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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Feb 26. 2020

벵에돔 조림

1.




휴대폰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낚시 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민수는 바다에 낚싯대가 드리운 장면을 찍고 싶어서 그 사람의 측면으로 조금 가깝게 다가섰다. 낚시모자 아래로 그림자 진 그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아주 젊은 남자였다. 민수는 의아했다. 자기 또래의 남자가 평일 이 시간에 항구에 나와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낯설고 흥미로웠다. 휴가를 받은 걸까. 무직일까.

민수는 그의 뒤쪽으로 넓게 반원을 그리며 부산스럽게 걸어보았다. 남자가 슬쩍 고개를 들어 민수를 올려다봤다. 민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 남자도 조금 멋쩍은 표정을 짓기는 해도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고기가 잘 잡히나요?”

“아, 두 마리. 두 마리 잡았네요.”


아주 시시한 말씨를 쓰는 남자였다. 출근길을 우회하여 왈칵 떠나온 항구에서가 아니었다면 민수는 거기서 대화를 멈추고 그를 완전히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좀 봐도 돼요?”


민수는 남자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플라스틱 바스켓을 들여다보며 남자의 오른편에 쪼그려 앉았다. 남자가 낚시 의자 위에서 몸을 조금 움츠렸다. 민수가 바스켓 안의 물고기를 유심히 들여다보자 남자가 말했다.


“간장조림 해먹으면 맛있거든요.”


민수 팔뚝만한 크기의 물고기였다. 그들의 몸통이 생동하며 내는 찰박찰박 소리 위로 민수가 말했다.


“어릴 땐 물고기랑 생선이 똑같은 단어인 줄 알았어요. 계곡이나 바다에 가서도 생선이라 그러고.”


생선의 운명을 가진 물고기들을 넘겨다보는 남자의 표정이 무심했다.


“저는 지금도 그러는데요. 벵에돔을 낚는 건 지느러미에 찍힌 점이라든가 검정색 비늘 때문 아니거든요. 벵에돔 간장조림이 맛있어서 그러는 거지.”


민수는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으며 물었다.


“이게 벵에돔이라는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은 통 하나를 열어 보여줬다. 손톱만한 새우들이 꽤 여러 마리 들어 있었다.


“벵에돔은 파래새우를 미끼로 해야 잘 잡혀요."

"파래새우?"


민수는 지극히 형식적인 어투로 대답했지만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이게 한 마리에 얼마인 줄 아세요? 500원. 얘는 1급수에서만 살아서 잡기도 어렵고 파는 데도 많이 없어요.”

“비싸다. 파래새우를 미끼로 한다고 해서 꼭 벵에돔만 낚이리란 보장도 없을 텐데. 차라리 요리된 걸 사먹으면 어때요?”


남자가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어처구니 없어하는 남자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웃음소리였다. 민수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낚시에 관심 없으시죠?'하며 민수를 쳐다보는 남자의 눈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어쩌다 한 번 낚시하러 나온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와 달리 민수가 가진 낚시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학창시절에 한 체험활동뿐이었다. 민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었는데, 바늘 끝이 미끼를 관통할 때 톡 하고 나는 가벼운 소리에 비해 갈고리 모양의 바늘대에 꽂힌 미끼의 움직임이 너무 격렬했다. 민수는 낚시를 시작하기도 전에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물고기를 낚는 데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고기가 잘 잡히냐느니, 이 물고기 종류가 뭐냐느니 남자에게 묻기는 했어도 사실 개중에 설명을 듣고 싶은 것은 없었으므로 그의 말이 정확했다. 그러면서도 민수는 남자가 자기의 무지를 비아냥거리기라도 하는 건가 싶어서 얼른 불쾌하려고 했던 것이다.


“낚시에 관심 없으시죠?”


남자 눈 속에는 웃음기가 잔잔하게 출렁였다.      


*


학부 새내기 시절 학과사무실 앞에서 서성이다가 마침 문을 열고 나오는 조교와 맞닥뜨렸었다. 신청하지 못한 전공과목이 있는 상태에서 수강신청 기간이 지나고 말았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간 것이었는데, 이런 저런 사족을 붙여가며 몇 분 동안을 늘어놨었다. 여행지에서 수강신청을 하게 됐는데-로 시작하여 최소 5분 이상 이어진 난잡한 설명을 마칠 쯤에서야 민수는 조교가 자기 말을 끊지 않고 길게도 들어줬다는 것을 알아챘다. 수강 정정 기간이라고 들어봤어요? 조교가 물었다. 그 사람이 말을 하는 데 들인 시간이라면 대략 5초였다. 민수는 아차 싶었다. 그러니까 정정 기간에 추가로 수강신청을 하면 될 뿐인 문제를 두고 초유의 사태라도 벌어진 양 조교를 붙들고 사정사정을 해버린 것이다.


“아….”


안도 되면서도 벙 찌는 기분으로 민수가 조교를 올려다 봤을 때, 조교도 민수를 내려다 보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서글서글했다. 옷 단추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울상을 짓는 아이의 부모나 지을 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민수는 민망한 가운데서도 그 자리를 바로 떠나고 싶지는 않아서, ‘수강 정정 기간’에 대하여 조교에게 되물었다. 둘은 사무적인 내용이기는 했지만 세 층을 내려오는 동안 계단을 디디며 걸음에 맞춰 몇 가지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훗날 두 사람은 서로를 민수야, 영민 오빠, 하고 부르다가 공적인 것 대신 사적인 것을 나누려고 만나는 관계가 됐었다. 그러다가 요즘은 다시 공적인 사이에 가깝게 지내고 있다. 아무 사이도 아닐 수는 없는 것이, 둘은 같은 일터를 다니고 있다. 민수가 강의를 나가는 학원의 팀장급 자리에 영민이 있다. 순서에 맞추어 말하자면 영민이, 자신의 팀에서 민수가 일하게끔 이래저래 힘을 쓴 것이었다. 돈벌이가 마땅치 않았던 민수는 영민의 손길을 끊어내지 않았다. 헤어지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


낚시하는 남자의 눈은 민수를 내려다보던 조교 영민의 것과 비슷했다.

그저 미끄러워 보일 따름인 벵에돔이나 파래새우에는 조금의 흥미도 생기지 않았지만, 남자의 매끈하게 그을린 팔뚝은 다시 보였다.


“낚시가 재밌나요?”


민수의 물음 뒤로 꽤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괴괴한 침묵은 아니었다. 바다인지 지상인지 그 출발지가 정확하지 않은 크고 작은 소리들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민수는 지루하지 않게 대답을 기다렸다. 정박되어 있는 배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며 그 밑에서 일어나는 출렁거림을 생각했다.     


민수가 가장 오래 변치 않고 사랑해온 것은 바다일 것이다. 바다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바다 자신만이 아닌 것 같았다. 낮과 밤, 맑거나 흐린 하늘이 바다를 바꿔놨다. 새파랗게, 풀빛으로, 투명하게, 다정하게, 죽은 듯이. 영원할 것처럼 제자리에서 일렁이며 주변 것들에게 쉬이 동요되기도 하는 바다를 민수는 사랑할수록 사랑했다.


“재미있을 줄로만 알고 뱃사람 하겠노라고 했었죠.”


민수는 수평선 언저리로 가맣게 떠가는 배 한척을 눈으로 좇다가 잠에서 깨어나듯 번쩍 정신이 들었다.


“뱃사람이라고 하셨어요?”

“네. 말하자면, 어부요.”


어부라니. 평일 이 시간에 항구 낚시를 하는 젊은 남자의 사정이 단박에 설명되는 단어였다. 민수 안에서는 호기심이 재빠르게 깨어나 넘실거렸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피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민수의 시선은 이제 남자의 옆얼굴에 정통으로 꽂혔고, 목구멍으로는 침이 꼴깍 넘어갔다. ‘낚시꾼’과는 또 다르게 ‘어부’, ‘뱃사람’ 이라는 말에서는 바다의 냄새가 강하게 났다. 그런 냄새를 가진 어떤 실체를 직접 경험해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민수는 뱃전에서 붉게 익고 그러다가 갈색빛으로 그을려졌을 팔뚝에 다시금 눈이 갔다. 그 팔뚝에 힘줄이 서는 것을 상상했다. 그물을 길어 올릴 때는 많은 근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바닷물로부터 물고기들이 분리될 때, 그의 팔 근육은 끌려올라오는 물고기들의 힘과 비등하게 펄떡거릴 것이다. 바다 한 가운데에서 거친 풍랑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할까. 잡힌 물고기들 중 튼실한 것들은 시장에 팔고 크기가 조금 작은 것들은 집으로 가 탕을 해먹는 것일까. 간장조림, 간장조림을 해먹는 것일까. 저녁식사를 해먹고는 일몰이 지나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할까. 해가 떠오르면 알람도 없이 일어나 창의 커튼을 걷고 그날의 일기를 확인할까. 하늘과 파도의 높이를. 민수는 그 모든 것을 묻고 싶었다. 바다 위에서 살고 바다 아래를 깊숙이 들여다보며 바다 곁에서 잠드는 그에게 그의 전부와 자신의 전부까지를 묻고 싶은 욕구가 민수를 압박하듯 휘감았다.     


“이 벵에돔도 간장조림 해드실 거예요?”


민수는 남자가 되물어주기를 기다렸다. 당신도 생선요리를 좋아하느냐고, 탱탱하게 익어서 양념이 베인 벵에돔으로 저녁식사를 하기 원하느냐고.

“잡은 건 동네에 있는 가게에 가져다 드리려고요. 전 냉동해둔 걸로 꺼내 먹을까 싶어요.”

하지만 남자는 정직하게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말을 마친 뒤 휘어지는 낚싯대를 빠르게 감아올렸다. 검푸른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주둥이를 걸린 채로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민수는 한 템포 쉬며 질문을 다시 골라보기로 했다. 조금 전과 달리 민수는 긴장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목소리가 의식되어 헛기침을 해 목청을 가다듬었다. 남자는 새로 잡은 물고기를 플라스틱 통에 던져 넣었다. 물고기는 광활한 바다가 한 순간에 딱딱하고 미끄러우며 비좁은 파란색으로 바뀐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생선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운명을 깨닫지 못하다가 한 순간에 죽음과 함께 생선이 되어버리는 꼴이었다. 남자가 새로운 미끼를 집어 들었을 때 민수가 말했다.


“벵에돔이요,” 하고 말했다가 다시,

“냉동 벵에돔.”하고 덧붙인 다음 물었다.

“그거 맛있나요?”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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