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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호 Jan 07. 2020

Factfulness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으니 너무 비관하지 말라


한 줄 요약 -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으니 너무 비관하지 말고, 당신의 직관은 사실과 다를 수 있으니 유연하게 생각하되 사실과 데이터를 직시하라. 


저자 한스 로슬링은 스웨덴 출신의 의사이자 통계학자로, 아프리카에서 의사로 봉사했고,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사명으로 갭 마인더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몇 해 전 그의 TED 강연을 흥미롭게 보았고, 빌 게이츠가 블로그에서 이 책 칭찬을 많이 했길래 한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번역본이 나왔다. 


책에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잘 못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13개의 질문이 나온다.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난 100년간 연간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세계 인구 중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퍼센트일까? 세상이 나아지고 있는지, 더 힘들어지고 있는지 묻는다.  답변을 한 전 세계 만 이천 명 인간의 평균 정답률은 16%에 불과하다. 전문가나 지식인도 별반 나을 것이 없다. 침팬지에게 세 개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삼분의 일은 될 테니 인간이 침팬지보다 세상을 모른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세상을 실제보다 훨씬 비관적으로 본다.  20년 전만 해도 전 세계 인구의 29%가 극빈층이었지만, 이제는 그 비율이 9%로 줄었다. 갈등과 그 갈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그 어느 때보다 적을뿐 아니라 1986년에는 6만 4천 개나 있던 전 세계 핵탄두가 이제는 1만 5천 개로 줄었다. 인간은 서로 싸우고 죽이기도 하나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할 줄도 안다. 불과 2-30년 사이에 세상은 지속적으로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매트 리들리가 쓴 이성적 낙관주의자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세상을 실제보다 나쁘게 볼까? 저자는 10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극적 본능' 인데,  이런 본능과 언론이 그 본능을 이용해 주의를 사로잡는 탓에 우리는 늘 세상을 과도하게 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오랫동안 CNN에서 보는 한국의 이미지는 노사 문제로 매일 시위가 끊이지 않으면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속에 사는 나라였지 않은가? 


한국 얘기도 나온다. 물가를 반영한 1인당 연간 GDP와 평균 수명을 볼 때 한국은 이미 경제적으로 윤택하면서 수명이 긴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4단계 국가 그룹에 속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책에 나온 열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한 사람들의 국가별 비율 중 한국이 매우 높은 편이다. 짧은 기간 엄청난 성장을 이룬 한국인들이 그 변화를 목격했고 경험했기 때문이겠다. 


지난 4-50년간 한국만 엄청난 변화를 만든 것으로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불과 지난 20년 사이에 많은 저개발 국가들이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냈다. 서구 선진국들도 평생 유복했던 건 아니다. 짧으면 50년 길어야 백 년 먼저 변화의 여정을 시작했을 뿐이다. 


오늘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마초적 가치는 아시아의 가치도, 아프리카의 가치도 아니며 이슬람의 가치도 아니고, 동양의 가치도 아니다. 스웨덴에서 60년 전에나 볼 수 있었던 가부장적 가치이며, 스웨덴에서 그랬든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라질 가치다. 


책에서 아쉬운 면도 있다.  저자가 예로 든 지표 이외에 인류의 진보와 퇴보를 측정하는 다른 지표들도 많지 않은가?  윤리의식이나 도덕성, 다양성에 대한 포용성, 빈부 격차는 어떤 트렌트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저자가 세상을 네 단계로 구분할 때 사용한 지표가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한 사람당 하루 4달러를 버는 것이 국가별 삶의 기준을 측정하는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세상을 장밋빛으로 보는 기득권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의문을 의식한 듯 저자는 말한다. 세상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는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여전히 가능성 옹호론자다. 다음 세대는 매우 긴 계주 경기의 마지막 주자와 같다. 극도의 빈곤을 끝내는 경기는 1800년에 총성이 울린 긴 마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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