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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Apr 01. 2024

배우 장국영을 있게 한 이 작품의 힘.

장국영 특별전, 영화 <영웅본색>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영화 <영웅본색>을 떠올리면 제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물이자 장면은 장국영일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의형제와도 같은 송자호(적룡 분)의 복수를 위해 홀로 적진으로 뛰어들어 무쌍을 보여줬던 부분. 눈앞에 놓인 적 모두를 총으로 쏴 제압한 뒤 이쑤시개를 물었던 그 모습은 당시 모든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 영화의 메인 롤은 송자호(적룡 분)가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더 오래 회자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와 더불어 이 작품에서 짙은 존재감을 남기는 인물이 하나 더 있다. 송자호의 동생인 송자걸 역을 맡았던 장국영이다. 그는 형인 송자호가 범죄조직에 몸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경찰이 되는 인물이다. 이후 형이 연루된 사건으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송자호와 의절하고 그를 체포하기 위해 추적한다. 아버지를 죽게 만든 형에 대한 강한 분노와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동생의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을 그린다.


사실 이 작품 이전까지만 해도 배우 장국영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본업이었던 가수로 더 많은 인기를 얻었고, 본인 역시 가수로 성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을 만큼 음악을 사랑했다. 그러니까 영화 <영웅본색>에서의 장국영의 모습은 스크린 위에 놓인 그의 거의 초창기 모습이나 다름없다. 오우삼 감독은 그의 소년미 넘치는 이미지로부터 어떤 스타성을 이미 감지했었는지도 모른다.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는 왕가위 감독을 만나 <아비정전>(1990), <중경삼림>(1995), <해피 투게더>(1997), <화양연화>(2000) 등의 시대를 대표할 작품들로 채워진다.


02.

장국영이라는 배우 하나만 놓고 보자면, 왕가위 감독을 만나 만개한 연기력 속에서 완성한 이후의 작품들이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장국영은 왕가위의 페르소나로 불리며 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배우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결국 2007년 영화 <해피 투게더>로 받게 된 칸 영화제의 감독상은 두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배우가 세상을 떠난 지 21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의 이름 아래에서 이 작품 <영웅본색>이 멀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분명 배우 장국영이라는 세기적인 스타의 앳되지만 단단한 모습도 분명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관객들은 이 거칠고 뜨거운 이야기 속에서 연약한 듯 부러지지 않는 한 남자의 존재감을 쉽게 잊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의 시작점이자,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홍콩 액션물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줬던 작품. 그 이후에도 수많은 유사 작품이 쏟아져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이 작품만이 가진 힘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이야기다.



03.

영화 <영웅본색>은 홍콩의 암흑가에서 성장한 송자호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이제 곧 경찰이 되는 동생 송자걸(장국영 분)을 위해 손을 씻기로 한 그는 대만의 다른 조직이 설계한 음모에 빠져 감옥에 수감된다. 그 사이 형제의 아버지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살해당하게 되고, 이 일로 자신의 형이 범죄조직의 우두머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자걸은 절연 후 그를 붙잡기 위해 애쓴다. 한편, 송자호의 오른팔이자 의형제에 가까웠던 마크(주윤발 분)는 그의 복수를 위해 적진으로 홀로 뛰어들지만 한쪽 다리를 잃고 불구가 된다.


시작부터 세 인물의 이야기를 제대로 쌓기 위해 애를 쓰는 이 영화는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영화적 허용이 넘쳐나기는 하지만) 화려하고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보여주지만 드라마 역시 그에 못지않게 치밀하고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눈과 귀가 화려한 액션과 주제곡인 당년정의 가슴뛰는 멜로디에 사로잡혀있는 동안 각각의 인물에 필요한 서사를 세워가는 것이다. 악역에 해당하는 담성(이자웅 분)이 세 사람이 어려움을 겪는 틈을 타서 자호의 세력을 접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적재적소에서 이들의 관계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해낸다.


이 영화를 지지하는 두 축은 형 송자호와 동생 송자걸(장국영 분) 사이에서 형성되는 형제 사이의 갈등과 송자호와 마크(주윤발 분) 사이에 놓이게 되는 우정이다. 두 단어의 중앙에 서 있는 송자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양쪽의 이야기가 병행하며 나아가게 되는데, 결국 후반부의 한 장면에서 함께 이야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전히 다른 영역의 것은 아니라는 것 역시 알 수 있다.


04.

단순히 두 축에만 의지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한 플롯으로 이야기는 밋밋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는 두 축에 근거해 인물을 움직이면서도 각각이 가진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소홀하지 않는다. 형 자호에게는 경찰이 된 동생과 평생 몸담아 온 조직과의 의리 사이의 갈등이 있고, 동생 자걸에게는 아버지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형에 대한 분노와 끝내 저버릴 수 없는 핏줄에 대한 사랑 사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있다. 마크는 조금 다르다. 그에게는 과거의 영광과 비참한 현실, 그리고 미래의 재기에 대한 갈망이 놓인다.


“한 명은 내 동생이고 한 명은 내 친구야. 내가 무슨 낯짝으로 그런 제안을 승낙하겠나?”


이렇게 덩어리 진 채로 잘 빚어진 각각의 인물은 인물들이 만나는 여러 상황과 충돌하며 더욱 두드러지고 날카롭게 벼려진다. 조직을 떠나려는 형에게는 동생과 친구를 볼모로 다시 조직에 협력할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제시되고, 형을 붙잡고자 하는 동생에게는 과거 자호가 불법조직을 이끌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이 주어진다. 마크에게도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남은 욕망이 외부로 표출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처럼 영화의 중후반부를 채우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정말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05.

후반부에서 담성 일당에 맞서는 세 사람의 모습은 액션 장르가 필요로 하는 클라이맥스의 극적인 이미지를 완성해 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홀로 항구를 떠나던 마크가 보트를 돌려 부두로 돌아와 자호, 자걸 형제를 구해내는 장면은 초반부의 이쑤시개 장면과 더불어 주윤발이라는 인물을 강하게 인식시켰다. 동시에 이 지점은 앞서 언급했던 이 영화를 지지하는 두 축, 형제애와 우정이 서로 마주하게 되는 부분으로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전까지는 조금도 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동생이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며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최종적인 메시지에 닿을 수 있게 되어서다.


“형은 새 인생을 살 용기를 냈는데 넌 왜 형을 용서할 용기도 없는 거야.”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마크는 단순히 자신이 따르던 보스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 형제애를 이어 붙이는 역할까지 해내며 그동안 이어져온 이야기에 온점을 찍는다. 그리고 남겨진 두 형제의 화해는 자걸이 자호의 복수를 위해 총을 건네고 눈을 감아주는 것으로, 또 동생이 처음부터 바랐던 뜻대로 자신의 손목에 스스로 수갑을 채우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지금이라도 바른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06.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겨우 9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속에 이렇게 선명한 인물과 이야기를 쌓아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다. 대체로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것이 일종의 경향처럼 여겨지면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여기에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었던 배우 적룡과 이후 아시아권을 주름잡게 되는 배우 주윤발과 장국영까지 함께였으니 무엇이 더 필요했을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오우삼 감독은 이 작품에서 죽음을 당한 마크 역의 주윤발을 속편에서도 다시 한번 등장시키기 위해 그와 쌍둥이 동생인 켄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제 거의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장국영의 기일을 추모하는 뜻에서 기획전이 준비되곤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영화 <영웅본색>은 대체로 빠지질 않는다. 이 작품을 사랑했던 이들에게도,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직접 만나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모두 장국영이라는 스타의 풋풋한 시절과 홍콩 누아르의 대표와도 같은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오랜 시간이 지나 조금은 촌스러울지 모르겠으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만큼은 분명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24.03.31.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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