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우주 보기
갑자기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 영상을 한 번 찾아볼까? 하면 유튜브 메인에 그 영상이 이미 떡 하니 띄워져 있어, 구글이 나를 도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구글의 인공지능 챗봇 '바드'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유튜브는 내가 검색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관심사를 어떻게 추천해 주는 거야?”.
바드는 내 의심 정도는 쉽게 예상했다는 듯 가볍게(?)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대답했다. 그의 답변을 요약하면 이렇다.
‘유튜브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여 사용자의 시청 이력, 좋아요 표시, 연령 등 다양한 정보를 분석한 후 개인 맞춤형 영상을 추천합니다. 우리는 이 것을 알고리즘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나는 구글의 답을 눈으로만 이해했을 뿐 머리로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보통 내 유튜브 첫 화면은 지난밤 몰락한 격투기 챔피언의 영상과 15년 전 방영된 <무한도전> 클립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그런 아저씨 냄새나는 알고리즘에 “야, 춘봉이랑 첨지라는 고양이가 요즘 대세야!”라는 친구의 한마디가 던져지자, 얌전한 고양이들이 내 유튜브 부뚜막에 잔뜩 올라섰단 말이다.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요즘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 하나면 곧장 과학적 우월함을 갖는 시대로 변해버렸다. 나는 과학도로서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음모론을 외쳐본다. 내 폰에 도청장치가 있다!
내 폰에 침투한 것처럼, 인공지능은 천문학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2019년, 인류는 처음으로 블랙홀의 모습을 포착했다. 하지만 블랙홀의 사진은 와이파이가 간신히 연결된 지하철에서 144p로 보는 유튜브 화질 같았다. 뿌옇고 흐렸다. 인류 최고의 과학적 성과가 흐리멍덩한 도넛 같은 블랙홀이라면 다소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많았다.
이때 AI가 우주적 퍼즐 마스터로서 등장했다. 전 세계 전파망원경들이 수집한 블랙홀 데이터는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얻었기 때문에 퍼즐 조각처럼 뒤섞여 있었다. AI는 딥 러닝을 통해 이 조각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떤 부분이 실제 블랙홀의 모습인지, 어떤 부분이 잡음인지를 구별하고 적절한 위치에 조합했다. 그 결과 흐릿한 CCTV 영상처럼 보였던 블랙홀이 HD화질까지는 아니어도 720p 정도로 보이게 된 것이다. 덕분에 인류는 블랙홀의 모습을 조금 더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
AI의 천문학적 기여는 단순히 '화질 업그레이드'에 그치지 않는다. AI는 별들의 진화, 은하들의 움직임, 우주의 팽창 같은 복잡한 현상들을 분석하는 데 뛰어나다. 인간의 뇌가 아무리 뛰어나도 십억 개의 별을 일일이 분석하며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서 AI는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정교한 계산을 순식간에 처리한다. AI는 별의 진화 단계를 연구하고 외계 행성을 찾으며,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별의 나이와 성질을 정확히 예측한다. 결국 과학의 산물로 만들어진 AI가 과학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많은 일을 대체하고 있잖아요.
천문대에서 별을 알려주는 우리 일은
미래에도 괜찮을까요?
함께 일하는 찬빈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개그 드립과 영화 대사로 하루의 반을 쓰는 그가 이런 질문을 던진 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시대의 변화가 섬뜩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거의 모든 직종에 불안감을 조성한다. 테슬라는 사람 없이 완전히 자율화된 로봇 택시를 곧 선보일 예정이고, 아마존은 이미 물류센터에서 상품 선반을 자동으로 이동시키는 로봇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천문학 자료를 검색할 때마다 영어 알러지에 두통을 호소했지만, 요즘엔 엔터 한방이면 ChatGPT가 해결한다. 디자이너부터 변호사, 의사에 이르기까지 전문 영역이라고 여겼던 많은 분야가 인공지능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별자리 어플보다 별 이름을 못 외우고, 인공지능보다 천문학 이해도가 낮은 나는 얼마나 더 천문대 강사로 일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에게 가장 큰 위협을 받는 직업으로 글을 쓰는 작가를 꼽았다. 실제로 ChatGPT에게 '남산 위에 뉴진스 해린과 눈이 하나뿐인 외계인의 러브스토리를 써줘'하고 명령하면 10초 뒤에 그럴듯한 단편 소설 한 편이 뚝딱 나온다. 10년 동안 글을 써온 입장에서 질투와 자괴감이 10초 만에 들어버린다.
하지만 <회색인간>을 시작으로 십여 권의 책을 연달아 내며 모래밭 같은 출판 시장에 드문 베스트셀러가 된 김동식 작가는 '인공지능 때문에 실직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인공지능이 쓰는 소설에 비하면 제 글은 오히려 평범할지도 모르지만, 제가 인공지능보다 확연히 나은 점이 있어요. 바로 '대면'입니다. 인공지능은 절대 독자들을 만날 수 없죠. 저는 가능합니다. 인공지능의 글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사인회가 열리진 않고, 사인회용 작가 로봇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찾을 리 없으니까요. 저는 제 글을 읽는 독자와 눈을 마주치면서 공감하고 대화할 수 있어요."
천문대 강사로서 나는 김동식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면의 가치는 대체 불가하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을 마주하고, 그들의 질문에 놀라며, 함께 별빛을 세는 순간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이다.
나는 ChatGPT를 활용해 천문학 논문을 번역하고, AI의 도움을 받아 디자인과 코딩을 하며 교육을 준비한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모든 면에서 그놈들이 나보다 낫다. 그럼 어떠랴, 발전한 인공지능 덕분에 나는 시간과 체력을 아끼고, 심지어는 더 좋은 질의 교육 자료를 만들어 아이들과 만난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표현을 그대로 하자면, 사실 인공 지능은 개꿀이다!
나는 인공지능 시대를 환영한다. 핸드폰이 도청당하고, 매순간 나의 글과 코딩, 디자인 능력에 모멸감을 주지만 괜찮다. 천문학은 디지털적이지만, 망원경에 눈을 대고 별을 보는 순간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니까.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것이 바로 천문학의 매력이니까, 아날로그의 끝에서 아이들과 밤하늘을 바라보며 나누는 대화와 웃음은 인공지능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아이들이 천문대를 찾아오면, 나는 인공지능을 짊어지고 망원경을 끼익 끼익 돌려 별을 직접 맞춰줄 거다. 그리곤 함께 별을 바라보면서 30년 후에도 말할 테다. "저 별, 정말 아름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