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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20. 2024

아빠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국내선을 타려던 중이었습니다. 게이트 통과 후 비행기로 이동을 하기 위해 셔틀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뒤에서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부부를 비롯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울음소리를 따라갔습니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네다섯 살로 보이는 아이가 바닥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우는데도 옆에 서있는 부모는 딱히 달래거나 혼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아이의 옆에서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었지요. 그리고 다른 누구도 나서서 아이를 달래거나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울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셔틀이 도착했는데도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결국 아이의 아빠가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아이를 안고 셔틀에 올랐습니다. 아이가 울음을 그친 것은 셔틀이 출발하고 몇 분 뒤였지요. 아빠는 아이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을 보고 그제야 왜 울었는지에 대해 물어봅니다. 아이는 울먹이며 그 이유를 귓속말로 아빠에게만 이야기합니다. 그때 두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던 아내가 저에게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울면서 투정을 부리면 저 아빠처럼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고. 저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지요. 하지만 그날의 대답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아프리카에 다녀온 지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사랑스러운 두 딸이 태어났고, 저도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이의 탄생은 얼떨떨함과 동시에 모르고 있던 저의 성향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침 케이프 타운에서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날 제가 했었던 대답까지도요.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우는 아이를 차분히 기다리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말이죠. 아이가 태어나고 새벽에 그 울음소리에 깼을 때, 제가 아기 울음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말까지 통하지 않으니 그저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전에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었으니 아이가 새벽에 깨서 왜 우는지 이해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그것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싶지만 현실은 역시나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막연히 잘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매일매일 닦고, 치우고, 먹이고, 달래고, 가끔은 아이에게 화를 낸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아빠로서 아이가 잘못하는 것에 대해 아니라고 이야기해 줘야 되는 부분이라 화를 냈었지만, 그럴 때마다 밀려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나는 아빠로서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너도 커서 자식 키워봐라'라는 말씀을 하실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도 말이죠.


 하루하루 투닥투닥하는 사이에 첫째는 미운 네 살을 지나 지금은 여섯 살이 되었습니다. 어린이 집을 다닌 이후로 말이 제법 늘면서 이제는 웬만한 표현들은 곧잘 합니다. 덕분에 아침에 눈을 뜨면 “아빠, 싫어”로 시작하는 날이 더 많지만, 가끔 어떤 빛보다 밝은 미소와 함께 안아주는 것만으로 모든 스트레스를 사르르 녹여버리는 기적을 행사하십니다. 아빠의 행복이라는 게 별 거 있겠습니까. 그렇게 아빠가 되어가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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