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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Mar 11. 2024

패스트 라이브즈 : 사랑은 있었다. 인연이 아니었을 뿐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유태오의 신작이라는 점이 하나. 그는 영화제를 찾아 GV(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영화제의 특별 기획 프로그램이었던 ‘코리안 아메리칸 특별전 :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영향도 있었다. 작품을 연출한 샐린 송 감독도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극 중 인물인 나영 역시 그런 배경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자체에 대한 호평도 있었다. 결국 이뤄지지 못한 사랑과 인연이라는 단어로 이어낸 다음 생으로의 기약이 드라마를 완성해 냈던 게 주효했다. 영화제에서 만나지 못한 관객들은 이 작품이 정식으로 개봉하기를 분명 기다렸을 것이다.


이 작품은 12살 때 헤어진 소년 해성(유태오 분)과 소녀 나영(그레타 리 분)이 12년 만에 연락을 주고받게 되고, 다시 12년이 흐른 뒤에 미국 뉴욕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보인다.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을 이야기했던 다른 많은 로맨스물처럼 느껴진다. 샐린 송 감독은 여기에 하나의 소재를 더했다. ‘인연’이다. 극 중 인물들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그만의 단어이자 개념. 열병 같은 사랑도 아니면서 다시 서로를 찾고 연결되는 두 사람의 우연과 관계를 전생(Past lives)으로 묶기 위함이다. 감독이 이 영화를 인생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02.

알려진 대로 샐린 송 감독은 영화 <넘버 3>(1997)를 연출한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세기말>(1999)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홀연히 떠났다. 감독의 나이 12살 때의 일이었으니 한국에서보다 캐나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셈이다. 이후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 가 대학에서 극작을 공부했다. 그리고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하던 중 어린 시절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고, 그가 뉴욕으로 건너와 지금의 남편과 함께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 속 이야기와 꽤 많이 닮았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당시 감독이 경험했던 감정과 기분이 반영된 셈이다.


감독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영화의 시선이 어떤 인물을 프레임의 중앙에 놓고 있는지와 연결되어서다. 나영과 노라다. (나영과 노라는 동일 인물이며,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에는 나영, 성인이 된 후에 미국에서는 노라로 불린다.) 첫 신에서도 알 수 있다. 화면 바깥의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바에 앉아 있는 세 남녀의 관계를 추론하는 동안 카메라가 천천히 두 남자 사이의 노라를 향해 줌 인(Zoom in)해 들어가는 장면이다. 이는 단순히 인물을 선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어떤 선언. 남겨진 사람보다는 떠나는 사람의 서사일 것이라는 선언이다.



03.

어린 해성과 나영의 이야기가 나오는, 아직 나영이 한국에 머물던 때의 24년 전 이야기 속에도 이 부분에 대한 단서는 있다. 이민을 앞두고 딸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은 나영의 엄마는 나영에게 해성과의 데이트를 제안한다. 해성이 자신의 딸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나영 역시 그런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양쪽 엄마의 도움으로 추억 하나를 만들게 된다.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 불균형한 정보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나영은 자신이 캐나다로 이민을 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 해성은 그렇지 못한 상태로 마지막 추억을 쌓는다. 다음 날 나영의 이민 소식이 학교에서 전해진 뒤에 두 사람은 어색한 이별을 나누고, 이후 영화는 해성이 아닌 나영의 뒤를 쫓아 다음의 장면을 그린다.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그렇게 남겨지게 되는 해성의 마음은 어땠을까? 영화가 그의 감정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두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갈림길의 장면에서도, 먼저 나영을 찾는 포스팅을 했다는 이야기에서도 그의 감정은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추측은 이제 타국으로 멀리 떠나버리고 만 나영이 혼자 떠올려볼 수 있는 정도의 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후로도 영화는 내내 해성의 입장에서 보면 타인일 수밖에 없는 나영의 시선, 꼭 그 정도의 거리에서 해성을 담아낸다.


04.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이제 멈춰버린 사랑의 흔적과 그림자도 그중 하나다. 클릭 몇 번이면 지나간 연인의 SNS 계정을 들여다볼 수 있고, 자동으로 업데이트된 클라우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옛 장면들을 이따금씩 전송해 온다. 이 영화의 배경도 그런 시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나영이 노라가 되면서 빈틈을 만들어낸다. 그녀의 현재를 찾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해성이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장치다.


“보고 싶었어.”

“나도.”


우여곡절 끝에 12년 만에 재회하게 되는 두 사람은 당분간 꽤 오랜 시간 서로의 안부와 시간을 물으며 보낸다. 미국과 한국, 뉴욕과 서울이라는 시차만 제외하면 두 사람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없다. 아니, 처음에는 그런 줄만 알았다. 잦아지는 연락 속에 생활의 대부분은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생각으로 채워지고 결국 또 한 번의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해성과 노라의 헤어짐에는 만남에서와 마찬가지로 기술의 시대가 가진 편의성이 놓인다. 너무 쉽게 연락할 수 있고, 빠르게 연결될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떤 것들은 이전에 비해 더 빨리 수명을 다하기도 한다. 사랑과 같은 감정은 더욱 그렇다.



05.

두 사람이 간과했던 것은 거리의 문제다. 이들 사이에 놓인 장애물은 시차만이 아니었음을 이제 모두가 안다. SNS와 화상 통화, 조금 더 나은 교통이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것들의 편의가 보장되는 시대에서도 직접 뛰어들지 않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용이하고 쉬운 연결은 다음 단계에 대한 기대를 그만큼 더 빠르게 쌓게 만들지만 해성과 노라는 각자의 현실 속에서 선뜻 움직이지 못한다. 두 번의 이민 끝에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 자신의 꿈을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여자와 자신이 자라온 사회에서 마주하게 될 치열한 경쟁을 앞둔 남자 모두에게 개인의 사정이 선행하고 만다. 그리고 노라는 예술인 레지던스에서 아서(존 마가로 분)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한국어로 인연이라는 말이 있어. 섭리, 운명 이런 뜻이야. 전혀 모르는 사람 둘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옷깃만 스쳐도 8천 겁의 인연이 쌓였다는 뜻이거든. 두 사람 사이에 말이야.”


영화는 노라가 미래의 남편이 될 아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인연’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처음 꺼낸다. 섭리, 운명이라는 뜻을 가진 한국말이다.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쌓이게 되고, 두 남녀가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8천 겁의 인연을 쌓아야 한다고 한다. 노라는 이제 곧 8천 겁의 인연을 확인하게 될 아서와의 관계를 인연에 비유하지만, 실제로 더욱 강조되는 것은 이번 생에 완성시키지 못한 해성과의 인연이다. 이 장면은 그렇게, 영화의 전반부에서부터 지금까지 달려왔던 두 사람의 인연을 오롯이 잘라내고 이후의 이야기에서 정확한 매듭을 짓기 위해 나아가게 할 준비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인연인지도 몰라.’의 관습적이고 보편적인 애틋함에서 적극적으로 이탈해 ‘아직 인연이 아니므로 이번 생의 이별을 받아들이겠다.’는 담담하고도 순종적인 태도로.


06.

“여기가 내 종착지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


다시 또 12년. 두 사람은 24년의 시간을 건너 재회하게 된다. 노라가 머물고 있는 뉴욕에서다. 지난 세월의 사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지만 각자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뒤다. 24년 전에도, 12년 전에도 아기였지만, 이제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는 나영의 말은 그 운명을 더욱 깊게 못 박는다. 서로를 바라보는, 오고 가는 시선 속에 꽃 피우지 못한 시절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런 미련 속에서도 넘지 못할 선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답을 알 수도 없는, 의미를 찾을 수도 없는 무수한 가정만이 두 사람 사이에 남는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가지게 될 이번 생의 인연, 그 마지막 장면이 놓인다. 해성이 부른 우버 택시가 도착하기 전 2분 남짓의 시간이다. 노라와 해성은 서로의 감정을 섣불리 꺼내려고도 상대에게 전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로부터 받았던 포옹을 다시 돌려주는 정도의 감정 전달로, 여자는 자신이 보냈던 온기를 되돌려 받는 정도의 행동으로 인사를 마친다. 영화는 이번에도 남자를 떠나보낸 여자의 뒤를 따른다. 그녀의 감정은 현재의 것이다. 수 천 겁도 전의 인생에서부터 정해졌을 인연과는 별개의 것. 하지만 그 슬픔은 또 한 겁의 인연이 되어 다음 생에서도 두 사람을 서로 알아보게 만들 것이다.


이제 택시를 타고 노라로부터 멀어지고 있을 해성, 그가 흘리고 있을 슬픔과 눈물도 마찬가지다.



07.

허기진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충만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시 사랑을 한다. 어제보다 굶주린 자리에 놓여 있기에 오늘의 우리는 당신을 바라고 걱정하며 또 채워나간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의 두께와 세월만큼 성장해 간다. 8천 겁의 인연이 쌓이면 사랑을 온전히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신탁의 사랑은 이제 남은 옷깃을 헤아리겠지만, 내일을 알 수 없는 보통의 사랑은 이 옷깃에 머금은 눈물을 닦을 뿐이다. 이것 또한 어떤 삶의 전생일 것이고 다음을 기약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삶과 당신은 여기에만 있다. 사랑은 다시 공허한 자리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완성된 인연이 아니기에 그렇다.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앵글 속에 남겨지는 그녀에게도, 프레임을 떠나는 그에게도. 두 사람의 생에는 이번에도 분명히 사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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