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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 Jerk Oct 26. 2018

Homo-Saves

당신을 당신이게 하는 것

우리는 왜 사진을 찍는가?


 카메라는 따져볼수록 매력적인 물건이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그 이미지 데이터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가 의미가 폭발하는 시점에 우리를 다시 매료시킨다. 요즘은 폰카로 찍고 바로 인스타에 올려야 인싸가 되지만, 사진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시점은 늘 시간이 흐른 다음이다.

나중을 위해 순간을 잠시 묶어두는 대표적인 저장의 오브제는 아마도 카메라일 것이다.


나는 기록하고 저장하고 보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습성에 대해 저장의 인간, 호모 사베즈(Homo Saves)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 졌다. 이것이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습성이 아니라 전 인류와 모든 시대를 관통해 일어났던 일일 테니까.


 처음 디카가 나왔을 때, 나는 잘 나온 사진들은 솎아 뒀다가 따로 인화해서 모으곤 했다. 인화해서 보는 게 물론 좋기도 좋았지만 삭제 버튼으로 송두리째 날릴 걱정 없는 안전한 보관 방법이었다. 물론 이제는 웨딩 앨범처럼 특별한 테마로 간직하려는 이유가 아니면 사람들은 인화를 잘 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신문에 날 일이 있으면 어른들은 가위로 오려서 스크랩 하곤 했다. 우리 아빠도 신문에 났던 기사를 스크랩해두셨고, 그 묶음을 아직 가지고 계신다. 대학 동기 중 한 명도 초등학교 시절 고무동력기로 큰 대회에서 상 받았던 기사를 스크랩 해 가지고 있다. (남들다있고나만없어스크랩ㅠ)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에 가족들 생일과 친구들 생일을 표시하는 것도 즐거운 루틴 중 하나였다. 적히는 사람과 적히지 않는 사람은 나에게 의미가 달랐다. 친구들 연락처를 적어서 갖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다이어리든 메모장이든 친한 순서대로 적어 놓곤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의 수첩에는 모든 친인척의 연락처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휴대폰의 연락처는 텅 비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일기를 쓴다.

학창시절의 휘황요란한 일기는 아닐지언정 하루를 요약하고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쌓아나가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적는 양도 예전 같지 않고, 적는 목적도 꽤 건조해졌겠지만. 오늘 소중한 무언가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무언가라도 남기기 위해 남긴다. 남기기 위해 남긴다.

기술 발전으로 저장물의 바뀌면서 사람들은 CD며 외장하드를 열심히 관리했다. 사진도 굽고, 영화도 굽고, 게임도 굽고, 야동도 구웠다. 누나가 남동생의 외장하드를 인질 삼아 치킨을 요구하는 일도 누구나 들어봄직한 사건이고, 뻑난 외장하드를 들쳐 업고 복구 센터로 달려가 지난 몇 년간의 과제물들을 살리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백업의 백업을 만들고, 백업의 백업의 백업도 만든다.


 자신의 사명처럼 모으는 것들이 있다. 유행하고도 다른 길에 있고, 시대적 흐름과도 무관한 것들이다. 누구는 LP를 모은다. 혹은 카세트테이프를 모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도라에몽을,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모은다. 브로치를 모으는 사람도 조던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녀의 그림을 모은다. 액자에 걸어 놓기도 하고, 스캔해서 보관하기도 한다.


왜 저장해야 할까?

 기록은 도대체 얼마나 중요하기에, 우리의 삶은 기록에서 기록으로 이어지는 걸까?

얼마나 핵심적인 성공의 습관인지를 증명하고 조명하는 자기계발서적인 논의는 피하고 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축적이 얼마 간의 의미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하는 걸까? 개는 마당에 뼈다귀를 묻고, 다람쥐는 도토리를 주워 모은다. 고양이는 화장실의 똥을 한쪽에 잘 모아둔다. 동물들은 보통 살기 위해서 한다. 우리라고 다른 걸까?


 처음엔 인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음식을 안전한 곳이 비축하고, 지도를 그려서 과일나무가 있는 곳, 얼룩말이 모여 있는 사냥터를 표시하고, 절기마다 해야 하는 농경법을 기록하고, 조상의 이력을 책에 남겨 기억하고, 지난 전쟁이 성공적이었는지 기록하고. 저장을 하기 위한 기술들이 고도화되면서 즐거움과 슬픔 같은 인생사 자체를 남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저장은 언제나 소실과 망각이 등을 맞대고 있다.

우리가 죽음과 등을 맞대고 서보면 삶의 가치를 곱씹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망각하게 되는 것들에서 의미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린 망각의 동물이다. 끊임없이 잊는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안타까움이 우리를 기록하게 하고 저장하게 한다.

동물은 시간의 개념이 없다고 한다. 어렸을 적 키워주었던 사람, 작년에 갔던 여행, 내일 온다는 약속, 함께 만들어 갈 미래... 이런 일들의 순서가 없는 것이다. 동물 역시 망각을 하지만, 동물은 망각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이전에 '망각'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한다.

이 곡선을 자꾸 잊어서 복습을 안 한다(쓰읍...)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추상적인 개념을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주, 화요일, 오후, 재미있었던, 보드게임, 모임, 이런 관념적인 언어들을 각자의 지능 속에서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을 연대하게 만들고 지상의 지배자가 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과학의 시작이라고 한다. 1년이라는 공전, 하루의 자전이 반복되는 사이 계절의 변화를 기록하게 하고, 별자리의 움직임과 그 궤도를 탐구하게 하고, 온도 변화와 환경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과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소실을 인정하고 나면, 소유와 유지라는 저장이 시작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저장의 개념 역시 바뀌고 있다. 나는 사진을 구글포토에 백업해두고 시기별로 검색해서 훑어보곤 한다. 크게 보고 싶을 때는 패드를 이용하거나 TV에 미러링해서 본다. 우리 아빠의 기사를 보는 가장 편한 방식은 기사 검색하는 것이다. 지인의 연락처는 모든 디바이스마다 동기화되어 있고, 캘린더에는 주변인의 생일이 깨알같이 보이고 친절히 미리 알려준다. 에버노트에는 1400개가 넘는 메모가 있다. 저장의 방식은 간편해졌고 방대한 저장물을 찾아보는 색인의 기술도 엄청 발전했다.


 이런 데이터 뒤에는 데이터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좋은 추억이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담장들이 우아하게 이어지던 숨은 동네의 골목, 눈물 찔끔거리며 한장 한장 아껴 읽던 책, 추억을 덩굴처럼 캐어 올려주는 노래.


 우리는 과거의 것들을 돌아보면서 잠시 멈춰 서서 다시 음미해보곤 한다. 그 시간과 공간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감상에 젖는다. 잠깐이지만 다시 그 순간을 살아본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현실의 확장이다. 같은 순간에 다른 공간과 시간으로 점프할 수 있는 것.


 저장한 정보들은 우리를 그 정보와 연관된 정서로 확장해주는 힌트 같은 역할을 한다. 이정표 같은 것이다. 우리가 쉽게 잊을 일들은 이런 이정표가 필요하다. 아무리 그것이 소중하다고 해도,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니까.

우리가 저장한 것은 어떤 정서로 연결될 때가 많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점유하게 될 것이다. 반복된 회상과 복기의 내용은 내적인 우리 자신을 구성해나갈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적어 두는가,

우리가 무엇을 저장하는가는

우리가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될지에 대한 힌트가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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