다.



어쩌면 바닷가에 그녀가 남긴 아이스크림이 아직도 남아 있지 않을까. 차가운 바닷바람 때문에 녹지 않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스크림을 찾으면 다시 소원을 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망연히 고개를 숙여 몇 시간이고 아이스크림을 찾았다. 그러나 걷고 또 걸어도 끝내 표면이 하얗게 언 반쪽짜리 아이스크림은 찾을 수 없었다. 바다에는 오래전 잃어버린 누군가의 추억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빈 바다가 쓸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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