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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Jun 06. 2024

기업상담에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을까?: 2년차 회고

심리학자로 살아남기

  어느새 푸릇한 계절이 다가왔어요. 그동안 글로 정리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경험들이 많네요. 오늘은 1년차를 지나 2년차로 접어든 기업상담자 생활과 그동안 느낀 점들을 회고해보려고 해요.


  먼저 개인상담에서 다양한 내담자를 끊임없이 만나며 경험치가 쌓이고 있어요. 20~50대, 남녀, 다양한 가구형태, 오피스근무와 교대근무, 마음건강부터 고과, 상하, 부부관계, 금전문제까지, 그리고 지원부터 개발, 제조 직군까지. 낯선 내담자분들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 나은 상담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담자로서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어요. 루틴처럼 깔아놓은 슈퍼비전, 세미나, 북리딩이 소진되다가도 상담자로서 상담실에 들어갈 수 있게 도와주고 있어요.


  두 번째, 상담자로서 시야가 넓어진다고 느껴요. 기업에 오지 않았더라면,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의 중요한 발달과업과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직장인에게 고과나 진급이 얼마나 생존본능을 자극하는지 몰랐다면, 그것을 눈여겨 살펴보지 않고 감정이나 생각만 따라가기 바빴을 테고, 초임 리더가 경험할 역할과 역량 전환의 어려움과 같은 리더십에 대해서도 달리 질문이나 반응이 떠오르지 않아 막막했을 겁니다. 저 역시도 상담자이자 조직원으로서의 경험이 생기고, 여러 관점의 내담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담자가 경험하는 어려움을 단지 개인 내적인 경험 차원뿐만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놓고 보게 됩니다.


  세 번째, 심리교육을 비롯한 집단활동이 또다른 에너지가 됩니다. 기업상담자는 개인상담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개인상담만 했더라면, 소진과 무료함이 금세 그리고 자주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내밀한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고 따라가는 것은 의미 있고 보람 있지만 또 그만큼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기업상담을 준비하면서 ‘집단 속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점을 적기도 했었는데요. 집단 상호작용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 할 뿐만 아니라,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고 경험마다 줄 수 있는 행복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제겐 다양한 역할과 경험이 도움이 됐어요.


  네 번째, 닮고 싶은 동료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저라면 결코 생각지 못했을 대처나 상담개입부터 시작해서, 상담 외적으로 주어지는 업무에서의 주제 구체화, 업무 수행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어요. 지금 떠올려보면, 일반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쉽게 전달할지, 효과성과 효율성이라는 상충되는 가치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지에 대한 것들이었어요. 진정한 고수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전달할 줄 알고, 청자가 어떻게 들을지에 대해 고민하며, 효과적이지만 빡빡한 과제는 중도하차율을 높이고 쉽고 해볼 법한 과제는 성공경험이 된다는 걸 유념합니다. 청자의 흥미와 관여를 끌어내고 넘치지 않게 유머와 예시를 사용할 줄 알고요.


  다섯 번째, 회사원인가 상담자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조직 위기관리를 포함한 다양한 요구를 상담자이면서 조직원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나갈 것인가는 기업상담자에게 중요한 주제일 텐데요. 처음에는 자타해위험 등의 비밀보장 예외 상황에 대한 판단에서부터 조직의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내려오는 업무가 꼭 상담자가 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의구심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있었어요. 거기에는 조직원 개인으로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문제, 전문가로서의 정체성, 내담자의 복리증진을 우선시하려는 상담자로서의 가치 등이 뒤섞여 있죠. 그런데 최근에는 회사원이기에 가능한 일상에 대해서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석사를 입학했을 때 박사 선생님께서 진로에 대해 ‘남들이 쉬는 저녁과 주말에 일하는 삶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한다’는 말을 하셨었는데요. 그때는 그 말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운 것인지 몰랐습니다. 개업이든 프리랜서든 미래를 떠올려보면 저녁과 주말에 일이 몰릴 것인데 괜찮을까. 생각해보면 병원 수련 1년차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살아왔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도 끝나지 않습니다. 남들이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일상이 소중하지만 ‘앞으로 어떤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하는 질문은 계속됩니다. 제게는 새로운 경험과 인간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다양한 역할에 대한 욕구도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기업상담이 과연 커리어의 마지막일까,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되고 싶은가 질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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