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집중을 극복하려는 시도와 실패
21화. 소멸 위기 지방을 살리려는 일본의 몸부림
― 도쿄 집중을 극복하려는 시도와 실패
2조 엔을 쏟아부었지만 달라진 건 없다
2025년 시마네현 오치초.
인구 9,800명의 작은 마을은
'소멸 위험' 1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10년 전, 이곳에는 '지방창생' 예산으로
청년 창업 지원센터가 들어섰다.
지금은 문을 닫은 지 3년째다.
돈을 뿌린다고 사람이 오겠냐는,
마을 이장의 한마디가 뼈아프다.
2014년 시작된 지방창생 정책은
10년간 2조 엔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도쿄 집중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위기에서 시작된 정책
2014년,
일본창성회의의 충격적인 발표가 있었다.
896개 시정촌이 2040년까지 소멸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
아베 정권은 즉시 '마을·사람·일자리 창생 본부'를 설치하고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 2020년까지 도쿄권 전입 초과 0명
- 합계출산율 1.8 달성
- 지방에서 30만 개 일자리 창출
1기 5년 계획(2015-2019)에만 2조 엔이 투입되었고
온갖 정책 수단이 동원됐다.
도쿄 집중의 가속화
2025년 기준 도쿄권 인구는 3,78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30.8%를 차지한다.
2015년 28.4%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젊은 층의 집중이다.
20대 인구의 도쿄권 집중률은 42.1%로
2015년 37.8%보다 4.3%포인트 상승했다.
2024년 한 해 동안 도쿄권 순 유입은 12만 3,000명.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집중 현상이
2023년부터 다시 가속화되고 있다.
지방 소멸의 현실화
인구 1만 명 미만 시정촌은 743개로
2015년 대비 78개 증가했다.
이 중 127개는 인구가 5,000명도 안 된다.
특히 20-39세 여성 인구가 2015년 대비
50% 이상 감소한 시정촌이 234개에 달한다.
홋카이도 유바리시 인구는 6,200명으로
2015년 대비 절반 이하가 되었다.
경제 논리를 거스르는 정책
근본적으로 지방창생은 시장 경제 논리와 배치됐다.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기업들에게
지방 이전을 강요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2025년 현재 도쿄 증권거래소 1부 상장 기업의 56.8%가
여전히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다.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본사 이전 기업은 3.2%뿐이다.
교육과 문화의 수도권 독점
젊은 층이 도쿄로 몰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전국 국립대 정원의 48%가 도쿄권에 집중되고
주요 문화시설의 76%가 도쿄에 위치한다.
지방 국립대 졸업생의 69%가
취업을 위해 도쿄권으로 이주하는
'인재 유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디지털 격차의 지속
코로나19로 텔레워크가 확산되면서
지방 거주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디지털 인프라 격차가 문제가 되었다.
농촌 지역의 22%는 아직도 5G 서비스가 안 되고
광대역 인터넷 속도도 도쿄 대비 40% 수준이다.
후쿠오카의 부분적 성공
후쿠오카시는 지방창생의 상대적 성공 사례다.
2015-2025년 인구가 8만 명 증가해 162만 명을 기록했다.
IT 스타트업 유치와 아시아 게이트웨이 전략이 주효했다.
하지만 이는
다른 규슈 지역 인구를 빨아들인 결과다.
규슈 전체 인구는 같은 기간 35만 명 감소했다.
군마현 마에바시시의 시행착오
2016년 '바바씨 시장'으로 화제가 된 마에바시시는
청년층 임대료 지원, 창업 인큐베이터 설치 등
파격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초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2023년부터 다시 인구 유출이 시작되었다.
근본적인 일자리와 문화 인프라 부족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보여준 것과 한계
2020-2022년 코로나19 기간 중
처음으로 도쿄 인구 유입이 감소했다.
2021년에는 1만 4,000명의 순 유출까지 기록했다.
잠시 '지방 시대'의 가능성이 보였지만
2023년부터 집중 현상이 재개됐다.
텔레워크가 줄어들고 대면 활동이 재개되면서
도쿄의 매력이 다시 부각된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워케이션', '이중 거주' 등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는 주로 고소득층의 선택지일 뿐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현실적 제약이 많다.
탑다운 방식의 한계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추진한 지방창생은
각 지역의 특성과 자율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돈 뿌리기' 식 지원은 일시적 효과는 있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구조 개혁의 부재
기본적으로 현 구조를 유지하면서
지원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중앙집권적 행정 구조, 수도권 집중적 산업 구조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한계가 있었다.
장기적 비전의 부족
정치적 주기에 맞춘 단기 성과 위주 정책으로는
수십 년에 걸친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지원금으로 건물은 지었지만 사람은 안 온다"
― 이와테현 어느 시장의 토로
"젊은이들이 떠나면 누가 지역을 지킬 건가?"
― 아키타현 농민의 한탄
"도쿄 사람들이 와서 카페 하나 열고 가더라"
― 시마네현 주민의 씁쓸한 웃음
지방의 현실은 정책 보고서보다 훨씬 절망적이다.
일본의 지방창생 실패를 보며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프랑스처럼 수도 기능을 분산시키거나
독일처럼 연방제로 지방의 자율성을 높이거나
네덜란드처럼 중간 도시들을 육성하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수십 년간 쌓인
도쿄 집중 구조를 바꾸기엔 너무 늦었는지 모른다.
미래를 위한 교훈
지방창생 10년의 실험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단순한 재정 지원만으로는 지역 균형 발전이 불가능하다.
구조적 개혁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상향식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치적 주기에 좌우되지 않는,
초당적 합의와 지속적 추진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오늘의 교훈
지방 소멸은 단순한 재정 지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의 지방창생 정책 10년이 보여준 것은
위에서 아래로의 일방적 지원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상향식 접근이 필요하고,
정치적 주기에 좌우되지 않는
장기적 일관성이 중요하다.
한국의 지방소멸 위기도 마찬가지로
중앙정부의 획일적 정책보다는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맞춤형 전략과
지속적인 추진 체계가 필요하다.
다음 화 예고
22화에서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부재 – 혁신 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다룹니다.
일본에서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오지 않는 구조적 요인들과
대기업 중심의 보수적 투자 문화가 혁신을 저해하는
메커니즘을 살펴봅니다.
[일본 : 잃어버린 미래가 남긴 구조적 경고]
3부 21화. 소멸 위기 지방을 살리려는 일본의 몸부림 – 도쿄 집중을 극복하려는 시도와 실패
(이 글은 일본 내각부 2024년 지방창생 보고서, 총무성 2025년 인구이동 통계, 국토교통부 2024년 지역개발 연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25년 지방소멸 분석 등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