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기
그땐 4월 초였다. 슬슬 날씨가 풀리려고 할 때라 약간은 가볍게 옷을 걸쳐 입을 때였다. 그 해 초, 나는 부모님과 또다시 싸웠다.
엄마가 몸이 안 좋아져 병원에서 시술을 받게 되었다. 시술이지만 2~3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간병을 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간병할까?'라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엄마는 거절했다. 그리고 시술날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전화를 해보았다. 그냥 안부전화. 시술을 했는지, 했다면 잘 끝났는지. 전화를 받은 엄마는 퉁명스러웠다.
"아직 안 들어갔어! 정신없어 죽겠는데 왜 전화가 난리야? 끊어!"
통화가 끝나고도
'그래, 지금 들어가기 전이니깐 정신없어서 그런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문자를 남겼다. 시술 잘 받고 나중에 나오면 연락하라고.
내가 보낸 문자는 읽혔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다시 괜찮으냐고 문자를 넣었다. 전화를 하면 또다시 짜증만 낼 것 같아 문자만 넣었다. 또다시 읽혔지만 답장을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 똑같은 일은 반복됐다. 그 다음 날은 내가 문자를 보내기 전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들려온 건 육두문자였다.
"이 씨발년이! 엄마가 아프다는데 연락도 안 하고! 빌어먹을 년 같으니! 전화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영문도 모르고 욕을 들어야 했다. 내가 문자를 하고 첫 날에 전화도 했었지 않냐는 소리도 했지만 '네가 언제?'라는 말만 들었다. 나도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엄마가 욕을 하는 와중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엔 아빠한테 연락이 왔다.
"넌 왜 엄마 아프다는데 연락도 안 하니?"
아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내가 문자 보낸 내역까지 캡처로 보내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네가 잘못한 거니까 먼저 사과해라."
이 말만 남기고 아빠는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내가 잘못한 게 있나? 둘째 날부터 전화를 안 한 게 잘못인가? 내가 왜 욕을 먹어야 하지? 왜 내가 사과해야 하지? 내가 자식이라서? 자식이라서 잘못 안 했는데도 욕먹고 사과해야 해? 도대체 왜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왜? 도대체 왜? 왜 내가 무조건 잘못한 거야? 왜 나만 사과해야 해? 욕먹은 건 난데?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날로 부모님 휴대폰 번호를 모두 지웠다. 어차피 번호는 외우지도 못했고, 연락할 필요도 못 느꼈다. 아니 느끼고 싶지 않았다. 없는 꼬투리까지 만들어내서 나를 욕을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자식인데... 아니 친자식이라서 더 함부로 하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새 엄마는 온 친척들한테 그 일을 말하고 다녔는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친척들에게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그 연락들 마저 무시했다. 그러자 엄마는 내게 문자를 날렸다.
덕분에 나는 죄책감 없이 번호를 차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