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거실 밖 풍경을 찍어 윈도우스왑(window-swap)에 보냈다
작년 11월 무렵, 미루고 미루었던 여행 계획을 세우고 결심이 흐려질까 일찌감치 비행기표부터 예약했다. 파리와 로마에만 머무는 20일간의 휴가. 5개월 후면 쌓인 일을 저 멀리 밀어놓고 파리의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으리라.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왔건만, 그 봄 뒤에 코로나가 서 있을 줄은 몰랐다.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전개였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며, 고심 끝에 4월 출발 항공권을 10월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도 코로나는 현재 진행형. 여행은커녕 집 앞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시기에도 쉽지 않은 지금이다.
여행을 꿈꾸던 수많은 욕망은 어디에 갇혀 있을까.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두 명의 크리에이터 소날리 란짓(Sonali Ranjit)과 바이쉬나브 발라수브라마니암(Vaishnav Balasubramaniam)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을 직시합시다. 우리는 모두 실내에 갇혀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다시 여행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건 서로의 창문 밖 풍경을 공유하는 것. 움직이지 않고 여행하는 방식 ‘윈도우스왑’이다. 내 창문 밖 풍경은 평범하고 지루할 수 있으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창밖을 보는 건 낯설고 흥미로울 수 있다는 데서 착안한 프로젝트다. 누구나 자기 집 창밖 풍경을 10분 정도의 가로 화면 영상으로 찍어 보내면 참여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세계 어딘가의 새로운 창문 열기’ 버튼을 클릭하면 누군가의 창밖 풍경이 모니터에 펼쳐진다. 마치 여행을 떠나 호텔 밖 낯선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화면 상단에 조그마한 글씨로 누구네 창 밖인지, 나라와 도시가 어디인지 표기해놨을 뿐 그 흔한 광고도, 요란한 카테고리도 없다. 스웨덴, 프랑스, 벨라루스, 이집트 등 세계 각국의 창문 밖 풍경이 그야말로 일상처럼 흐른다. 로테르담의 미쉘네, 멜버른의 제프네 창밖을 바라보다 보면 여기는 참 볕이 좋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뭐 이런저런 나른한 생각을 하며 1시간을 훌쩍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찾아오는 묘한 안도감. 교회 종소리, 자동차 경적, 새소리, 바람 소리, 갑자기 화면 안으로 쑥 머리를 들이미는 고양이의 그르릉 소리까지, 일상의 소음들이 더해진 탓이리라.
여행을 꿈꾸던 수많은 욕망들은 그렇게 저마다의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윈도우스왑 외에도 경치와 음악을 함께 선택해 즐길 수 있는 ‘Take Me Elsewhere’, 세계 유명 관광지를 실시간 웹캠으로 보여주는 ‘EarthCam’ 등이 랜선 여행을 제안한다.
10월로 변경했던 내 항공권은 비행 노선 자체를 운행하지 않는다는 항공사의 결정으로 결국 취소되었다. 대신 어제저녁에는 우리 집 거실 밖 풍경을 찍어 윈도우스왑에 보냈다. 내 평범한 일상 속 풍경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2020년 우리는 이렇게 특별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글. 김선미
이미지. window-swap.com
월간 샘터 <일상의 디자인> 11월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