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준비는 끝났다
빈 손으로 가도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혼자여도 외롭지가 않다. 때론 술친구가 되기도 하고, 길동무가 되기도 한다. 대신, 모든 것은 여기까지다. 만남도 소통도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 언제든 '이곳'에 오면 친구들이 기다리니까. 요즘처럼 SNS를 통한 소통도 없고, 더구나 휴대폰도 없던 시절의 산장 얘기다. 언젠가 정착을 하게 되면 그런 산장을 한번 해보리라 마음 먹고살았다.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느낀 정과 인심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다. 여행자의 마음은 여행자가 가장 잘 안다. 눈빛만 봐도 배가 고픈지, 무엇이 필요한지 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만약 산장지기를 한다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대표들과 펜션 한 동을 2년 임대 계약을 했다. 계약이라고 해봐야 그냥 구두로 얘기한 게 전부다. 계약서를 쓸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았어도 서로 믿어주는 게 시골 정서 아닌가.
사흘 후, 나는 서창마을로 이사를 했다. 승용차 한 대에 다 실을 만큼의 짐만 갖고 살자는 생각이었기에 책을 제외하면 특별히 가져 올 짐이 많지 않았다. 완공한 지 채 2년이 안된 신축건물은 특별히 손 볼 것도 없었고, 웬만한 집기도 다 있었다. 하지만 내 방식대로 운영을 위해서는 소소한 살림살이가 필요했다. 무주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인 대전으로 나가 이불과, 식기류, 그리고 황토방에 바를 한지를 사왔다. 그동안 산골생활을 하면서 한지 도배를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60평 한 동 도배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서창마을을 처음 찾은 지 사흘 만에 이사하고, 이틀 동안 도배와 청소를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과정이 일주일도 채 안 걸린, 속전속결이다. 급한 성격은 아니지만, 마음 먹은 일을 미루지 못한 성격 탓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 시작은 깔끔해야 하니까.
자, 준비는 끝났다. 여행자가 여행자를 맞는 펜션 주인이 되었다. 펜션을 임대했으니 펜션을 운영해야 하는데..., 긴 시간을 고민했다. 그냥 시작하면 되는 거지 무슨 고민이냐고 하겠지만, 일단 나는' 펜션 같은 펜션'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동안 꿈꾸던, '산장 같은 펜션'을 고민했다. 요즘에야 게스트하우스가 흔해졌지만, 그때만 해도 익숙지 않았고, 무주라는 지역 특성상 게스트하우스란 간판은 어울리지 않았다.
정말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만 오면 좋겠다. 한 사나 흘 쉬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혼자 가기 마땅찮은 나홀로 여행자들, 여행에 목마른 친구라면 밤을 새워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은, 그런 집. 그런 집을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굳이 홈페이지가 필요 없다. "우리 집 최고예요"라고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동안 운영하던 블로그를 활용하면 된다. 그래, 맞아! 블로그야.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블로그 하나면 충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여행클럽 운영, 여행상품 개발과 기획, 국토종단 진행 등의 경험이 있어 여행자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 자신이 여행자였기에 홈페이지 없이도 운영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기존에 운영하던 daum 블로그를 티스토리로 옮기고 눌산넷(http://nulsan.net)이라는 도메인도 등록했다. 홍보성 글보다는, 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떤 여행자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글 위주로 올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숙박비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정했다. 게스트룸 세 개 중 가장 작은 방은 나홀로 여행자들을 위해 1박 3만 원, 그리고 5만 원인 큰 방도 혼자 오는 여행자에게는 20% 할인 규정을 만들었다.
바람, 고요, 산안개 흐르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아지트 여행자의 집, 펜션 언제나 봄날입니다. 무주 적상산 등산로 입구 해발 500m 고요한 산중마을 한가운데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요한 곳입니다. 장점이자 단점도 되겠지요.
'언제나 봄날'은 休를 위한 공간을 추구합니다. 휴식과 산책, 트레킹, 가족여행에 적합합니다. 관광지 분위기(노래방, 나이트, 유흥업소가 밀집된)를 찾는 분이라면 절대!! 사절합니다.
우아한 분위기나 관광지 분위기를 찾는 분은 패스해주세요~
가장 중요한, 몇 가지 까다로운 운영수칙도 만들었다. 음주는 되지만 가무는 안됨, 소란행위를 하면 즉시 퇴실 조치함, 밤 11시 외부 등 소등, 12시 전에 자야 됨, 아침 산책을 꼭 해야 하고, 노래방 기계 사용불가, 고스톱 불가, 대신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아도 됨 등. 그리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볼 수 있는 서재를 사랑방으로 개방했다.
사실, 이러한 운영수칙은 쉽게 말해서 "내 맘에 드는 여행자'만 오라는 얘기다. 펜션 주인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밤새 술 마시고 떠드는 여행자들이 좋을 리 없으니까. 훗날 여행자들은 이러한 까다로운 규정이 좋았다고 했다.
2008년 5월. 뜬금없이, 서창마을 황토펜션 주인이 되었다.
지금은 펜션 주인이 아닌, 한 사람의 여행자로 여전히 서창마을에 살고 있다.
이 글은 그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