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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Jun 19. 2022

23. 연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법

보통의 공대생이 쓰는 보통의 대학원 일기

대학원생만큼 만만한 게 없다는 건 이제 모두 아는 사실이다. 웬만치 건드려도 별 반응이 없을뿐더러, 밥이나 술이라도 사준다고 하면 기꺼워한다. 그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도 몰라도 말이다. 하여 대학원생들은 온갖 자리에 만만하게 불려 가고는 하는데, 대체로 이런 자리에는 불편한 사람들이 몇몇 있는 게 보통이다. 일종의 샌드백으로 말이다.

물론 가장 불편한 자리는 따로 있기는 하다. 우리를 아주 잘 아는 교수들이나 박사들이 있는 자리 말이다. 이런 치들이 있는 자리에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신상에 이롭다. 어떤 경우에서든 옳고 그름을 따지고, 평가하기가 몸에 잔뜩 밴 이 양반들은, 입마저 가벼워 가뜩이나 좁은 학계에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온갖 소문을 내고 다닌다. 

그런가 하면 이상하게 기분 나쁜 자리도 있다. 대학원생들을 연민하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다. 이들은 보통 학사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그 나이 때의 적당한, 혹은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연구와는 거리가 먼 분야에 속해 있으면서, 대학원 과정에 대한 궁금함과 막연한 의구심이 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진로선택 중 하나가 바로 대학원이다. 애당초 연구란 것을 국가 예산 나눠 먹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사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는 것 같다.

하면 이들이 갖는 대학원생에게의 연민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학원생의 상태를 일종의 ‘미성숙’ 상태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에 있다. 

여기서 ‘대학원생은 그 자체로 소중해요’, ‘틀린 연구는 없습니다’ 같이 하등 쓸모없고 입에만 발린 대학원생회가 뿌릴 만한 개 같은 슬로건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공 분야와 탐구 방법론, 하다못해 문과냐 이과냐 정도도 맞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게다가 이들이 대학원생에 대해 연민을 갖기 시작할 때 받는 질문이 짜증 나는 것이다.

“OO 이는 연구가 뭐라고 생각해?”

이러한 질문의 의도는 다소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이건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주는 <연구>에 대한 인사이트 또한 너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를 말하기 위한 일종의 낚시 떡밥 같은 거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속아 ‘저는 연구란 이러저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 당신은 그대로 낚인 것이다. 낚시꾼이 대를 잡아 올리면 당신은 손에 잡힌 물고기 신세로 꼼짝없이 연구에 대한 개똥철학을, 연구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에게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들어야 한다.

반면교사라고, 이런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나는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마음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들과의 대화는 교묘한 가스 라이팅에 가까워서, 곧장 아무런 준비 없이 들으면 그 고통이 상당히 오래간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길을 반추하며 자신이 쌓아 올린 탑이 혹여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연구는 쥐뿔도 모르고, 학문엔 관심도 없고, 그저 눈앞에 있는 이 대학원생에게 묘한 승리감을 누리고 싶을 뿐인 사람 때문에 말이다.


하여, 몇몇 사람들에게 몇 년에 걸쳐 고통받은 나는 효과적인 대답을 생각해냈다. 얼마나 효과적이냐면, 저렇게 질문하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아무 말 못 하고 어버버 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다. 더불어 뒤에 이어지는 대학원 생활에 관련된 모든 질문을 자동으로 스킵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앞으로 ‘연구가 뭐라고 생각해’ 혹은 ‘학문의 정의가 뭘까’, 혹은 ‘좋은 연구자가 뭘까’ 하는 시답잖은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도록 하자.

l  연구란 ‘학문적 엄격함’의 이름을 빌린 소시오패스적 백일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상대방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 혹은 생각하기 위해서 미간을 있는 힘껏 찡그리는 모습만 즐기면 된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대학원생 인생의 절반 정도는 충족된 것과 마찬가지다. 이들은 아마 선뜻 물어보지도 못할 것이다. ‘학문적 엄격함’이 무엇이며, 어떤 점이 소시오패스 같은지, 아니면 어떻게 대학원생들이 백일몽을 꾸는지 말이다. 아니, 어떻게 저 단어들이 한 문장에 있을 수 있는지.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 영영 씻기지 않을 상처를 내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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