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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May 25. 2022

좀비처럼 달린 남자

 우리나라에서 에세이를 가장 우습고 따뜻하게 쓰는 작가인 한수희 작가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달리기를 한다고 했다. 팔다리에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뛰면 몸이 축나며 마음의 병이 머무를 곳도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 아닌, 빈대를 잡기 위해 손수 초가삼간을 태우는 그녀의 말이 다소 과격하게 느껴졌지만 어째 꼭 맞는 말 같다. 무엇보다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만의 해결법이 있다는 점이 참 부러웠다.

  근래 들어 내가 천문대 강사인지 이벤트 업체 사장인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삶 속에 익숙해지자 그동안 미뤄왔던 천문대의 행사들이 시작된 것이다. 어린이날 행사, 가족 행사, 관측 대회, 정기 이벤트까지. 그 와중에 강의도 한 달에 스무 개 넘개 해야 한다. 체력님 하고는 상의도 없이 누가 이따위로 일을 벌였냐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지만, 죄다 내가 기획한 이벤트라 할 말도 없다. 결국 미련한 곰탱이 같은 나에게 셀프 욕을 선사하고는 새벽까지 밀린 일을 처리했다.

 "너무 피곤해! 도대체 회복이 안돼"

아우으, 스트레스와 피곤에 짓눌려 울부짖듯 외칠 때마다 와이프는 맥주 두 캔을 내 입에 밀어 넣는 것으로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려는 나를 간신히 막았다.


 다음 날 나는 퇴근을 집 대신 산책로가 있는 강변으로 했다. 한수희 작가의 말처럼 뛰는 것으로 스트레스가 머무는 초가집을 태워야 했다. 더 이상 뛰지 못할 때까지 달리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그녀의 말을 경험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깊숙이는 아니지만 개미 발톱만큼이라도 나도 러닝을 했던 사람이었으니, 페로몬 같은 추억의 향을 맡았는지는 모르겠다.

 차 트렁크에 깊숙이 박혀있던 러닝화를 꺼내 신었다. 야외 마스크 의무화가 막 해제되었고, 강변을 달리는 그 누구도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다. 손에 쥔 마스크를 차 안으로 톡, 던져 넣었다. 한걸음, 한걸음. 인생 최대 몸무게를 달성하고 있는 육중한 몸을 움직여 달리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보다 코딱지만큼이나 마 더 빠르게 움직이자 상쾌한 바람이 불었다. 밤 시간의 강변은 고요했다. 거리의 노란 가로등 빛이 이따금 물에 반사됐고, 그 빛을 로맨틱 삼아 달렸다. 스트레스가 녹았다. 그렇다. 스트레스, 피로, 고됨 따위는 아이스크림에 불과하다. 종종 호두 같이 목에 턱 하고 걸리는 위기들이 있었지만 적당히 햇살을 비춰주면 본체는 흐물흐물 녹는 것이다. 역시 한수희 작가는 옳았다, 딱 3분 간.

 3분이 지나자 내 팔다리는 움직이기를 거부했다. 채 1km도 달리기 전이었다. 벌크업된 뱃살과 늘어난 나이가 나를 붙들고 말했다. "이게 끝이라고!". 쉽게 5km를 달린다는 베스트셀러 아줌마 작가의 글이 떠올랐다. 30대의 청년(?) 작가가 여기서 멈추기엔 사회적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다. 적어도 5km는 뛰어야 했다. 그러니 천근만근 무거워진 다리를 멈출 수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왜 걷는 속도로 뛰는 거지?’.

 이쯤 되자 스트레스 해소는 스트레스 창조로 바뀌었다. 3분간 태웠던 스트레스는 다시 20분 동안 재 창조되어 나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나는 뛰는 동안 불행했고, 고통스러웠으며, 밀린 숙제를 하는 사람처럼 조급했다.

  천체 사진을 찍는 S 구름이 낀다고 예보된 날에도 종종  사진을 찍으러 나선다. 그러면 나는 의아해하면서 묻는다.

"이따가 구름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사진 찍으러 가게?"

"그럼 뭐, 컵라면 먹으러 온 셈 치는 거지"

"오고 가는데 4시간인데, 라면만 먹고 온다고?"

"지금은 날씨가 좋으니까 일단 가야지! 찍다가 구름 들어오면 뭐, 망하는 거지 뭐 ㅋㅋ"


 나는 S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기름값과, 시간, 공을 들여 다다른 관측지에서 촬영을 망쳐도 '망하는 거지 뭐 ㅋㅋ' 하고 웃을 수 있는 태도가 부러웠다. 나라면 들어온 구름을 원망하며, 비싼 카메라는 어렵지만 삼각대라도 걷어찼을 것이다. S는 천체 사진의 결과물보다 천체 사진을 촬영하는 그 자체가 취미처럼 보인다. 늘 결과를 향해 달리는 나와는 영 다르다. 부럽다.

 

 그 대화가 생각 나서였을까. 나는 팔다리를 겨우 움직이는 좀비처럼 강변을 뛰다가 이내 멈췄다. 가만히 뛰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나는 달리기 선수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아, 물론 살은 조금 빼야 하지만, 심폐지구력을 키운다거나 한 번에 5km를 달릴 수 있는 체력을 만들려는 훈련이 아니다. 나는 지친 하루 끝에 온종일 쉬었던 단내 나는 숨을 위로하고 싶어서 강변에 왔다. 기분이 좋아지려고 뛴다. 쉬려고 뛴다. 그러니 남들보다 조금 느려도,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성 작가만큼 뛸 능력이 없어도 분해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걷기 시작하자 강변을 채운 노란 가로등 빛이 아름답게 빛난다. 뛰는 중간에는 모두가 저마다의 지옥 속에 있는 줄 알았는데, 걷으면서 보니 스치는 사람마다 미소가 환하다. 멍멍이도, 아줌마도, 아저씨도, 청년도, 아가씨도 모두 맑게 웃는다. 주변은 온통 따스하다. 비로소 스트레스가 다시 녹는다. 사람들은 맑고, 강변을 채운 가로 등은 나긋하게 빛난다. 낭만적이다.

 뛰다가 숨이 차 걸은 주제에 낭만 타령한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사실이니까. 다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것은 즐거움이기도 하고 강변의 낭만이기도 하며 트랙 위에 퓨마 브랜드처럼 누워있는 고양이와의 조우이기도 하다. 혹시 천체 사진을 찍다가 구름이 들어온대도 별빛을 만났던 순간을 더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앞으로도 뛰다가 종종 멈추겠다는 말이다. 그러면 다시 뛰고 싶은 마음마저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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