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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 Dec 13. 2022

신규간호사 퇴사후 깨달은 중요한 사실

나는 대학병원 3개월 견디고 퇴사후 우울감에 시달렸다.

우울감을 살짝 털고 일어난 내가 제일 먼저 했던 건 

바로 다음 진로 찾기였다.


임상은 아닌거 같으니, 탈임상을 한 번 해보자!

간호사가 갈 길이 그리 많다는데 다른데로 가보자!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간호사 취업 잘 된다는건 밑빠진 독에 물 붓듯 퇴사자가 많은 병원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제약회사든 보험사든 괜찮아 보이는 곳은 자리가 없었다.

신규가 하기에도 적당한 자리가 아니었다.

어딜 알아보든 괜찮아보이는 직장은 다 임상경력이 필수라고 되어 있었다.


물론, 임상 경력 없이 신규가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연구간호사나 산업간호사는 시작하고 배우면 된다고 하고,

신규도 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왜 자리가 남아있지?

대부분 계약직이었다.

월급도 적었다.

연구간호사는 교수 소속으로 들어가면 4대보험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했다.

장점은 칼퇴가 가능하고 업무 로딩이 크지 않다는 것.

하지만 만족한다는 의견들도 ‘임상에 있을 때에 비해서’ 그렇다고 했다.

다른 직장인들은 9-6나 점심시간 보장 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간호사는 그 전이 워낙 힘들어서 그런지 당연한 조건들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마음이 또 애잔해졌다.

그리고 아무래도 임시직의 느낌이 강해서 근속년수가 길지 않은듯 했다.

일이 아주 편한건 아니고 나름의 고충이 있으나 

월급이나 복지가 그걸 커버해줄 정도는 아니고.

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잔잔하고 발전이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가도 1, 2년 해보고 다른 길을 찾으시는 분들도 계신 모양이었다.

마음에 드는 일이 없구나, 역시 쉽지 않다.


이왕 일을 그만둔 것, 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나는 살면서 디즈니랜드를 꼭 가보고 싶었다.

비전보드에 디즈니 랜드 사진을 붙이면서도 한 번도 내가 갈 수 있을거라고 믿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알고보니 그리 멀리 있지도 않았다.

일본과 홍콩이었다.

매일 바라보던 비전보드의 디즈니랜드는 홍콩에 위치한 파크였다.

그 길로 나는 홍콩으로 떠났다.


그동안 무엇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디즈니랜드가 뭐 그리 가기 힘들다고 매일 사진만 보며 애닳아했을까.

그냥 비행기 티켓과 파크 입장권을 끊고 숙소를 예약하면 그만인데.

그 쉬운걸 왜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손을 뻗어 쟁취하는 것을 왜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그동안 나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뜻대로 살았구나.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직업을 갖고 직장에 들어갔구나.

나는 내 뜻대로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모두 착각이었구나.

나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꿈을 내 꿈이라고 착각하고 살았구나.


디즈니랜드는 기대 이상이었다.

공간 전체가 마법에 걸린듯한 압도적인 기분이었다.

이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꿈결에 젖어있는 기분으로 행복하게 누비고 다녔다.

많은 캐릭터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짧은 영어지만 인사도 나누었다.

그건 정말 새로운 설렘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퍼레이드 타임이었다.

퍼레이드 자체도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더 놀라운건 연기자들의 표정이었다.

내 눈을 사로잡은건 메인 캐릭터의 앞 뒤에 붙어있는 조연 캐릭터였다.

주인공이 아님에도 너무나 환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손을 흔들어주는 그들을 보며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일 할 수 있구나. 조연이라도 말이야.

병원에서의 나는 너무나 지치고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더 놀라웠던 것 같다.

실제로 그 직원들이 행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표정만큼은 정말 행복해보여서, 솔직히 너무 부러웠다.


나도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아, 좋아하는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싶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을 할거야.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나는 꼭 그렇게 살거야.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싶다.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른다는거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면허는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는 고마운 도구였다.

이 면허 하나 따자고 4년을 갖다 버렸구나 싶어 좌절스러웠던 과거는 안녕,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면허는 유용한 도구로 탈바꿈했다.

돈도 벌고 비전도 이루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모두 하나로 충족하려니 힘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각자의 목적에 충실한 도구를 여러개 가지면 되지 않을까?

간호사로 일하며 돈을 벌고, 내가 좋아하는 일은 따로 찾아보면 어떨까?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나는 다시 구직을 했다.

간호사 면허로 갈 수 있는 길은 많았지만 다들 추가적인 자격증이나 경력이 필요했다.

가장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역시 임상 간호사였다.


 나는 무난하고 평이한 분위기의 직장을 원했다.

적응 후에는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여유로이 남는 곳이었으면 했다.

그래야 남는 에너지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테니까.

물론 들어가봐야 아는 부분이라 아무것도 모른 채 도전하는 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목적에 맞는 병원들을 몇 군데 추렸다.

그리고 이력서를 넣었다.

서류를 넣자 곧바로 문자나 전화가 오는 병원도 있었다.

직접 컨택을 해보니 느낌이 왔다.

급하면서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이는 곳도 있었다.

염두에 두었던 한 병원의 인상이 제일 괜찮았다.

다른 병원은 나를 ‘곧 내 밑에서 일하게 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이 병원은 ‘곧 함께 일하게 될 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존중하는 느낌을 주었다.

굉장히 사소한 부분에서 갈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내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새로운 시작을 하며 결심한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 정말 최악의 환경이 아닌 이상은 1년은 견뎌보자.

정말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빨리 그만둬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1년은 견뎌보고 싶었다.

도망 좀 친다고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내심 이전의 선택에 후회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좀 더 버텨보고 싶었다.

내가 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둘, 1년을 견딘다면 3년도 다녀보자.

당시의 시야로는 3년이면 일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일거라 생각했다.

만 3년을 채우고도 퇴사를 결심한다면 그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1년은 너무 짧고, 2년은 애매하고, 3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새로운 병원에서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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