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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인 Nov 16. 2015

가을비, 덕수궁

사실은 비바람

  반가운, 하지만 이제는 조금 그만 내렸으면 싶기도 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덕수궁을 거닐고 왔다. 사실 좀 더 여유로운 거닒이 되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비바람이 워낙 거세서 후딱 한 바퀴만 돌고 왔다.


  확실히 가을은 고궁 생각이 절로 나는 계절이다. 고즈넉하니, 여유를 가지고 가을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고궁만 한 곳이 없다 라는 건 사실 옛말이고, 요새는 사람이 워낙 많아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경복궁, 창덕궁은 그 정도가 특히 더 심해 요새는 개인적으로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


  그 가운데서도 내  마음속 고궁 1번지는 단연 덕수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근대적인 궁임과 동시에 가장 슬픈 궁인 덕수궁. 그 아담한 크기부터가 참으로 마음에 드는 궁이다.



  비가 오는 날이라 색이 참 진득하다. 노랑과 빨강, 그리고 초록이 참으로 잘 어우러져 있다. 바람이나 좀 덜 불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비가 내리는 고궁은 행인들이 든 우산에서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색색의 우산이 고궁에 환한 색들을 더해주니 쓸쓸할 법도 한 덕수궁의 가을이 한결 무던하다.



  덕수궁은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같은 정궁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궁이다. 아마 찾는 발걸음이 많은 것으로 따지면 오히려 바깥 쪽 덕수궁 돌담길 쪽이리라. 보통 한 나라의 고궁 특히 정궁에서 사람들이 보고자 하는 것은 왕이 살았던 곳의 규모와 위엄일 것이다. 정궁이라곤 하나 그 본 쓰임이 개인 저택이었던 덕수궁이기에 이 곳에서는 쉬이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난 덕수궁이 좋았다. 처음부터 바로 그 점이 좋았다. 조선 시대 궁궐 가운데 가장 규모가 작은 것, 전각 배치가 정연하지 못한 것,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좋았다. 단 하나 불만이라면 석조전이나 정관헌 등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는 점인데 이 또한 분명 덕수궁의 특징이니 차마 미워할 수 만도 없다.



  아마도 올 가을의 덕수궁은 이것이 마지막이겠지. 다음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날, 좀 더 여유 있는 걸음으로 덕수궁을 거닐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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