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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조 Mar 04. 2024

연애편지

그냥, 작은




술에 취해 휘갈겨 쓴 편지도 좋아해 주는 너.

잠에 빠져든 너를 보고 있으니 한 시간이 훌쩍 가더라.

봐, 어제 비가 오고 땅이 젖고 밤은 조금씩 더 길어졌다고. 이 얼마나 어이없는 날씨야. 춥다고.

나는 날이 추워지면 뭘 해 먹고살지 같은, 초를 켜놓고 음악을 틀어 놓아도 지워지지 않던 상념들이 더 커지는 편이야. 근데 지금은 괜찮아. 그래, 괜찮은 것 같아.

내일 너를 보니까.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네가 좋아하는 연예인 때문에 작은 실랑이를 벌이지만 실은 알고 있지.

내가 턱을 괴고 멍하니 있을 때, 그리고 네 곁에 앉아 벨트를 맨 다음 차창 밖을 바라볼 때

얼마나 여러 번 네가 나를 응시하는지.

그때는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우스갯소리처럼, 사랑은 암살이 아니라고 내가 여러 번 말했지만

내가 널 보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네가 날 보고 있음이 꽤 기분 좋아.


바람이 불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은 당연하다는데

하나 더, 죽지 않으면 내일이 오는 것도 당연할 텐데

처음 만난 곳으로 가 걷고 있으면, 이상하게 이것저것 자꾸만 바라게 돼.

귀하고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실천해 주는 덕에 입술을 뜯는 버릇을 고치고 싶어졌어.

너는 내 몸에 생기는 상처를 보면 인상을 찡그리는데 실은 그것도 좋아. 그래도 입술은 이제 덜 깨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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