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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Mar 07. 2020

수요일의 택배

1.



<받으시는 분에게>

‘받는 분’를 적는 자리에는 언제나 같은 일곱 글자가 적혀 있었다. 캘린더를 열어보니 어김없이 수요일이다. 아름은 상자를 한 팔에 들고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입력을 마치고는 옷소매로 도어락 키패드를 두어번 쓸어 닦았다. 보안이 약한 빌라에 혼자 사는 여자라면 이 정도 주의쯤은 일상적인 것이다. 1층 출입문에 달린 cctv는 실제로 작동되지도 않는다. 낡은 건물에 사는 이 세입자들은 어쩐지 숨어살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도 cctv를 고쳐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불만스러운 아름이었지만 직접 나설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아름은 부엌 한 켠에 철푸덕 엉덩이를 깔았다. 곧장 상자의 입구를 봉하고 있는 테이프를 주욱 뜯어냈다. ‘받으시는 분에게’ 온 첫 번째 택배상자를 열어보던 때에 비할 수 없이 대범한 손길이었다. 택배 상자 안에는 선물포장용으로 보이는 진녹색의 박스가 하나 더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쪽지 한 장이 함께였다.     


‘마음에 안정을 주는 향이라고 합니다. 불면증에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요.’     


포장용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캔들과 캔들워머, 캔들워머에 끼우는 전구가 구성품으로 담겨있다. 상자에 적힌 브랜드 이름을 웹사이트에 검색해봤다. 총해서 15만원을 웃도는 금액의 물건이었다.


“캔들이 15만원이야? 대애박이네. 나라면 그 돈으로 다른 걸 사겠다. 으차차차-”


아름은 혼잣말을 대강 지껄이며 몸을 일으켰다. 선물포장용으로 들어있던 박스는 남겨두고 택배 상자만 집어 베란다로 나갔다. 포장용 상자들은 탄탄하고 질이 좋아보여서 전부 모아두고 있다. 비가 오려는지 베란다의 공기가 차고 축축했다. 단열이 되지 않는 아름의 집은 바깥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택배 상자를 납작해지게끔 밟아 분리수거 통에 던져 넣고 서둘러 안으로 되들었다. 한기 때문에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뚝을 양손으로 엇갈리게 문질렀다.


불 꺼진 방 한 가운데서 아름의 얼굴만이 허옇게 빛났다. 배 위에 올려둔 노트북 불빛 때문이었다. 아름은 문득 캔들이 생각났다. 침대에 반쯤 누운 채 책상 위로 팔을 뻗어 캔들워머를 품으로 끌고 왔다. 납작하고 작은 전구를 캔들워머의 뚜껑 안쪽에 끼워 돌리자, 간소한 소리와 함께 포근한 채도의 불빛이 침대를 에워쌌다. 이제 아름의 방은 전구의 열을 받은 캔들이 뿜어내는 향으로 채워지고 있다. 은은하면서도 헐렁하지 않은 냄새였다. 금세 몸이 노곤해지는 듯 했다. 하여간 비싼 것들은 비싼 값을 하기는 한다. 아름이 최근 한 달 사이 몸소 깨달아온 사실이었다. 첫 번째 택배물이 문 앞에 놓여있던 그 날도 수요일이었다.     



*


퇴근길이었다. 문 앞에 놓인 택배상자를 무심코 챙겨 들어가려던 아름은 멈칫했다. 흐릿한 주황색 전등에 비춰보니, 수신인이 김아름이 아니었다. <받으시는 분에게>였다. 발신인 또한 쿠팡이 아니었다. 엄마도 아니었다. 웬 ‘용산구 독서당로’ 주민인 <김철수>였다. 아름은 상자를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집으로 쑥 들어갔다. 그런데 택배물이 다음 날도 복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그 다음 날도, 그리고 나흘 뒤까지도 아름이 내려놓은 모양 그대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오일 째 되던 저녁, 아름은 상자를 신발장으로 들여놨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자, 그러니까 첫 번째 택배가 배송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을 때 문 앞에는 다시 <김철수>의 택배가 놓여 있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상자였다. 아름은 그걸 집어 며칠 전과 마찬가지로 무심하게 들여놨다.


세 번째 수요일, 문 앞에 놓인 또 다른 크기의 상자를 발견했을 때 아름은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다. 와락 집어 올린 택배상자를 한 팔에 끼고 현관문부터 방까지를 직진하듯 걸어 들어갔다. 침대에 걸터앉아 상자를 흔들어보니 별다른 소리는 나지 않았다. 작고 가벼운 그 물건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시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문구용 칼을 꺼냈다. 최대한 박스가 상하지 않게 모서리의 틈을 따라 칼질을 했다. 테이프가 매끄럽게 틈을 벌렸다. 안에 든 것은 오묘한 분홍빛의 입욕제와 쪽지 한 장이었다.     


‘힘든 생각을 줄여요. 그걸 제가 많이 바라고 있습니다.’     


아름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상자도 이어서 열어보았다. 첫 번째 것은 눈마사지기였다. ‘오늘은 푹 자면 좋을 텐데요.’ 두 번째 것은 키링이었다. ‘그만 좀 잃어버릴 것.’ 그런데 이번에는 쪽지보다도 키링에 달린 뱃지에 먼저 눈이 갔다. 구찌였다. 아름은 인터넷 검색창에 ‘구찌키링’을 입력했다. 230,100원. 이십삼만 백 원이었다. 아름은 검색 창을 끄지 않은 채로 입욕제 포장껍질에 적힌 상표 이름을 들여다봤다. 검색. 32,500원. 눈마사지기 모델명 입력. 검색. 42,000원. 다 합치면 대략 삼십만 원이었다.


아름은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물건들을 도로 택배 박스에 차례차례 집어넣었다. 그걸 쌓아 들고는 부엌으로 나갔다. 잡동사니들이 들어있는 세 층짜리 선반 위에 올렸다. 휙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간 아름이 잠시 뒤 다시 나온다. 부엌은 완전히 깜깜했다. 방에서 새어나오는 흐릿한 불빛에 의지해 선반 앞까지 걸어간 아름은 맨 밑에 놓인 박스에서 물건을 꺼냈다. 부스럭부스럭. 눈마사지기를 가슴팍에 대충 안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문이 꼭 닫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출처 모를 상자에 대한 궁금증이 불쑥불쑥 올랐다.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주전부리를 사러 들른 편의점에서 아름은 여러 방면의 기억을 되짚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름의 주변에는 없었다. 회사 동료, 중·고등학교 동창생, 대학 동기 전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름이 애초에 생각한 대로 잘못 배송된 택배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 둘 다, 이주일이 지나가도록 이 사태를 내버려두는 것인지가 납득되지 않았다. 값나가는 물건과 친절하며 야릇한 쪽지라니, 이건 사소하지 않았다. 지금쯤 문 앞에는 네 번째 택배가 놓여있을까, 아름은 요일을 확인하며 생각했다.



‘떠올리고 있습니다.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이 냄새도.’     


지미추 향수였다. 은빛이 도는 유리병 표면이 올록볼록하게 굴곡져 있었다. 팔목에 칙칙 두 번, 목 뒤에도 한 번 뿌렸다. 달콤하지도 톡 쏘지도 않는 향이 확 끼쳐왔다. 어떤 단어로 설명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는 냄새였다. 아름은 향수를 눈 앞 허공에도 여러 번 분무했다. 형광등불빛 아래에서 미세한 입자들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기다렸다는 듯이 피로감이 몰려왔다. 눈을 감은 채로 머리맡의 휴대폰을 더듬더듬 찾아 집었다. 아름의 눈이 게슴츠레 열렸다. 이번에는 바닥에 나뒹구는 택배 상자로 손을 뻗었다. 아름은 김철수라는 글자 아래에 적힌 열 한자리의 숫자를 휴대폰에 저장하기로 조금 전에 결정했다. 휴대폰 번호를 저장하면 메신저에 프로필 사진이 뜰 것이고, 혹시 아는 얼굴인지 확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아름은 침대에 누워 덜 마른 머리를 부챗살처럼 펼쳐두고는 김요섭 씨의 사진을 보고 있다. ‘김철수’는 번호를 저장해놓고 보니 ‘김요섭’이었다. 철수와 요섭이라니,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이름이었다. 아무튼 아름이 보고 있는 것은 김요섭 씨의 사진이었다. 맺은 적 없는 인연의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아름은 메신저에서 그를 지우지 않았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잘못 온 택배를 빌미 삼아 김철수 씨 되시느냐고 연락을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자신이 다섯 개의 상자를 모두 열었고 심지어 그 안에 들었던 물건을 쓰기도 했다는 사실이 걸려 그만두었지만.     


김요섭 씨의 프로필 사진은 삼사일에 한 번 꼴로 바뀌었다. 커피숍 테라스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든가, 이국적인 거리 위에서 팔짱을 낀 채로 건물 벽에 기대서있다든가, 씻고 나온 지 얼마 안 됐다는 듯이 젖은 앞머리칼을 늘어트리고 있다든가 하는 식이었다. 좀 꼴불견이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름은 웬만하면 ‘꼴불견’들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깔끔하게 면도한 얼굴이 일반이었고 어쩌다 한 번씩은 하루쯤 깎지 않은 듯한 수염을 묻히고 있는 얼굴일 때도 있었다. 그런 사진에서라면 보통 머리카락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고 차림은 무지 티셔츠였다. 전반적으로는 셔츠나 니트를 입고 포머드로 머리카락을 고정한 사진들이 많았는데 배경이 다채로웠다. 통유리 너머로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라운지, 어두운 조명이 내리깔린 와인바, 탁 트인 잔디밭과 울창하게 늘어선 나무들이 있는 공원, 정갈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스탠드 불빛이 내리 비추는 서재, 유럽 어딘가로 추정되는 유서 깊어 보이는 박물관 내부. 화려하고도 견실한 삶이란 이런 건가, 김요섭 씨의 프로필 사진을 넘기다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름은 화면에 엄지와 검지를 대고 간격을 줄였다 늘이며 사진 속 이목구비를 키워 보곤 했다. 눈매가 날카롭고 시원스러웠다. 눈썹뼈 아래로 진 그늘 때문인지 깊어 보이는 눈이기도 했다. 귓불 아래부터 턱까지 이어지는 선은 또렷했다.     


아름은 토요일 오후를 침대위에 대자로 누워 김요섭 씨의 얼굴을 살피는 것으로 보내고 있었다. 월말의 휴일은 원칙적으로 집에서 보내기로 되어 있다. 여기서 ‘원칙’이라는 건 아름이 아름의 삶에 적용하는 소비의 룰이다. 통장 사정을 가장 많이 살펴야 하는 시기엔 쇼핑부터 외식까지 다방면으로 조심성 있게 굴어야 한다. 통장이 펑크가 났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아름에게 각인되어 있다. 오랜 시간 학습한 것이었다. 김요섭 씨를 관찰하는 일에 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저 그에게는 자꾸 보고 싶은 눈코입이 달려 있었다. 번호를 저장한 탓인지 SNS의 친구추천에도 그의 이름이 떴고, 아름이 구경할 얼굴과 몸의 셰이프는 더욱 다양해졌다. 하지만 의문을 해결하는 데는 그의 SNS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아무래도 이상한 것이, 김요섭 씨는 지금 외국에 나가있다. 몇 주도 더 된 일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택배물이 와있는 것일까. 사실 따지고보면 김요섭이 아니라 김철수에게서 온 것이었다.


어쩌면 김철수와 김요섭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김철수 씨가 휴대폰 번호를 잘못 기입한 것이다. 그게 김요섭씨의 번호였던 것이다. 그럴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김철수 씨가 <받으시는 분에게>보낸 택배가 아름의 집에 잘못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김철수 씨와 ‘받으시는 분’은 왜 이 사태를 한 달 동안이나 내버려두고 있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김철수 씨의 ‘받으시는 분’이 아름인 것은 아닐까. 하지만 김철수가 대체 누구인가. 얼핏 익숙한 이름이었지만 실제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아는 것은 또 아니었다. 인생에 있었던 모든 남자들을 헤아려보면 그 중 한 명쯤은 ‘김철수’가 있을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해봐야 그 정도 관계에 있는 사람이 뭣하러 양질의 물건과 야릇한 쪽지를 아름에게 보내온단 말인가. 아무리 상상을 늘어놓아봐도 그럴듯하지 않았다. 역시 김철수 씨가 택배를 잘못 보낸 것이다. 그게 가장 타당한 추측이었다. 그런데 왜 김철수 씨의 ‘받으시는 분’은….


“아. 지랄병.”


아름은 짜증이 솟구쳤다.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벽 한쪽에 세워져 있는 수납장의 두 번째 칸을 열었다. 잡동사니들 위에 살포시 올려져있는 눈마사지기와 입욕제를 집었다. 방으로 돌아와 책상 위에 그것들을 내려놓았다. 이제 책상 위에는 캔들워머와 눈마시지기와 입욕제가 모여 있었다. 책상 선반 아래쪽에 달린 서랍을 열어 지미추 향수와 케이스째 놓여있는 구찌 키링을 꺼내 올렸다. 다음으로는 침대 아래에 모아두었던 포장용 상자를 전부 끄집어냈다. 진녹색은 캔들워머의 것이었다. 영롱한 빛이 도는 은색은 향수, 흰색은 입욕제, 짙은 남색은 눈마시지기의 포장상자였다. ‘그만 좀 잃어버릴 것.’ 이건 키링이었다. ‘힘든 생각을 줄여요. 그걸 제가 많이 바라고 있습니다.’ 눈마사지기였나. ‘떠올리고 있습니다. 잘 어울릴 것 같네요, 이 냄새도.’ 확실히 향수였다. ‘오늘은 푹 자면 좋을 텐데요.’ 어라, 이게 눈마사지기인데. 그럼 힘든 생각을 줄이라느니 하는 게 입욕제일 것이다. ‘마음에 안정을 주는 향이라고 합니다. 불면증에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요.’ 캔들워머였다.


끝이었다. 이제 다섯 개의 물건은 아름이 처음 택배 상자를 뜯었을 때 그대로, 거의 그대로였다. 몇 번쯤 사용한 것들도 있었지만 많이 티 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상자째로 차분하게 놓여있는 물건들을 보자 아름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게 뭐라고 한 달 동안 발신지를 궁금해하고 마음을 졸이고 수요일을 기다리는 지경까지 갔었는지, 한심스러웠다.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작정이었다. 한 달 뒤에도 김철수 씨나 ‘받으시는 분’에게 기별이 없다면 그때는 팔아치워 버리든가, 좀 그런가, 그러면 반송을 시키든가 누가 집어갈 때까지 문 앞에 내놓든가 할 것이다. 그럼 완전히 해방이었다.


아름은 다시 침대에 널브러져 휴대폰을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김철수 씨가 아닌 김요섭’ 씨라면 이제는 더욱 상관없는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김요섭 씨에게 느낄 죄책감은 없었다. 만약에 대비하여 변명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아름은 가뿐한 기분이 들어 좌우로 몸을 굴렸다. 김요섭 씨는 곧 해외출장을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다.     



거짓말처럼 김철수 씨로부터의 우편물은 캔들워머 이후로 뚝 끊겼다. 지난 이주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아름은 궁금하다기보다도 속이 편했다. 마치 지난달의 일이 하룻밤 도깨비장난에 불과한 것 같았다. 이대로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가지 않을까. 만일 중고마켓에 물건들을 판다면 얼마 정도의 수입이 생길까. 아름은 그런 생각으로 값을 하나하나 더해보았다. 도합 사십만 원이 훌쩍 넘었다. 너무 큰 금액이었다. 김철수 씨에게도 큰 금액일 것이다. 아름은 인터넷 검색창에 ‘운송장 없이 반품’을 입력했다. 유사 내용으로 올라와있는 질문과 답변이 꽤 있었다. 어떻게든 방법은 있을 것 같았다. 아름은 이 달 중순까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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