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탓을 하면 구조가 안 보인다
36화. 트럼프는 증상이다, 양당제가 원인이다
― 사람 탓을 하면 구조가 안 보인다
2026년 3월 3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60대 은퇴자 존 밀러는 평생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지난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30대 딸 에밀리와 고성을 지르며 싸웠다.
존: “불법 이민자들이 내 세금을 훔쳐가고,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에밀리: “아빠가 찍은 트럼프 때문에 내 낙태권이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죽었어!”
결국 부녀는 서로 연락을 끊었다. 같은 나라, 같은 집에 살던 가족이 정치 때문에 원수가 되었다.
이것이 2026년 미국의 일상이다.
3월 31일부터 미국 주유소에는 갤런당 4달러가 넘는 가격표가 붙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이란 공습 결정 이후 유가가 급등하면서 지지율은 36%로 추락해 재집권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공화당 지지자들조차 흔들리는 이 순간, 존과 에밀리 부녀는 여전히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고 있을 것이다. 정작 휘발유값을 올린 결정을 내린 사람이 아닌, 서로에게.
시리즈 1 마지막에서 우리는 물었다: 이 불평등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정치 권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 답의 첫 번째가 오늘의 주제다. 존과 에밀리가 경제적 불평등(최저임금, 의료비)에 맞서 연대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게 만드는 시스템 말이다.
정치적 혐오 수준:
2022년 퓨리서치 조사에서 상대 당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생각하는 공화당원 비율은 72%, 민주당원은 63%였다. (2016년에는 각각 47%, 35%였다. 6년 만에 극단적 혐오가 일상화됐다.)
그리고 2026년 1월 퓨리서치 최신 조사는 또 다른 수치를 보여준다.
민주당 지지자의 88%가 우리 편이 지고 있다고 답했고, 공화당 지지자는 60%가 이기고 있다고 했다.
역대 최대 격차 50%포인트.
두 진영은 같은 나라에 살면서 완전히 다른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제3당 열망 vs 현실 (갤럽 최신 조사):
“양당 외에 제3정당이 필요하다”: 62% (2023년엔 역대 최고인 63%를 찍었고, 이 수치는 2013년 이후 대체로 6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 대선에서 제3당 득표율: 약 2%
동시에 갤럽은 무당파 등록 비율이 45%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인 절반 가까이가 어느 당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 무당파의 향방이 최대 변수다.
미국인 10명 중 6명이 민주당도 공화당도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투표소에서는 결국 둘 중 하나를 찍는다.
유권자가 바보라서가 아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강제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등만 다 가져가는 단순다수제다.
어떤 선거에서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하자:
A 후보: 42%
B 후보: 39%
C 후보: 19%
유럽 비례대표제라면 의석을 4:4:2로 나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A가 100%를 가져간다.
나머지 58%의 표는 휴지조각이다.
결국 유권자는 내가 원하는 후보가 아니라 내가 혐오하는 후보의 당선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에게 표를 던진다. 양당은 좋은 정책을 낼 필요가 없다. 상대가 얼마나 끔찍한지만 보여주면 표는 굴러온다.
당내 경선 투표율은 본선거보다 훨씬 낮다. 투표장에 나오는 건 양 극단의 가장 열성적인 지지자들뿐이다.
공화당 후보가 되려면 트럼프보다 더 강경해야 표를 얻는다. 민주당 후보가 되려면 더 극단적인 진보가 되어야 한다. 타협을 말하는 온건파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탈락한다.
경선이 끝나면 본선 무대에는 양 진영에서 살아남은 가장 극단적인 두 명의 검투사만 남는다.
케임브리지 대학 정치심리학 연구팀이 2026년 2월 《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정치 분열은 1988년 이후 64% 증가했으며, 대부분은 2008년 이후에 집중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 우파는 지난 35년간 보수성이 2.8% 증가에 그쳤지만, 미국 좌파는 같은 기간 31.5%나 더 진보화됐다는 것이다. 한쪽이 급격히 변하면서 간극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간극은 프라이머리 시스템을 통해 정치권에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투영된다.
미국 정치에서 분열은 이념이 아니라 수익 모델이다.
폭스뉴스 vs CNN: 시청자가 분노할수록 시청률 상승. 2025년 9월 한 달만으로도 폭스뉴스·CNN·MSNBC 세 채널의 광고 수익 합계는 2억 달러를 넘었다.
소셜미디어: 극단적 콘텐츠가 체류시간과 광고수익 극대화
정치인: 상대를 악마화하는 이메일 한 통에 수백만 달러 후원금 폭발
분열될수록 모두가 돈을 번다. 단, 국민만 빼고.
이것이 워싱턴 정치 비즈니스의 핵심 룰이다.
시러큐스 대학 민주주의·저널리즘·시민성 연구소의 조해나 더너웨이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디지털 미디어 대부분은 클릭수와 체류시간 같은 관심도 지표에 수익을 의존한다. 매체들은 가장 자극적인 콘텐츠를 생산·유통하도록 강한 경제적 유인을 받는다.”
분열은 이념이 아니라 비즈니스다.
이 고장난 정치가 시리즈 1의 '경제 불평등’과 어떻게 연결될까?
연방 최저임금 7.25달러는 2009년 이후 17년째 동결이다.
미국 역사상 최저임금을 가장 오랫동안 올리지 않은 기간이 지금 진행 중이다.
물가는 치솟고, 의료비는 살인적이고, 학자금 대출 덫은 젊은이들을 옥죄고 있다.
이것은 99%가 겪는 공통의 고통이다.
하지만 정치는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낙태, 총기, 성소수자, 인종 같은 문화 전쟁으로 전선을 옮긴다. 존(백인 노동자)과 에밀리(도시 직장인)가 월스트리트에 맞서 연대하지 못하게, 문화 참호 속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국민이 문화 이슈로 피 터지게 싸우는 동안, 거대 제약사와 군산복합체 로비스트들은 양당 모두에 돈을 대며 조용히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관철시킨다.
오늘 미국은 이란 전쟁으로 갤런당 4달러 휘발유 앞에 서 있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60% 이상이 이 전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전쟁은 계속된다. 이것이 바로 정치 교착의 힘이다—99%의 의지가 아닌, 소수 권력의 결정이 작동하는 방식.
트럼프는 이 시스템의 완벽한 산물이다.
분열을 극대화하고, 혐오 비즈니스를 폭발시키며,
경제 구조 개혁 논의를 원천 차단하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
한국은 비례대표제가 있어 미국보다 낫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그래도 저 당은 안 돼"라는 차악의 선택
강성 팬덤이 주도하는 당내 경선
유튜브 알고리즘이 돈을 버는 혐오 콘텐츠
2025년 7월 국회입법조사처는 「정치적 양극화와 소셜미디어의 책임」 보고서를 통해 유튜브의 알고리즘 추천 서비스가 이용자의 정치적 태도를 극단화하고 있다는 실증 분석을 내놨다. 한국 언론학회의 2025년 연구 역시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확증편향을 강화해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결론지었다. 윤석열 탄핵 정국을 거친 2025년 국회는 역대 최악의 양극화 국회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한국 정치는 미국의 가장 나쁜 점들을 놀라운 속도로 복제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은 선거제도 개편 여지가 남아 있다. 미국처럼 주별로 다른 선거법이나 선거인단 같은 복잡한 장벽도 없다. 국민 열망이 모이면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트럼프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시스템의 산물이다.
35화에서 우리는 경제 불평등이 어떻게 시스템으로 고착화되는지 봤다. 36화에서 본 것은 그 불평등을 고쳐야 할 정치 시스템마저 분열이라는 자물쇠로 잠겨 있다는 사실이다.
양당은 서로 죽일 듯 미워하지만, 사실은 제3의 대안을 막고 권력을 독과점하는 적대적 공생이다. 트럼프는 이 혐오 비즈니스가 낳은 가장 성공적인 상품일 뿐이다.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2025년 7월에 있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와 결별하고 'America Party’를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쏟아붓는 자원과 팔로워를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단순다수제, 각 주마다 다른 후보 등록 장벽, '차악을 찍어야 한다’는 유권자의 공포 심리—이 세 겹의 자물쇠 앞에서 머스크의 야심도 구조에 막혔다. 시스템은 개인의 의지보다 강하다.
정치가 고장난 게 아니다. 소수를 위해 너무나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양당제가 분열을 낳는 큰 그림을 봤다.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이 시스템을 못 바꿀까? 제3당 후보가 나오면 왜 항상 '선거판 망친 스포일러’로 욕먹고 사라질까?
1992년 로스 페로 19% 득표, 0석의 비극
2000년 랄프 네이더 “부시 당선시킨 죄인” 낙인
2025년 일론 머스크 America Party의 구조적 좌절
수학이 증명하는 제3당 불가능의 공식
“왜 투표용지에는 항상 두 개의 이름만 남는가”
37화에서 계속됩니다.
[세계 구조를 읽어보자 - 미국편]
정치 시스템의 구조적 교착
1화 (시리즈 36화). 트럼프는 증상이다, 양당제가 원인이다
(이 글은 Federal Reserve Bank of St. Louis 주택가격지수, US Census Bureau 주택 소유율 통계, Joint Center for Housing Studies of Harvard University “The State of the Nation’s Housing” 2025, Demographia International Housing Affordability Survey 2024, Zillow Research 주택 데이터, 한국은행 주택가격동향, KB부동산 PIR 통계, 국토교통부 주택가격동향, Pew Research Center 정치 양극화 조사 (2022·2026), Gallup 제3당 여론조사 및 무당파 등록 통계 (2024·2025), Federal Election Commission 선거 통계, Royal Society Open Science “A new measure of issue polarization using k-means clustering: US trends 1988–2024” (Cambridge University, 2026),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적 양극화와 소셜미디어의 책임」 (2025), 한국언론학회 학술대회 「유튜브 알고리즘과 정치적 양극화」 (2025), Reuters 트럼프 지지율 조사 (2026.3), AAA 전국 유가 데이터 (2026.3), New York Times “Will $4 Gas Hurt Trump’s Approval Ratings?” (2026.3.31), NELP 연방 최저임금 동결 현황 보고서 (2026)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