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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16. 2024

날씨의 중요성

 여행 취재를 다니다 보면 날씨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기왕이면 햇빛이 찬란한 맑은 날씨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여행지를 소개하기에는 흐리고 우중충한 사진보다는 맑은 날의 밝고 쨍한 사진이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취재를 갔을 때 현지 날씨가 늘 맑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기예보가 맑음이었더라도 그날그날의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날씨 이야기를 하다 보니 2019년에 갔던 포르투갈이 생각납니다. 저에게는 첫 유럽 여행이었지요. 12월에 에디터와 함께 리스본과 포르투 두 도시를 취재하러 갔었는데, 그 계절의 포르투갈은 거의 매일 비가 내렸습니다. 제가 날씨 운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스본에 도착한 날부터 며칠 동안 흐린 하늘 아래를 걸으며 촬영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포르투로 이동하던 날에는 옆으로 들이치는 비바람 때문에 우산도, 우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옷과 신발이 다 젖고, 카메라만 방수 커버로 간신히 보호하는 정도였지요. 그날은 정말 촬영을 할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습니다. 포르투에 도착해서도 흐린 날씨는 계속되었습니다. 하루종일 내린 비로 포르투 시내를 흐르는 도루 강의 수위는 광장 거리를 덮을 만큼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취재 장소 몇 군데를 변경하고, 야외보다는 실내 위주의 촬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출국을 하루 남겨놓은 날,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빠르게 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내려오는데, 영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이 500야드 길이의 하수구 끝에서 만난 희망과 자유가 어떤 느낌이었을지 어렴풋하게나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기적 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와이너리 투어에서 와인을 음미할 여유도 없이 원샷을 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밖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와이너리가 늘어선 거리부터 포르투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모루 공원, 포르투의 랜드 마크인 동 루이스 1세 다리, ‘비긴 어게인 2’에서 김윤아님과 이선규님께서 버스킹을 했던 히베리아 광장 거리까지 우중충하게 담아두었던 풍경을 처음부터 다시 새로 촬영했습니다. 이제 막 포르투에 도착한 기분으로 말이죠. 덕분에 그날 찍었던 사진 컷수가 다른 날보다 두 배는 많았습니다. 날씨가 풀린 덕분에 출국 당일 날 새벽 일출까지 최선을 다해서 촬영을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카메라에 담긴 비가 내리던 날의 포르투와 맑은 날의 포르투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기 때문이지요.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가는 동안에도 ‘이틀만 더 늦게 왔더라면...’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취재는 끝난 상태였고, 처음부터 일정 조정은 불가능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이륙했고, 집으로 돌아가서 포토샵의 힘을 빌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로 사진들을 확인하는데 제가 봐도 맑은 날 촬영했던 사진들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고를 보낸 후 지면에 실린 사진들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맑은 날 찍었던 사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포르투갈이 마지막 취재가 되면서 그 이후로는 날씨의 중요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리스본과 포르투의 골목 길이 생각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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