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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타한잔 Jul 01. 2016

왠지 쿨한 관계

에서 오는 신뢰에 대한 이야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복잡 미묘하다.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고 오래된 관계도 자그마한 것들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며 흔들리곤 한다. 오늘은 크게 흔들리지도 변하지도 않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친구 H와 나는 중학교 클래스메이트를 시작으로 내가 대전으로 이사 가기 전 까지는 동네 친구로 주욱 지낸 사이다. 가깝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멀지도 않은 관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사이의 공통점이 거의 없다. H는 좋은 성적에 모범적인 생활을 그리고 축구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나는 그저 그런 성적에 되는대로 살았고 농구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말이다. 당시 유행했던 축구게임을 아직까지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 안경을 낀다는 공통점도 있긴 하다. 의미는 없지만.


우리는 항상 급작스럽게 축구게임 약속을 잡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오늘 메시 해트트릭 했던데 기념으로 주말에 한판?" 일단 약속이 잡히게 되면 주말 아침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는 바로 게임을 할 수 있는 플스방으로 진입하여 축구선수들의 이름을 외치며 승부를 가른다. 패자는 깔끔하게 게임비를 지불하고 승자는 오늘의 승부를 평가하며 플스방에서 나오는 것 까지 완벽한 루틴이다. 돈을 내는 사람이 매번 바뀔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직 식사를 안 했다면 별 다른 고민 없이 근처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또는 김밥집을 들어가고 이미 식사를 했다면 맥도널드의 가장 저렴한 커피를 구입해서 잠깐 서로의 근황을 점검한다. 유행이 지나서 플레이 파트너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 축구게임을 하는 것도 즐겁지만 근황을 확인하는 자리가 나에게는 조금 더 의미가 있다.


H와 나의 대화는 질문도 간단하고 대답도 간단하다. 사실 나는 H에 대해서 걱정하는 마음이 없다. H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가 잘 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고 그 역시 내가 잘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런 간략한 대화를 통해 조금은 더 근본적인 부분에 근거한 신뢰를 느끼곤 한다.


우리는 소통이 대두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서로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 끊임없이 의사소통하고 배려하고 맞추라고 강조한다. 나 역시 부모님, 여자친구, 친한 친구 a to z 까지 많은 소통을 통해 무언가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이들 역시 나를 근본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다양한 변수들에 의해 수시로 관계의 흐름이 바뀌고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아지면서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마주하게 되는 쿨한 관계에서 느껴지는 신뢰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흐릿하고 목표를 잃었던 나의 과거의 선택들이 의외의 관계를 통해 명확해지고 방향성을 갖게 된다.


소통의 시대에서 소통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면 한 번쯤은 바로 옆에서 소나무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정말 좋다. 많은 말도 필요 없다. 그저 그들이 주는 그 느낌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한 가치를 갖게 된다.


언제나 나에게 영감을 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H에게 고맙다는 말을 이 노트를 통해 하고 싶다. 그리고 다음 게임비는 네가 내게 될 거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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