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름이었다. 고속버스 정류장부터 걷기를 두 시간째 길가 슈퍼마켓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샀다. 물이 나오는 호수가 있어 양해를 구해 등목을 했다. 이번 여름에는 걸어보자는 아버지의 말에 사촌과 이모부가 뭉쳤고 갓 중학생이 된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연신 외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목적지까지 사십 킬로미터가 넘었는데 아무것도 몰랐기에 가능한 거리였던 것 같다. 해는 쨍하다 못해 까무잡잡한 내 살갗을 파고들었고 물집 잡힌 곳이 터질락 말락 위태로웠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다 해가 저물었고 손전등과 맞은편에서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 헤드라이트를 불빛 삼아 그렇게 걸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것인가. 중학생 마음속에 번민이 스며들 때쯤 저 앞에서 연두색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반딧불이였다.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라고 시작하는 노래는 알지만 실제 반딧불이를 본 건 난생처음이었다. 예상했던 형설지공 속 이야기만큼은 아니어도 은은하게 빛을 내는 녀석들을 보면서 잠시나마 이 고난의 행군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 8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민박집에서 짐을 풀고 가져온 만화책과 게임보이를 하며 여독을 풀었다.
일과는 단순했다. 물에서 놀고 3분 카레 같은걸 먹고 자다가 다시 놀고. 지금이면 스마트폰 하나씩 쥐고 뭐라도 했을 텐데 할 게 없으니 놀아야 했다. 비포장도로가 시작되고 깊숙한 어귀에 민박집은 일용이네였고 아버지가 강원도에서 군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여름만 되면 강원도로 휴가를 온 것도 당신 군 복무 생활에 대한 회상이었는지 아니면 세상만사 잠시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덕분에 나름 날것의 자연을 만끽했다. 밤이 되면 하늘에 랜턴을 쏘며 북극 칠성 같은 몇몇 별자리를 아는 체했다.
왜 걸어야 했던 걸까. 초등학교에 전학 온 일산 신도시는 나름 교육열이 있던 곳이었다. 당시 서울에 있는 외국어고등학교 진학 열풍이 불었는데 열린교실이라는 작은 보습학원에서 종로학원이라는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으로 옮기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외고 진학은 실패하여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는데, 아마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시기가 시작되었으니 여름휴가에 특별한 경험을 해보자는 아버지의 취지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으니 나름 성공적 일지 몰라도 이런 뜻을 헤아리기에 중학생은 너무 어렸다.
걸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는 각자 나름일 테다.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 나는 것들도 내 능력 밖이다. 아무리 반딧불이를 만나고 싶다고 한들 그 시간 그 장소가 아니었더라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콘넥팅 더 닷, 당시에는 몰랐지만 현재 어떤 것을 할 수 있게 만든 토대의 순간들을 스티브 잡스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지킬 것이 하나씩 늘어나는 삶, 배낭 하나 메고 걷고 싶다.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