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실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서른을 앞두고 약 3년을 다녔던 회사를 퇴사했다.
연 초 승진으로 누구보다 바쁘게 달려야 하는 시기였지만 번아웃으로 도저히 달려나갈 수 없었다. 새로운 도전을 마주했을 때 마음 속 심지가 불에 활활 타며 직진하던 나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심지가 물에 푹 젖은 듯 불을 붙여도 연기만 날뿐 불이 타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야근으로 가득찬 회사 생활과 ‘왜 이것밖에 못하지’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한 삶을 살다 보니 이러다 과로사하거나 내가 스스로 삶 자체를 포기할 거 같았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계획 없이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어릴 적 내가 생각한 29살의 모습은 어느 정도 자리도 잡고, 남은 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만나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대책 없이 퇴사를 하게 되다니.. 심지어 친구들은 한창 결혼 준비를 하거나,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해서 바삐 살아나아가는 이때에 이렇게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되다니.
많은 걱정과 고민이 머리를 스쳐갔지만, 이유 없는 퇴사는 아니었기에 내 용기에 박수를 쳐주기로 했다. 그간 나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직감을 따라 움직이고 실행했을 때가 실행하지 않았을 때보다 후회가 덜 했던 점도 선택에 큰 역할을 했다.
‘다시 가슴 뛰며 살아갈 수 있게, 우선 내 마음 속 심지를 말리자’
근 10년 동안 정말 바삐 살아왔다. 대학교를 들어간 순간부터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 없었고, 어떨 때는 N잡러로 살기도 하고, 그 와중에 대학원을 다니며 석사 과정을 따기도 했다. 매 순간 가슴 뛰며 앞을 보고 달려왔는데, 달릴 힘이 없어지니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우선 내 마음 속 심지가 다시 불탈 수 있게 심지를 말려야 했고, 이를 위해 내가 설렘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가장 가고 싶었던 나라이자 퇴사자들의 성지인 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계획을 세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버킷리스트로 품고만 있던 곳을 보고 오자라는 계획만 있을 뿐 자세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혼자서는 처음인 해외여행이자 장기 여행이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닌, 과정 자체가 곧 여행이기에 모든 순간들을 온전히 즐기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마음속 심지가 마르고 다시 불탈 수 있겠지.
---
약 4개월, 총 8개국을 혼자 여행하며 느낀 점을 공유합니다. 여행이 그리워질 때 여행 앨범을 보듯 제 글이 여러분의 또 다른 앨범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