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호 Jan 07. 2020

김훈 장편소설 "공터에서"

"아빠는 옛날 사람이잖아!"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모르나 딸아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나이 차이 저와는 기껏 삼십 년도 안되는데 나더러 옛날 사람이란다. 팔 구십 년생 젊은이에게 광주항쟁이나 7-80년대 민주화 투쟁이 먼 옛날 얘기이듯, 이제 오십 대 후반을 향하는 나에게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다.


지난주 서울 갔다 오는 길 인천공항 서점에서 들고 온 김훈 작가의 2017년 신작 소설인데,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배경이 그리 옛날도 아니다. 불과 한두 세대 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지나 베트남 파병을 거쳐 79년 대통령 시해 사건 때다. 일제시대 중국을 떠돌던 주인공 마동수와 흥남 철수때 남편과 피붙이를 잃고 부산에 도착해 낙동강에서 피 묻은 군복 세탁일을 하다 마동수를 만나 부부가 된 이도순, 그들의 두 아들 마장세와 마차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마차세를 만나 결혼한 박상희로 이어지는 남루한 가족사다. 집집마다 한 보따리씩은 쌓여 있을 법한 이야기다. 김훈은 작가 후기에 이렇게 썼다.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별것 아니라고 스스로 달래면서 모두 버리고 싶었지만 마침내 버려지지 않아서 연필을 쥐고 쓸 수밖에 없었다. 당대의 현실에서 발붙일 수 없었던 내 선대 인물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그들의 기록, 언행, 체취, 몸짓, 그들이 남긴 사진을 떠올리면서 겨우 글을 이어나갔다.


소설 속 그들의 질곡 어린 삶이 남 일 같지 않은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보다. 월남 파병 갔다온 삼촌친구가 주셨던 씨레이션 박스 초콜릿의 오묘한 맛에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한국 돌아가면 어른들 모시고 옛날 얘기 제대로 들어봐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