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 24] 웨스앤더슨 X 로알드 달 시리즈, <쥐잡이 사내>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려면 쥐보다 영리해야 합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쥐잡이 사내(랄프 파인즈 분)가 주유소에 도착한다. 어느 날 오후의 일이다. 한쪽 어깨에 군용 가방을 멘 남자는 발소리 하나 없이 걸어와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는 설치류 처리반 직원으로 보건국의 특별 지시로 쥐를 잡기 위해 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쥐를 잡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쥐는 영리하고, 이들을 잡기 위해서는 그 습성과 행태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쥐보다 쥐에 대해 더 잘 알아야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쥐들은 자신들을 박멸하려고 준비하는 사람을 내내 지켜보기도 한다. 일반적인 덫이나 하수관에 약을 푸는 정도의 단순한 방법으로는 잡을 수 없는 이유다.
영화는 이제 주유소 직원인 클로드(루퍼트 프렌드 분)와 이번 이야기의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에디터(리처드 아이오와디 분)에게 쥐잡이 사내가 쥐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시작한다. 쥐의 종류와 위치에 따라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 활용해야 하는 방법은 또 다르다. 물론 영화의 목적이 단순히 정보 전달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로알드 달의 다른 단편 모두가 그렇듯이 이 작품의 이야기 이면에도 인간의 이중적인 면모에 대한 풍자가 놓여 있다.
[참고 1] [넘버링 무비 348] 넷플릭스 영화 <독>
[참고 2] [넘버링 무비 349] 넷플릭스 영화 <백조>
영화는 크게 세 지점으로 분절해 볼 수 있다. 쥐잡이 사내가 등장해서 쥐의 습성을 활용해 그들을 박멸하는 방식을 하수구 작업을 예시로 설명하는 부분이 첫 번째다. 석고 가루가 들어있는 평범한 종이봉투를 하수구 천장에 물에 닿지 않을 정도로 매다는 방법. 쥐의 앞발이 닿을 정도로만 드리우면 다가온 쥐가 봉투를 갉아대기 시작하고 그대로 입 안으로 떨어진 석고가루가 물어 젖어 목구멍 속에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장면을 통해 강조되는 것은 허름한 차림으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쥐잡이 사내가 쥐를 박멸하는 방식을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만으로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지만, 이후 단계적으로 나뉜 세 지점이 모두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뼈대로 활용된다.
두 번째 지점의 이야기는 오늘 문제가 되는 쥐가 하수구가 아닌 건초 더미 속에서 살고 있음이 드러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조금 전까지 설명된 하수관 케이스가 상식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장면이라면, 이제부터 등장하는 쥐잡이 사내의 행동은 실제에 가깝다. 이번에 활용되는 것은 한 알만 입에 넣어도 3분 안에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약을 머금은 귀리다. 다만 바로 이 귀리를 쓰지는 않을 것이고 당분간은 일반 귀리를 먼저 주는 것이 핵심이다. 쥐가 의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흘째가 되면 건초 더미 주위에 약을 머금은 귀리를 한 무더기씩 두면 된다.
이 지점의 이야기는 쥐잡이 사내의 방식이 그의 말처럼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힘을 얻는다. 예상과 달리 단 한 마리도 그의 귀리를 건드리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면서 이전까지 그가 확신하고 설명했던 것들에 대한 믿음에 약간의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를 믿고 있던 클로드와 에디터의 태도에도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첫 번째 지점의 이야기가 그의 전문성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역할이었다면, 이 지점에서는 그 전문성에 흠을 만들고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믿음에 균열을 만드는 작업이다.
쥐잡이 사내가 귀리를 활용해 쥐를 잡는 방법을 설명하는 장면 중간에 놓인 대사 하나가 일종의 복선으로 작용하며 이미 작은 틈 하나를 완성해두고 있기에 내러티브는 더욱 단단해진다. ‘쥐가 워낙 영리하기 때문에 훌륭한 쥐 박멸 전문가라면 누구보다 쥐와 닮아야 하고 쥐보다 더 똑똑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쥐잡이 사내의 걸음은 쥐를 닮았으며, 생김새도 비슷하다며 언급된다. 자신이 훌륭한 전문가라고 스스로 치켜세우기 위해서 꺼낸 말인데, 자신의 방식으로 쥐를 박멸하지 못함으로써 쥐보다 더 똑똑해지는데 실패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의심에 타당성을 주고 만다.
이제 마지막 방법만이 남았다. 쥐잡이 사내는 주머니에서 족제비과 동물인 페럿을 꺼내 직접 쥐를 사냥하는 방식을 선보인다. 앞선 두 방식에 비해 훨씬 직접적이다. 페럿이 살아있는 쥐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자 클로드와 에디터의 눈앞에는 사체와 낭자한 피가 놓인다. 쥐잡이 사내는 또 다른 쥐 한 마리로 자신은 손도 대지 않고 쥐를 죽여보겠다고 나선다. 이번에도 두 사람은 눈앞에서 쥐가 죽게 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 그를 둘러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경멸과 역겨움의 시선이다.
쥐잡이 사내의 전문성을 보여주기 위한 도입부와 그의 전문성과 박멸 방식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는 전개, 그리고 믿음이 경멸로 바뀌게 되는 결말의 세 과정. 이 이야기의 구조에서 결과적으로 영화가 (작가인 로알드 달의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것은 하층 노동 계급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과 생명과 도축(도살)에 대한 인간의 이중적인 태도다.
극 중 두 인물은 쥐잡이 사내가 도착해 쥐를 박멸하는 방법을 말로 설명할 때까지는 조금도 불편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건초 더미 속에 숨어있는 쥐를 박멸해 달라고 적극적인 요청까지 했다. 태도가 바뀌기 시작하는 것은 그 요청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면서부터다. 되려 족제비과 동물인 페럿이 쥐를 사냥하는 건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에 가깝다.
쥐잡이 사내가 손을 대지 않고 쥐를 잡는 것 역시 석고 가루가 들어있는 봉투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약이 묻은 귀리를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그 행위, 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당장 자신의 앞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만 다를 뿐이다. 하지만 클로드와 에디터는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자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고 만다. 단 하나의 이유, 그 과정을 직접 보았다는 것 때문이다. 이후 쥐잡이 사내가 이야기하는 죽은 쥐의 피와 초콜릿 공장에 대한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경멸과 역겨움으로 가득한 두 사람의 표정과 태도 말고도 쥐잡이 사내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이 처음부터 아래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 이야기 속에는 그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쥐잡이 사내’다. 세상 어디에도 ‘쥐잡이 사내’가 이름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전문가라던가 설치류 처리반 등의 전문적인 의미를 담은 호칭도 아니다. 화자와 청자 양쪽 모두의 태도는 호칭에서부터 달라진다고 했다. 어쩌면 그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태도는 쥐 박멸 의뢰의 성공 여부나 쥐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보여주는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퇴장하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더 쥐처럼,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까?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로알드 달의 이야기로 인간의 어두운 양면을 그려내는 일에 완벽히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