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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Mar 07. 2020

수요일의 택배

2.



거짓말처럼 김철수 씨로부터의 우편물은 캔들워머 이후로 뚝 끊겼다. 지난 이주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아름은 궁금하다기보다도 속이 편했다. 마치 지난달의 일이 하룻밤 도깨비장난에 불과한 것 같았다. 이대로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가지 않을까. 만일 중고마켓에 물건들을 판다면 얼마 정도의 수입이 생길까. 아름은 그런 생각으로 값을 하나하나 더해보았다. 도합 사십만 원이 훌쩍 넘었다. 너무 큰 금액이었다. 김철수 씨에게도 큰 금액일 것이다. 아름은 인터넷 검색창에 ‘운송장 없이 반품’을 입력했다. 유사 내용으로 올라와있는 질문과 답변이 꽤 있었다. 어떻게든 방법은 있을 것 같았다. 아름은 이 달 중순까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여자의 손이었다. 김요섭 씨의 SNS에 여자의 손 사진이 게시되었다. 그런데 남자 손과 깍지를 낀 여자의 손이었다. 아름은 가슴이 덜컥했다. 그런 기분에 휩싸이는 스스로를 당황스러워하며 그 동시에 바쁘게 내용을 확인했다. 사진 밑의 설명글은 간단했다.

그 사진 밑에 달린 첫 번째 댓글도 간단했다.

아름의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댓글의 하트 앞에 놓인 아이디를 터치했다.

‘비공개 계정입니다. 사진과 동영상을 보려면 계정을 팔로우하세요.’

김요섭 씨에게 애인이 생긴 모양이다. 벨벳처럼 매끄러워보이는 손등이었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여자의 외양을 막연히 상상하게 했다. 아름은 침대에 걸터앉은 상태에서 상체만 뒤로 뉘었다. 손에 잡히는 이불의 모서리를 잡아끌어 배 위에 덮고 사진에 달린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아이고 축하해~’

‘둘이 언제 그렇게? 전혀 몰랐음’

‘우리까지 속여요? 두 분 그냥 연기자 해요’     


아름의 시선이 그 다음 댓글에서 우뚝 멈췄다. 머리로 피가 쏠렸다가 한방에 가슴으로 내리 꽂혔다.     


‘김요섭 니가 철수였냐ㅋㅋㅋㅋ’     


소스라치며 몸을 세웠다. 나머지 댓글들을 빠르게 훑었다. 철수에 대한 언급은 더 있었다.     


‘??? 민영언니의 썸남 김철수가 선배라고요?’     


‘우릴 감쪽같이 속여? 앞으로 철수와 영희라고 부를 거임’     


맨 마지막 댓글은 김요섭 씨 애인의 것이었다.     


‘여러분~ 사실 철수는 요섭씨였답니다! 다들 미안해.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히히.’          


아름은 정신이 아찔했다. 지난 두 달 동안의 사건이 실타래를 푸는 순간이었다. 아니, 엉겨서 응축되어있던 원자가 폭발하는, 아름에게는 그것에 더 가까운 순간이었다. 용산구 독서당로에 사는 ‘김철수’는 김요섭 씨가 맞았다. ‘받으시는 분’은 박민영 씨였다. 비밀리에 관계를 발전시키는 동안 둘 사이에서 김요섭 씨는 김철수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즉시 상황 전반이 이해되었다.


받는 사람과 보낸 사람의 실체를 두 눈으로 맞닥뜨린 아름은 몸서리쳤다. 창피함에 귓볼이 뜨끈거렸다. 자신이 선물의 포장을 뜯어 머리맡에 두고 제 눈 위에 얹어두고 목 뒤에 뿌려보고 하는 동안, 침대에 누워 김요섭 씨의 프로필과 SNS에 올라온 게시물을 열어보며 눈이나 턱선 따위를 확대해보는 동안, 그와 박민영 씨 사이에는 중대한 일이 오고갔다. 잘못된 택배를 받아서 불편을 겪은 것은 아름이었지만 아름의 기분은 그게 아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점잖고 묘하게 가까워지는 도중에 자신이 덜컥 끼어든 것 같았다. 그리고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허튼 결론을 내리고 김철수가 김요섭이 아니라며 안심했다. 두 사람은 길 가운데 의아스럽게 놓여있는 아름을 유연하게 피해 만나야 할 접점에서 무사히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손깍지를 낀 사진으로써 둘 사이를 공표한 것이다.


아름은 이제 머리가 지끈거렸다. 뭔가 알맞은 조처를 취해야 한다. 반품처리를 해야 할까. 이미 사용한 물건들이라도 일단은 되돌려 보내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았다. ‘최선’의 기회는 진즉에 놓친 것도 같았지만. 됐고, 차선이든 차차선이든 반품밖에는 방법이 없다. 아름은 ‘운송장 없이 반품’을 검색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송장번호가 문제였다. 운송장이 없더라도 송장번호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절망스러웠다.     



이틀만이었다. 아름의 지독한 고민이 예기치 않게 끝났다. 새로운 우편물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화요일이었다. ‘보내는 분’은 용산구 독서당로에 사는 <김요섭>이었다.           



'안녕하세요. 지난달부터 약5회에 걸쳐서 ‘김철수’라는 이름으로 택배를 받으셨을 텐데요. 그것들을 보낸 사람입니다. 많이 당황스러우셨죠? 제가 주소를 틀리게 적어 보내는 바람에 길 건너편으로 갔어야 하는 물건들이 그쪽으로 보내진 것입니다. 저의 실수 때문에 덩달아 번거로운 상황에 놓이시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상황 설명을 드린 후에 확인이 필요한 한 가지에 대해서만 여쭙겠습니다.


약 한 달 간 택배가 잘못 배송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제가 해외출장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인이 저를 대신하여 매주 택배를 부쳐주다보니, 돌아가는 상황을 제가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것인데요. 게다가 그 택배물들이 이벤트성을 띤 것들이라 상황 파악이 더 늦어졌습니다. 받는 분과 약속을 하고서 보낸 것이 아니라 제 쪽에서 일방적으로 보낸 선물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분으로부터 택배가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리 만무했습니다. 저는 또 저 나름대로 그 분의 반응을 재촉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던지라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네요. 며칠 전에야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전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소 황당한 속사정을 양해해주십사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이제 제가 여쭈고 싶은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받으신 물건들이 온전한 채로 보관되어 있는지요? 오배송 된 택배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셨으리라 짐작합니다. 하지만 확인해본 결과 반품 처리된 택배는 없었습니다. 운송장에 제 번호가 적혀 있었음에도 아직 연락이 없으시고요. 택배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일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아니면 바쁘셔서 반품신청을 아직 못 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어르신이 사시는 집으로 보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위와 같은 경우라면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편지 하단에 적힌 제 휴대폰 번호로 전화 주시면 직접 방문 드리고 택배물을 수거해오도록 하겠습니다. 두 달 간 여러모로 불편하셨을 텐데 적절한 보상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다른 경우의 수도 있습니다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물건을 사용하셨다면 돌려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어느 만큼의 배상은 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금액은 가능하신 만큼 보내주십시오. 따로 연락은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신한은행 000-000-000000, 예금주: 김요섭>

제 탓이 큽니다. 귀찮은 일을 겪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010-0000-0000'



아름은 다 읽은 편지를 한손에 쥐고 부엌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명료, 침착, 정중한 편지였다. 어찌나 침착하고 정중한지 읽는 이마저 그렇게 만들었다.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내들 때 아름에게 차올랐던 당혹감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아름은 ‘제가 생각하는 다른 경우의 수’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제 다시 그의 주소를 알게 됐지만 물건을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그가 너무도 정확하게 짚어냈기 때문에, 아름은 그의 말을 따를 기운 밖에는 남지 않은 상태가 됐다. 어느 만큼의 배상, 금액은 가능하신 만큼, 그런 말들에 아름의 최후의 양심이 걸려있었다. 아름은 통장 잔액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 앱을 켰다. 이제 간단한 패턴을 입력하고 나면 아름이 얼마까지를 양심에 소비할 수 있는지가 결정될 것이다. 휴대폰 액정에 어슴푸레 얼굴이 비쳤다. 그 표정을 아름은 영영 모르고 싶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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