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BUNI Sep 05. 2024

‘그리움’에는 한이 담겨있다

부재를 통해 비로소 깨달은 세 글자 단어의 깊이와 의미

2024년 10월 1일, 임시공휴일 지정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고 휴일을 세어보다 발견했다.


'10월 4일, 채 여사님의 90번째 생일'


내 달력속 채 여사님은 매년 생일을 맞이한다. 2018년 1월 5일, 채 여사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살아계실 때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귀찮다고 게으름을 피웠던 것이 후회스럽고 죄송하여 생일을 지우지 못했다. 생일과 함께 아직도 나의 연락처에는 전화번호가 남아있다.




중학생이던 2003년 즈음, 처음 뇌종양을 발견하여 수술을 했고, 그 이후로도 여러차례 수술과 치료를 반복하고 약도 드셔야 했던 나의 채 여사님. 넘어지셔서 고관절 수술도 받았지만 늘 정정하셨고, 이십대 손녀보다 자기가 더 힘이 세다며 팔뚝만한 고구마를 썰어 쪄주시곤 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라남도 목포 집에서 잠깐 정기검진을 받겠다고 올라오셨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셨다. 갑자기 종양이 너무 커져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어 병원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셔야만 했고 목포에 계신 할머니 단짝친구와는 영상통화로 작별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으셨다.


할머니가 떠나신 그 당시에는 해야할 것들이 참 많았기에 감정보다 해내야한다는 책임감이 더 컸다. 하필 그 때 집안의 어른들이 해외에서 근무중이셔서 손자, 손녀의 몫이 있었다. 몇 달이 지난 뒤, 날이 따뜻해지는 봄이 되자 부쩍 외할머니 생각이 자주 났다.


‘아, 삭힌 홍어는 못드셔도 홍어무침은 좋아하셨는데.’

‘늘 전화하면 노인정 다녀오셨다고 했는데, 살아계셨으면 저렇게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셨겠지.’


정정한 모습으로 친구분들과 나들이를 다니시는 어르신들을 보면 할머니가 떠올랐고, 그제서야 처음으로 '그립고, 보고싶다'는 말을 이해했다. '보고싶다'라는 단어와 '그립다'는 단어의 차이를 서른이 넘어 구분할 수 있었다.




'보고싶다'는 애틋함, 설렘이 가득한 말이었다. '보고싶어? 그럼 보면되지'처럼 문장의 형태였고 시간과 돈을 들이면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단어였다. 돈은 큰 문제가 되지 못했고, 시간이 부족하면 조금 더 부지런해지거나 계획을 세우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립다'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미 돌아갈 수 없고,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나의 마음 속에, 기억 속에 예쁘게 오래 잘 간직하면서 이따금씩 꺼내봐야하는 것이었다. 그안에 담긴 나의 후회와 미안함도 같이 되새기며 현재를 더 잘 살아가기 위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말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부재를 통해되돌아보게 된 여러가지 상황과 감정을 그제서야 그리움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채 여사님의 생일 알림을 받으면 그리워하고 추억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이해하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