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숙제에 일기 쓰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라진 숙제다.
일기 쓰기는 제일 힘든 숙제였다.
매일 써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매일 쓸거리를 찾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일기 쓰기에 적절한 이야깃거리,
그런 것들이 매일 쏟아지면 일기 쓰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을 텐데.....
슬프게도 하늘에서 비 내리듯 이야깃거리가 뚝뚝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일기 쓰기 숙제는 어린 내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고,
엄마에게 매일 정성스럽게 기록된 일기장은, 방학 숙제 상장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증수표였다.
하지만 소재의 빈곤은 내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기를 대충 서너 줄 쓰고 넘기는 날이 많아졌다.
사건은 개학 하루 전날 터졌다. 엄마의 숙제 검사에 딱 걸린 내 일기장은 속절없이 찢겨 나갔다. 그렇게 밤새 한 달 치 일기를 창작했던 경험은 국민학생의 삶에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무언가를 남겼다.
어린 나는 글을 쓰면 늘 상을 받았다.
교내 글짓기상 뿐만 아니라 교외 글짓기상까지.
하지만 세심했던 6학년 선생님은 내가 상 받는 글을 잘 쓴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글을 쓸 필요는 없어. 네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된단다."
어린 나는 선생님이 미웠다. 사방으로 벗겨진 껍질 속 귤 속살처럼 내 머릿속이 무방비로 드러난 것만 같았다.
우연한 기회에 한 커뮤니티에서 <어떻게 글을 쓸 것인가>란 주제로 온라인 강의를 했었다.
단발성 강의였고 처음이자 마지막 온라인 강의였다.
마흔다섯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력을 무기로 소소한 경험을 늘어놓는 정도였다.
내용은 기억에 흐릿하지만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이 굉장히 컸던 기억이 있다.
10년 넘게 공연 리뷰를 연재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쓴 글을 두 눈 뜨고 다시 보기 힘들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 보면 온갖 비문과 논리의 오류까지 '이게 글인가' 싶을 때도 허다하다.
그래도 글쓰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풀어보자니, 어린 시절 일기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 떠올랐다.
많은 작가들은 꾸준한 글쓰기 습관을 갖고 있다.
작가들에게는 기록하는 습관도 필수다.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항상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평소 기록했던 모든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되거나, 중요한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열심히 따라 한다고 해도 누구나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남들은 책도 쓰고, 인플루언서가 되고, 강사가 되는데,
나는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내 일 년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 순간을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
책을 쓰고 싶다면 글쓰기 강좌를 통해 공동창작으로 책을 낼 수 있다.
나만의 주제가 있다면 전자책으로도 책을 낼 수 있다.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서라면
AI의 도움을 받거나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하면 길이 보인다.
그게 아니라면,
글 쓰는 습관보다, 기록하는 노력보다 더 필요한 것은
왜 내가 쓰려고 하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다.
매일을 기록하면 좋지만 하루를 건너뛸 수도 있고
일주일을 거를 수도 있다.
자판을 들여다보다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와 글을 쓰고 싶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일기는 꼭 매일 써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쓰는 것도 아니었다.
글쓰기도 그런 것 같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쓸 필요도 없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면 된다.
십 년을 넘게 변방의 비정규 글쟁이로 살면서도 국민학교 6학년 선생님의 그 말을 항상 잊지 않고 산다.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내가 아는 단어로, 내 식대로.
- 서랍을 정리하다 딸의 초등학교 일기장을 발견한 어느 날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