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강대국 사이의 생존 전략

지정학적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구조로 만들다

by 박상훈

2화. 강대국 사이의 생존 전략

― 지정학적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구조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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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늘 끼어 있었다


핀란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 ― '사이'다.

700년은 스웨덴, 100년은 러시아, 그리고 20세기 내내 동서 냉전의 최전선.

그렇다고 완전히 동양도, 완전히 서양도 아니면서 늘 어딘가에 끼어 있는 나라.


이 '사이'에서 핀란드는 선택했다.

거대한 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고립되지 않는 법.

핀란드식 생존 전략의 본질은,

양극단의 논리도, 무조건적 중립도 아닌, 구조적 실용주의였다.


경계에 선다는 것 ― 위기의 일상화 vs. 시스템의 일상화


핀란드의 현대사는 위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 1917년 독립, 곧이어 내전

- 1939년 겨울전쟁, 소련의 침공

- 1944년 연합국과의 복잡한 동맹과 전후 복구

- 냉전기 핀란드화 논란

- 1990년대 소련 붕괴, 경제위기

- 2020년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동부 국경 긴장


하지만 핀란드는 이런 위기를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화했다.

- 위기에 빠지지 않는 외교적 언어

- 자율적 국방(전 국민 징병제, 예비군 시스템)

- 다층적 동맹 네트워크(북유럽, EU, NATO)

- 외교적 중립과 실용의 줄타기

- 위기 속 합의제 정치, 사회적 연대 시스템


외부는 변한다, 내부의 구조는 설계한다


핀란드는 러시아, 스웨덴, 독일, NATO, EU 등

항상 더 큰 힘의 질서 안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닌 현실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배운 교훈은 명확하다.

- 외부 환경은 바꿀 수 없다

-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내부의 구조뿐이다


그래서 핀란드는 정권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착한다.

- 정당마다 다른 이념, 그러나 합의가 안 되면 실행하지 않는다

- 위기 때는 누구보다 빠르게 전국단위 합의

- 법률, 사회복지, 교육, 국방, 환경… 구조가 사람 위에 있다


시스템적 실용주의 ― 핀란드화의 오해와 진실


냉전기의 핀란드화(Finlandization)는

강대국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외부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 핀란드는

- 핵심 국익(민주주의, 시장경제, 문화적 자율성)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 외교적으로는 침묵과 회피라는 전략적 언어를 구사했다

- 내부적으로는 모두가 납득하는 합의를 전제로 정책을 설계했다

- 외부의 압력(검열, 자기검열)도 구조적으로 흡수할 시스템(언론의 자기규제,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만들었다

즉, 굴복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존의 구조화'였다.


살아남는 나라의 사고법 ― 최악을 가정하고, 최선을 설계한다


핀란드의 정책기획자들은 언제나

만약, 내일 러시아가 다시 침공한다면?

만약, 유럽의 질서가 흔들린다면?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 국방은 전 국민 동원 체제

- 식량, 에너지, 의약품… 6개월간 독자생존 가능한 비축 시스템

- 위기 시 정부와 민간이 동시에 가동되는 위기 대응 매뉴얼

- 외교는 언제나 다자주의, 네트워크, 실용적 협력

- 교육은 비판적 사고와 구조적 문제해결력에 방점


한국과 달리,

강대국에 기대거나, 감정적으로 적대하거나, 무작정 중립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실용주의를 일상화한 것이다.


구조로 바꾼 생존본능 ― 핀란드식 사고의 DNA


핀란드는 내가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냉정함에서 출발하지만,

내 안의 시스템은 내가 바꾼다는 집요함으로 귀결된다.

- 준비된 위기는 더 이상 위기가 아니다

- 합의된 시스템은 누가 집권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 실용의 구조는 외부의 변화와 충돌해도 스스로를 지킨다


우리의 질문


한국 사회는 사이에 끼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핀란드는

사이에서 살아남는 법,

사이를 구조로 만드는 법을

역사와 현실 속에서 증명해왔다.


위기의 일상화,

불안정한 국제질서,

거대한 외부의 힘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질문은

누구 탓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바꿀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가?이다.


다음 화 예고


3화에서는 겨울전쟁의 유산 ― 절대적 열세에서 배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을 다룹니다.

핀란드가 무력과 자원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시스템의 힘으로 역사를 바꿨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복지, 국방, 혁신, 교육 시스템에 어떻게 내재되어 있는지 탐구합니다.


[핀란드 : 침묵의 지성이 만든 구조]

왜 550만 명의 작은 나라는 세계를 가르치는가

1부 2화. 강대국 사이의 생존 전략 – 지정학적 위치가 길러낸 구조적 사고법

(이 글은 핀란드 정부, OECD, EU, S Group, 다양한 공식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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