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주부가
어느 사이에 나게는 먼 이야기 같았던 갱년기가 찾아왔습니다. 날씨가 선선한데도 갑자기 후끈 온몸이 달아오르며 식은땀이 나기도 하고, 더운 날임에도 갑자기 싸늘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 느낌이 참으로 기분 나쁠 정도입니다. 한쪽 어깨가 팔을 들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게 아파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 그런가 했지만 결국 결론은 갱년기.
어릴 적에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어머니의 한복 점포에 모여 앉아 다리가 쑤시다는 둥 팔이 저리다는 둥 이곳저곳 두드리며 몸이 아파옴을 하소연할 때는 병원에 가보지 왜 저러고 계실까 했는데 이젠 내가 그 나이가 되어 그런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걸으시는 이모님을 뵐 때마다 똑바로 서보세요 했는데 힘든 일을 하고 나면 허리가 아파 저절로 허리가 굽혀지며 이모님께서 이런 상황이셨구나 하고 이해가 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싶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일상에서 새록새록 느낄 때마다 몇 년만 젊다면 이렇게 했을 텐데 하고 후회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운동과는 친하지 않던 제가 몇 년 전 살 빼겠다고 요가와 필라테스를 곁들이 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고 며칠 후부터 걸음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돌면서 몸매도 맵시가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요. 그러다가 살이 좀 빠졌다 싶으면 한참을 쉬는 경거망동을 합니다. ㅋ
그러던 어느 날, 늘 하던 운동임에도 뼈 마디가 삐끗거리며 '이게 내겐 너무 힘든 동작이구나'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큰 마당에서 아침마다 홍콩 노인분들이 천천히 팔 다리를 저어가며 타이치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저게 무슨 운동이 될까 싶어 웃었는데 이제 나도 타이치를 배워야 하나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운동도 젊을 때부터 열심히 해야 했었는데 하는 후회를 아주아주 크게 하고 있습니다.
털털한 건지 게으른 건지... 피부에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살았습니다. 홍콩에서는 땀나고 덥다고 로션도 안 바르고 지나는 날들이 보통이었습니다. 별로 나쁜 피부도 아닌데 어느 사이에 작은 점들이 하나둘 거뭇거뭇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한국 다녀오는 길에 피부과에서 점도 빼 보지만 몇 달 후면 다른 곳에 또 생기네요. 지난번 한국 다니러 가서 또 점을 빼러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관리를 안 하시는군요." 하더라고요.
집에 돌아와 열심히 에센스도 바르고 자외선 차단제도 바르고 하지만 깊숙이 자리 잡은 녀석들은 제거가 불가합니다. 맨 얼굴로 뽀얀 피부의 아가씨들을 볼때마다 피부 좋을 때 잘 지킬걸 하는 후회가 제 가슴을 칩니다.
로션도 안 바르고 살았는데 화장은 했겠나요. 옷도 집에만 있는다고 한번 더 입고 버려야지 했던 후줄근한 옷에 먼저 손이 갔었지요. 그렇다고 옷이 없는 것도 아니요 화장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아끼는 것도 아닙니다. 아마도 게을러서 그런 게 아녔을까...
그러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예쁘게 꾸미고 늙어 보자 하고 화장을 하고 아끼던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가면 다들 어디 좋은 데 가냐고 묻습니다. 안 하던 짓을 했으니까요. 주변인들에게 화장기 없고 아무 옷이나 걸친 꾀죄죄한 나의 모습을 각인시켜 준 것이 후회되는 순간입니다. 화장품은 아끼면 유통기한 지나고 옷은 아끼면 유행이 지납니다. 화장을 한다고 젊을 때처럼 곱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예쁜 옷도 나이 맞게 입으려면 선택에 제한이 옵니다. 꾸며서 예쁠때 열심히 꾸밀 것을 하는 아쉬움이 화장도 안 먹히고 맵시가 안나는 지금 매우 후회됩니다.
쇼핑 싫어하는 여자가 있을까요? 혹하는 마음에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철커덕 사들이고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쌓이는 먼지 닦느라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 싸다고 쓸데없이 들여놓은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 대신 마음이 가는 물건들만 집안에 들였더라면 먼지를 닦으면서도 흡족하지 않았을까요. 요즘 유행한다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으며 이젠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연습을 합니다.
나에게 취미라면 사진, 블로그, 요리, 여행 정도지만 카메라가 무겁다고 여행 가면서도 제처 두고 블로그도 한참을 쉬었지요. 오래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처음 홍콩에 와서 아는 이 아무도 없을 때 우울함을 블로그가 달래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갱년기 우울증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다시 사진기를 들고 글을 올립니다.
생각나는 것들만 적었지만 사람들마다 다르겠지요. 나이 드신 분들이 하시는 말씀들을 잘 새겨듣고 지켰더라면 후회도 덜 되었겠다 싶지만, 더 나이들어서 또 다른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늙는다는 것이 추해진다는 것은 아니기에 아름답게 늙어가는 노력을 하나하나 쌓아보는 중입니다.
갱년기지만 아직 마음은 청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