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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11. 2019

N잡대모험을 끝내고, 1년 후

N잡 대모험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2017년 3월, 우연히 N잡러가 되었고, 나를 설명할 이름이 필요해서 N잡러라는 이름을 붙이고, 좌충우돌하며 13개월 동안 일했다. 2018년 3월 30일 자로 N잡 실험이 끝났으니 N잡이 끝난 후에 거의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창업을 했고, 덕분에 내 소속은 '선샤인콜렉티브' 하나가 되었다. 'N개의 소속을 가진 팀플레이어'가 내가 정한 N잡러의 정의였는데, 이 정의에 따르면 나는 반쪽짜리 N잡러이다. N개의 소속이 아니기 때문이고, 관심사도 훨씬 심플해졌다. 그런데 그렇다고 나는 N잡러가 아닌 것일까? N잡 실험을 끝내고 1년, 어쩌면 N잡러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N잡러인 이유, 그리고 계속 얘기하고 싶은 이유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일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던 지난 1년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우연히 시작된 N잡 실험을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제 경험이 아직 다 정리되지 않아서요.'라고 요청을 고사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한 번 하고 끝날 수도 있는 이 경험이 어디엔가 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강연 요청이나 인터뷰에 응했다. 덕분에 스스로 N잡에 대해 정리하며 실험을 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시기마다 질문을 해주는 기자들이나 강연의 청중들 덕분이었다. 혼자서 해나갔다면 '일만 시간의 법칙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이기실 건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지도, 불안과 나의 관계를 다시 규정하는 일('N잡 하면 불안하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은 결과이다)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기회는 N잡 실험이 끝나고도 계속되었다. 지난 1년 간, N잡 경험과 실험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할  자리가 많았다. 여성으로서 N잡, 프리랜서와 다른 형태로의 N잡, 미래 세대가 가질 직업의 한 형태로서의 N잡, 주도적으로 일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의 N잡...서로 다른 주제의 콘퍼런스에 초대되었고, 주제에 맞춰서 N잡을 다시 해석하면서 밀레니얼들이 살고 있는 사회,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는 일 환경에 대한 생각을 함께 하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듯이 일 환경은 변화하고 있고, 다양한 선택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늘어날 것이다. 재작년보다 작년이 더 그렇다고 느꼈다. 다른 점은 재작년엔 '퇴사'라는 언어로만 기존의 구조와 새로운 선택지의 갈등을 표현했다면 작년엔 그 언어나 이야기들이 좀 더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올해는 더 세분화된 주제와 접근으로 '앞으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일에 관심이 많아?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다. 왜 이토록, 모두 일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 세대의 생애주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노동이 등장한 이후, 인류의 대부분은 노동을 통해 삶을 유지하며 살았고, 그래서 모두 노동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밀레니얼에게 노동은, 그리고 일은 조금 다른 차원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이전 세대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또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회 한가운데 있다는 뻔한 설명을 또 해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생애주기를 지나가고 있다. '생애주기'라고 했을 때 당연하게 등장하던 결혼(정상 가족의 기본 조건을 갖추는 일)이나 출산(정상 가족의 완성)이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어가는 과도기에 밀레니얼이 놓여있다. 누군가는 기존의 생애주기를 이행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있지만, 그것과 다른 선택을 하고 그래서 새롭고 낯선 생애주기를 이행해야 하는 누군가들도 생기는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선택지가 된다면, 다른 선택지들은 무엇이 될까. 그리고 그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 될까. 아마도 이것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이 될 것이고(42년 동안 취업 준비만 하신 김신영의 고모부처럼 우리도 42년 간 일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 일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불가능한 세상에서 지속 가능한 일을 고민한다는 것은 미래의 빈곤과 행복,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과 연결되는 일이기도 하니까.


N잡러의 휴가는
N잡러만의 문제일까요?


N잡 실험을 하며 이것에 대해 처음 이야기할 때, 조심스러운 부분 중에 하나는 '그냥 특이한 사례일 뿐인데 이걸 모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괜찮은 일이까?'라는 것이었다. 그냥 나여서 시작할 수 있었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려할만한 선택지가 아닌 일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생각은 N잡을 더 해나가면서 옅어졌는데, 작년 한 해를 지나며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일'이야기가 필요하고,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사회가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2개의 직장에 소속을 두고 팀플레이어로 일하는 사람은 나 하나가 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중심으로 일하게 될 것이고,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아예 없어질 것이며,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형태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 환경의 변화에 영향받으며 자기만의 생애주기를 만들어 갈 사람들에게 각자의 N잡 이야기는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의 질문 덕분에 내 N잡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도 나의 N잡 이야기를 통해, 내가 던지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N잡러는 휴가를 어떻게 가야 하나요, N잡러는 회사에서 주는 복지비를 받아도 되나요, 와 같은 질문들. 이 질문은 N잡을 하는 개인을 위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N잡러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 N잡러를 고용한 조직, N잡러라는 시민과 살아가는 사회를 위한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건 N잡뿐만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의 질문과 만나 새로운 질문이, 어쩌면 대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이 질문을 어떻게 풀어갈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겐 전에 없던 공통의 지혜가, 구조가,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정리해두면 내게 가장 좋을,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 <N잡 대모험> 이야기를 이렇게 계속해보겠다고. 사실은 이 얘기를 하려고 늘 그랬듯이 이렇게나 장황하게 써버렸다. 글을 규칙적으로 써야 하는 클럽(키친테이블 라이터스 클럽)이 생겨나는 바람에 시작된 글쓰기가 끊기지 않고 계속될 수 있기를. 내가 계속 쓰기 위해 클럽 운영도(사실은 빌라선샤인 :0) 잘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오늘자 마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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