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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Jul 17. 2022

조우

나는 거의 2층 높이 정도 되는 구령대 난간에 반쯤 밀려 섰다.

“야 뛰어봐! 뛰어보라고!”


아래에서는 민식이가 주먹을 하늘로 내지르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과학 시간에 배운 뉴턴의 만유인력은 얼마나 아플까? 나는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모니터 안의 갈릴레이는 모든 물체는 똑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며 흥분하고 말이다. 뛰어내린다면 최소한 어디 하나는 부러지리라. 아니면 꼭 부러지지 않더라도 저 질퍽질퍽한 진흙 위에 꼴사납게 처박히겠지. 모든 아이들은 나를 보며 웃을 것이고 말이다.


“야 이 비둘기 새끼야, 그것도 못 뛰어? 뛰라고. 날아봐!”


민식이가 약이 오른 상태로 – 그 누구도 약을 올리지 않았지만 – 말했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난간에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구령대의 뒤쪽에서는 민식이의 친구 – 그보다는 따까리라는 용어가 어울리리라 – 들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해적처럼 나를 위협하려 슬금슬금 몰려들고 있었다. 뛰어내릴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가정 시간에 배운 속담이 떠올랐다. 하지만 호랑이굴은 커녕 구령대 위에만 있어도 정신이 아득해졌고, 호랑이가 아닌 초등학생 몇 명이 위협해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내 옷을 바라보았다. 스스로도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꼴이었다. 내 몸에는 무수한 비둘기 깃털이 붙어있었다. 제대로 정렬되지 않은 비둘기 깃털은 마치 내 꼴을 무슨 털 난 괴물처럼 보이게 했다. 저 멀리서 아이들은 내 꼴을 보고 킥킥거리고 있었다. 비둘기 깃털을 붙이기 위해 사용한 운동장의 진흙이 마르면서 피부가 따끔따끔했다.


“야, 비둘기 밀어!”


민식이의 구호와 함께, 뒤쪽의 따까리들이 나를 밀기 위해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도 누구 하나 직접 밀고 싶지는 않은지, 싱글싱글 웃고는 있었지만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사회시간에 배운 함무라비 법전에 쓰인 글을 기억해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지만 나를 민다고 그들도 같이 떨어져 줄 것 같진 않네 – 그 메소모…그 긴 이름을 가진 문명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나이가 좀 더 많았다면 달랐을까? 초등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눈빛으로 말했다. 그네들도 민식이가 무서운 것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밀어서 내가 다치기라도 하면 책임을 져야 하고, 밀지 않으면……. 또 어떤 불똥이 튀어서 민식이에게 괴롭힘을 당할지 모르니.


 


민식이.


민식이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다. 적어도 우리 학교 애들은 전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민식이의 기행은 다 큰 선생님들에게조차 기이하고 엽기적이어서, 고작해야 가장 무서운 선생님이 학교에 있는 그에게 내내 붙어있는 수밖에 없었다. 반에서 기르는 식물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거나 –‘식물도 가끔 따듯한 물이 먹고 싶을 거야!’라나 뭐라나 – 공동 사육장의 닭의 머리를 돌로 맞히는 내기를 한다든가 하는 끔찍한 일 말이다.


아이들은 꼼짝없이 민식이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덩치가 무슨 대학생 형들처럼 컸고, 힘도 선생님들이랑 드잡이를 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셌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민식이는 여자 선생님들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오히려 주먹을 들며 위협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게다가 1 더하기 5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이상하게 이런 쪽으론 비상한 재주가 있어서, 절대로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게 했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장난을 칠 때면 자신은 절대로 직접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정을 알고 있는 선생님들도 민식이의 이런 한 마디에 이를 바득바득 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제가 한 게 아닌데요? 저는 그냥 구경만 했는데요? 경찰서에 잡아가기라도 하시게요?”


그렇게 민식이 패거리는 학교를 장악했다. 특히 선생님들이 나오지 않는 주말이면, 학교는 그들을 위한 왕국으로 전락했다. 기껏해야 메이플 스토리 같은 게임이나 하며 희희덕거리는 나 같은 평범한 아이들과 달리, 민식이 주위에는 절대 그 나이대 어린애들이 맛볼 수 없는 쾌락에 빠진 아이들이 모였다. 그 패거리들은‘장난감’들을 주말에 학교로 불렀고, 만신창이가 되어 월요일에 등교했다.‘장난감’들의 부모님이 학교에 항의해도 민식이는 패거리의 한 명을 내세워 벌을 대신 받게 했고, 그 애들은 그걸 자랑스러워했다. 미친놈은 피하는 게 약이라고, 그와 엮이지 않기 위해선 그의 눈에 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민식이 패거리들의 눈에 들지만 않으면 – 다른 말로 하면 매력적인 장난감이 되지만 않으면 – 되는 것이었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공부깨나 하는 ‘범생이’였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아예 민식이 패거리들이 붙들지 못하도록 나를 포함한 학교의 몇몇을 특별 지도한다는 명목 하에 – 실제로 공부도 시키고 – 한두 시간 정도 더 잡아둔 뒤 하교하도록 했으니까. 이 때문에 툭하면 우리 범생이들을 경멸하며 가방에 침을 뱉어대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등교하는 애들을 보면 공부를 잘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어. 이렇게 계속 공부하면 될 거야 – 라는 생각에 나는 다시 수학 익힘책에 고개를 처박았다. 나와 그들은 상관없어.


 


이제 따까리들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여름의 태양이 진흙의 수분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아까 마신 우유에 있는 수분까지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어제 배운 모세관 현상이 맞나? 나는 과학 시간에 배운 모세관 현상을 기억했다. 박혀있는 좁고 가느다란 빨대가 물을 빨아들였다. 과학 시간과 다른 건 빨대의 한쪽 끝에 내가 있다는 것뿐. 수분이 빨려나간 진흙에 살이 따가웠다. 


사건의 발단은 참으로 시시했다. 청소 당번이었던 나는 다른 아이들이 다 나가고 반에서 15분 정도 걸레질하다가 나갔을 뿐이었고, 하필이면 그곳에서 복도에 혼자 있던 민식이와 만난 것뿐이었다. 물론 그냥 만난 건 아니었다. 민식이는 나라는 존재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그저 민식이가 비둘기에 놀란 장면을 본 것뿐이었다.


하필 그때 비둘기 한 마리가 난데없이 학교 창문을 통해 날아온 것이었다. 그건 누구라도 깜짝 놀랄만한 상황이었다. 다만 나는 선천적으로 둔해서 놀라지 않았을 뿐. 민식이는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날아온 비둘기는 한가롭게 민식이와 나 사이에 서서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쪼아대었다.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가려고 – 정확히 말하면 도망치려고 – 했다. 


내가 뒤를 돌아서 몇 걸음 가는 사이, 갑자기‘팍’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멈춰 뒤를 돌아보았을 때, 바닥에는 머리통이 터져있는 비둘기 한 마리가 바닥 한가득 피를 흘린 채 널브러져 있었다. 민식의 실내화 가방에는 핏자국이 번져있었다. 그리고 민식이가 문자 그대로 나를 죽일 듯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봤지?”


민식이가 말했다. 나는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 눈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어떤 새카만 증오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째서? 하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나는 겁에 질려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장난감이 되었다. 집에 숨어서 주말을 보내려고 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등 떠밀려 주말 수학 학원에 가야 했고, 집 앞에 잠복하고 있던 패거리들에 의해 거의 납치되듯이 학교로 끌려 왔다. 구령대 위에서 왕처럼 앉아 있던 민식이는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우리가 비둘기 한 마리를 기르려고 하는데 말이야.”


민식이가 웃자 패거리들도 따라 웃었다.


“좀 특별한 비둘기를 원하거든. 얘들아.”


전날 비가 왔던 운동장은 이제 거대한 갯벌처럼 변해있어서, 내동댕이쳐지는 것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진흙이 코와 입에 들어가서 숨을 쉬기 어려워지는 것은 좀 고역이었다. 한 십 분 정도 나를 납치한 아이들이 발길질 해대며 나를 진흙밭에 굴리자, 나는 눈과 입 정도를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으로 뒤덮였다. 아이들은 내 꼴을 보고 웃어대었다. 


“진짜 진흙이 스며들어서 괴물같이 되는 거 아니야?”


아니- 진흙이 스며든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고. 진흙은 무생물이고 나는 생물이거든. 갑자기 과학 시간에 배운 진화론이 생각났다. 아마 고대의 원숭이들도 몸에 진흙은 묻혔겠지만, 이렇게 사람으로 잘 변해왔다. 그러니까 나는 바뀌지 않을 거야. 물론 나는 입도 벙끗하지 못했지만.


하지만 고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민식이가 손을 까딱하자, 퍼덕거리고 있는 거대한 마대자루를 따까리들이 들고 왔다. 거기 안에 들어있는 것은…… 알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어디서 구해온 지 모르는 쇠 파이프를 가지고 민식이는 마대자루를 마구 치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친 듯이 날뛰던 마대자루는 몇 번의 이어진 치댐에 이내 잠잠해졌다. 그리고 붉게 물들었다. 민식이가 흡족한 듯 깔깔거리며 웃자, 아이들도 이내 조금씩 눈치를 보면서 웃었다. 나는 그 구령대 위의 그 초현실적인 장면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사회시간에 본 아우슈비츠의 사진보다 이게 더 잔인하고 비 현실적이었다. 핏자국이 묻어있는 쇠파이프와 피가 새어 나오는 마대자루, 그걸 둘러싸고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이상하게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과 상쾌한 바람, 진흙 냄새.


민식이가 마대자루를 잡고 뒤집어 피범벅 된 비둘기 열댓 마리를 꺼냈다. 사후 경직에 꿈틀대는 – 도대체 어디서 들어본 말이지? – 비둘기들이 널브러졌다. 그리고 맨손으로 비둘기를 들어 깃털을 뽑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광경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겁에 질려 슬금슬금 물러섰다. 일부 간이 큰 아이들은 그 광경에도 뒷걸음치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구령대 아래에서 본 민식이의 표정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뒷걸음치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자신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감에 고양되는 그의 얼굴을 말이다. 그런 모습은, 모습 자체만으로는 천사와도 같았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기쁜 일이 생긴 듯 해맑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라니. 그는 괴물이었다.


나는 진화의 나무 한쪽 끝에 민식이라는 새로운 종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했다. 생물 시간에 원숭이의 굽었던 등이 펴지는 인류의 진화를 침 튀기며 설명하는 선생님에게, 내가 물었다.


“선생님, 그러면 이전에 있었던 유인원들은 다 어디로 갔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씩 웃으며 말했다.


“글쎄, 새로운 유인원들이 다 잡아먹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민식이는 새로운 종인 걸까.


 


나는 민식이가 피범벅 된 깃털을 구령대 한쪽 구석에 흩뿌려 놓는 것을 보며, 그리고 진흙에 따가워져 가는 숨을 진정시키며 생각했다. 민식이의 행각이 계속될수록, 구령대 아래의 내 머릿속에는 생각이 밀물과 썰물처럼 들이차고 나갔다. 어제 배운 피타고라스의 정리, 한국 전쟁 역사, 선생님의 웃기지도 않는 농담들 (하지만 난 웃어야 했다), 비행기가 뜨는 원리……. 하나 같이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찰나, 운동장의 질은 바닥으로 무언가 툭 떨어졌다. 털이 뽑힌 비둘기 사체였다. 어찌나 어거지로 털을 뽑았는지, 비둘기들은 깃털 구멍에서 나온 피로 범벅되어 있었다. 운동장의 진흙과 비둘기의 피가 보기 흉하게 뒤엉켰다.


“야, 저 비둘기 밥해 먹으라고 주자. 비둘기 가방에 넣어놔.”


몇 마리가 더 허공으로 날라와서는-


“진흙도 묻히는 거 잊지 마.”


그리고 주춤거리는 아이들 사이로 민식이는 더 크게 웃는 것이었다. 눈치 빠른 아이들 몇몇은 쓰레기 주울 때 쓰는 기다란 집게를 들고 와서 저기 내팽개쳐진 내 가방에 비둘기 몇 마리를 쑤셔 넣었다. 그리곤 쪼르르 구령대 위로 올라가 민식이한테 그것을 보여주었다. 민식이는 잘했다며 또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둘씩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가방을 가져간 아이들부터 시작한 웃음은 불순한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학교 운동장은 이내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내 생각은 이제 하늘로 날아갔다.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자습 시간에 몰래 본 공포영화를 떠올렸다. 손 사이로 보느라 무슨 내용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지만, 대충 흡혈귀가 사람을 먹으면서 좀비들을 만들고, 좀비가 마을을 덮쳐서 모두 다 끔찍하게 죽어 나갔다. 물론 결말을 보기 전에 선생님한테 걸려서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민식이가 흡혈귀고, 저 애들이 좀비라면 나는 무엇일까?


나는 무력한 어린애지.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학교에서 배운 건 끔찍할 정도로 쓸모없었다. 나는 끔찍이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 비둘기 깃털 뽑는 것을 마친 민식이가 나를 구령대 위로 불렀다.


“올라와, 비둘기.”


구령대 위에는 피투성이의 긴 깃털과 속털이 잔잔한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고, 아이들은 무슨 비눗방울 잡는 것처럼 날아가는 깃털을 잡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진공에서는 무거운 추랑 깃털이 똑같이 떨어진다고 했다. 이런, 전혀 도움 안 되잖아! 다들 손에 한 움큼씩 깃털을 들고 있었다. 피 냄새가 대기에 진동했다. 그리고 그 피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겁먹은 아이들조차 겁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더 흥분하였다. 


나는 곱슬머리를 한 가정 선생님이 이따금 보여주는 사진 자료를 떠올렸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선생은 틈만 나면 우리들한테 지옥이니, 천국이니 하며 겁을 주곤 했다. 지옥에서 불타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사람들과 하늘에서 그들을 안타까운 듯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확대해주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선생님은 천국에 올라가는 것보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조롱하는 걸 즐기는 것 같기는 했지만. 저기 사탄이 양손 가득 피를 묻히고 서 나를 보며 웃고 있고, 작은 졸개 악마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깃털을 모은다. 지옥이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채 다 마르지 않은 내 몸의 진흙에 자신들이 손에 들고 있는 깃털을 뿌렸다. 깃털은 진흙에 한 몸처럼 달라붙었다. 원래 주인을 잃은 슬픔을 보상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휘저었지만, 내 손이 겨우 두 개인 것에 비해 깃털은 거의 무한대- 아, 나는 무한대라는 말도 알고 있다 - 만큼 많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깃털을 다 사용하자, 나에게 발길질해 구령대 바닥에 떨어진 깃털까지 붙이게 했다. 아이들의 발길질에 나는 낙엽처럼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을 때리는 퍽퍽 거리는 소리와 애들의 거친 숨소리, 흥분하여 외치는 단말마보다 내 귀에 화살처럼 꽂히는 것은 민식이의 웃음소리였다. 저기 멀리서 피투성이 된 손으로 손뼉까지 쳐가며 박장대소하는 민식이의 웃음소리. 도대체 무엇이 즐거운 걸까?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얼추 깃털 붙이기가 마무리되자, 아이들은 나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이야, 진짜 비둘기가 따로 없네.”


민식이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때, 민식이가 박수를 한번 치자, 아이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돌며 적막해졌다. 민식이는 그것이 참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흡족한 표정으로 민식이가 말했다.


“그렇지만 역시 진짜 비둘기가 된 건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역시 날게 하는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말하며, 민식이는 구령대 아래로 내려가고, 일부는 그대로 남아 나를 구령대 아래로 떨어뜨리려는 것이었다.


나는 슬금슬금 조여 오는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비둘기가 아닌데. 나는 포유륜데.’


 


그렇게 몇 분째 뛰지 않는 나를 보며 약이 오른 민식이가 소리치는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비둘기 안 밀면 너희도 그렇게 될 줄 알아.”


민식이가 그렇게 소리치자, 갑자기 내 등 뒤로 묵직한 고통이 느껴지면서, 두 발이 자유로워졌다. 떨어지기까지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을 테지만, 마치 느리게 재생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똑똑하게 보였다. 주마등이 이런 걸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고를 당하고 복직한 선생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기억이 여러 가지 스쳐 지나간다고.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별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갈릴레이가 중얼거리는 모습만 반복해서 지나갔다.


진흙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그곳에서 뒹구는 것보다 훨씬 아팠다. 퍽 하는 소리와 나는 머리를 진흙에 박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아니, 정신을 잃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정신을 잃고 깨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테니까. 적어도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범죄가 아닌가? 아니, 차라리 지금 죽어버린다면?


 


“안녕, 친구?”


갑자기 어떤 쇳소리 같은 음성이 들렸다. 칠판을 쇠 송곳으로 그을 때 나는 소리가 음성의 형태로 들리는 기분이었다. 소름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쫘악 퍼졌다. 나는 서둘러 눈에 묻은 진흙을 털어내었다.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괴물이 서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으로써의 괴물이 아니라, 진짜 괴물이 내 눈앞에 있었다. 괴물을 보자마자, 나는 그대로 다시 주저앉을 뻔했다. 역설적으로, 내가 주저앉지 않는 이유는 오히려 애들한테 너무 맞아서 풀릴 힘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대신 온몸의 땀구멍에선 미칠 듯이 땀이 쏟아지고,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온몸의 솜털이 잔뜩 곤두서서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한다고 머리를 설득하고 있었다.


“이야, 근데 너 진짜 이상하게 생겼다. 몸에 깃털은 원래 나는 거야? 아니면 나처럼 위장하려는 거야?”


괴물은 큰 빨간색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피라곤 바늘에 찔려서 나본 적밖에 없는 나였지만, 곧 그 빨간 천이 피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는 하얀 천이라는 것을 강조하듯이, 괴물의 팔이 있을 법한 곳의 천은 희끗희끗 하얀 기운을 내었다. 그리고 입이 있을 법한 곳은…….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빨간색이 가득 칠해져 있었다. 어째서 저 빨간색은 흘러내릴까? 하는 의문이 이상하게 도망가고 싶다는 의지를 꺾고 내 머리에 울려 퍼지고 있을 때, 괴물이 이어 말했다.


“이봐, 너 혹시 말을 못 하는 거야? 혀 필요해?”


하고 괴물이 천 아래로, 썩어 문드러져서 여기저기 곰보가 파인 손을 내밀었다. 한 달 정도 썩어 내는 음식쓰레기 같은 냄새가 그 팔에서 쏟아져 나왔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그 손의 끝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혀가 들려있었다. 혀는 방금 뜯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피가 맺혀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회시간에 배운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삼각형의 내각의 합도, 원숭이들과 속담들도. 어제 사회시간엔 무얼 배웠지? 


 괴물이 말했다.


“내가 방해했다면 정말 미안해. 나는 네가 진흙에 꼼짝도 않고 누워있길래 다 먹은 건 줄 알았어.”


하면서 트림을 하는 것이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끔찍한 냄새였다. 끔찍한 냄새와 함께 비린내가 영원할 것 같이 내 주위를 감쌌다.


“앞으로는 이런 곳에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사방이 탁 트여있고 어린애들이 많은 곳 말이야. 살도 연하고, 무엇보다 반응이 재밌다고 해야 하나.”


하면서 괴물은 팔짱을 끼고 – 물론 그걸 팔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 역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피로 다시금 질척해진 진흙밭 위로 갈기갈기 찢긴 아이들의 사지 조각들이 보였다. 새끼손가락이니, 귀의 볼록한 부분이니 하는 것들 말이다. 머릿 거죽도 몇 개 보였고, 뼈 같은 것도 주위에 온통 널브러져 있었다. 눈알이 위로 핑돌려고 했다.


‘생각해, 생각.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거잖아.’


고개를 조금 더 들자, 진흙밭이 발이 움켜 쥔 것처럼 꼼짝 않고 이쪽을 주시하면서, 다소 멍한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아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들은 반쯤, 아니 완전히 미쳐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괴물은 그런 것이니까.


“다시 한번 사과할게. 그나저나 정말 반갑긴 하네. 같은 괴물을 만난 건 진짜 오랜만이거든. 언제였더라…….”


하고는 괴물이 천 아래에서 손을 꺼냈다. 아까 이빨을 건네주기 위해서 나에게 내민 손 말고도 대 여섯 개의 팔이 천을 뚫고 나왔다. 팔은 모두 썩어있었지만, 손가락 – 저 뾰족한 것을 손가락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의 개수가 모두 달랐다. 어떤 것은 4개, 다른 것은 8개, 10개……. 괴물은 손가락을 접어가며 수를 세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몇 개 기계적으로 펴고도 10이 넘어가자 수를 세지 못했다. 


“음……. 이 이상은 세지 못하겠어. 10 다음 수가 뭐지?”


괴물이 말했다. 나는 민식이 패거리한테 맞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말을 꺼냈다. 기진맥진한, 목구멍 속에 무언가 걸린 듯한 탁한 소리였다. 필시 목이 부어 있으리라.


“11 이야.”


그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접힌 손가락을 세었다.


“그리고 네가 핀 손가락은 모두 19개야.”


간단한 덧셈이야.라고 덧붙여 말하려고 했지만, 힘이 달려 뱉지 못했다. 하지만 괴물은 그걸로 충분했는지 크게 반색하며 말했다.


“와, 너 정말 똑똑하구나. 너같이 숫자를 셀 수 있는 괴물은 처음 봤어. 저번에 만난 괴물은 말도 잘 못했거든.”


그러더니 괴물은 웃었다. 그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웃음뿐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웃음이라 말했지만, 멀리서 상황을 모르는 누군가 그걸 들었다면 비명이라고 판단하는 게 옳을 것 같은 웃음이었다. 강철로 만든 까마귀가 죽을 때 울 것 같은 소리라고 해야 할까.


“너가 말한 대로 19년 정도 전인 것 같애. 그때는 인간들이 이렇게 이상한 색깔의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거든. 다 흰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러더니 입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선 무언가를 꺼냈다. 짚신이었다.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짚신을 아득히 덮고 있긴 했지만, 그건 틀림없이 짚신이었다. 역사 시간, 멀티미디어 자료에서 본 적 있었다.


“그때 애들은 이런 걸 신고 있었는데, 통 소화가 안 돼서 말이야. 그래서 그냥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이 애들은 다른 걸 신고 있네? 이건 소화가 될까?”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 진흙밭에 널려있는 다른 운동화를 낚아채었다. 그리곤 괴물은 가슴팍에 있는 눈알 앞으로 가져가 짚신과 비교하기 시작하였다. 


신발을 두고 비교하고 있는 괴물을 두고, 나는 오히려 정신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정신만 차리면, 정신만 차리면. 나는 지금 눈앞에 백 년도 더 된, 신라시대니 고조선 시대니 하던 시절의 고대 괴물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정신만 차리면 산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는 똑똑하니까.


“그건 짚신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러자 괴물의 다섯 개 정도 되는 눈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가슴팍의 눈은 운동화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 그 거참 이상한 이름이네.”


“하지만 애들이 신고 있는 건 그것보다 소화가 안될 거야. 더 질긴 섬유로 이루어져 있거든.”


분명히 학교에서 배웠을 때는 그것보다 긴 이름이었는데. 폴리-뭐시기. 하지만 괴물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한 듯, 까마귀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웃는 소리를 내었다.


“그래그래. 섬유가 뭔진 모르겠지만, 너같이 똑똑한 괴물이 그렇다면 믿어야지.”


“그리고 너, 최소한 백 년은 더 잔 거 같아. 그건 아주 오래된 물건이거든.”


나는 작년에 간 민속 박물관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하긴 좀 많이 배고프긴 했어. 오래 자긴 오래 잤구나.”


하더니 괴물은 트림을 끄억 하기 시작했다. 옆구리와 어깨에서 천이 펄럭이면서 하수구 냄새가 났다.


“너는 얼마 만에 일어난 거야? 이런 거까지 알고 있으려면 꽤 오래 깨어있었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


순간적으로 나간 존대에 말문이 막힐 뻔했지만, 역사 시간에 배운 가장 오래된 사람들을 이내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삼천 년 정도 깨어 있었어.”


“삼천 년? 그게 얼마나 오래야?”


“아주 오래 전이야……. 어… 음…….”


괜한 말을 꺼냈나. 내가 고민하자, 괴물의 몸에서 눈이 떨어져 나와 이상한 각도로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햇볕에 진흙이 말라갔고, 바람 때문에 내 몸에 붙어있던 깃털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인간들이 없었어. 대신 인간만 한 원숭이들이 있었지.”


내가 급하게 말하자, 괴물은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너 나보다 나이가 많나 보다. 난 인간만 한 원숭이들은 본 적이 없거든. 지금보다 털이 많은 인간들은 본 적 있었어도.”


그러더니 울컥울컥, 천 너머로 입으로 무언갈 토해내기 시작했다. 청동검 – 역사시간 만세! 엄청나게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과 주먹 도끼들이 와장창 나왔다. 


“이게 내가 가장 처음으로 먹은 것들이야. 너는 이것도 뭔지 알겠네?”


“네, 아니, 응 알지. 청동으로 만든 칼이랑, 돌로 만든 도끼네.”


“와, 난 네가 정말 좋아. 정말 넌 똑똑해.”


아직도 저 멀리 울면서 겁에 질려있는 아이들을 대여섯 개의 팔들이 제각기 가리키면서 괴물이 말했다.


“이제 슬슬 출출해지려고 하는데, 혹시 저것들보다 더 맛있는 것들이 있는 델 알고 있어? 너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근처에 동물원이 있어.”


“동물원?”


“전 세계의 모든 동물들을 모아놓은 곳이야.”


“왜?”


“보려구. 신기하잖아.”


“고작 신기한 걸 보겠다고 동물들을 모아놓는다고? 나야 좋지만, 것 참 끔찍한 일이네. 원래 사는 곳만큼 좋은 게 없는데 말이야. 그렇지 않아?”


괴물이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거기에 사람만 한 원숭이도 있어?”


“물론이지.”


나는 동물원의 로랜드 고릴라를 떠올리며 말했다. 찰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 고릴라는 철창 너머에서 항상 사람들에게 등 돌려 앉아 있었다. 미안해 찰스.


“이번에 한 번 먹어봐야겠네.”


하면서 침을 뚝뚝 흘려대었다. 그렇게 쏟아지는 걸 침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같이 갈래?”


괴물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 손은 이곳저곳 구멍이 뚫려 있었고, 살 가죽 사이엔 아가미라도 있는 것처럼 뚫린 구멍이 꿈틀꿈틀거렸다. 나는 거절했다.


“아니, 나는 애들을 좀 더 먹으려구. 원숭이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정말 반가웠어 친구.”


괴물은 몸을 한 껏 바닥에 낮추더니, 그대로 뛰어올라 학교를 넘어 사라졌다. 진흙은 이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려웠다. 하지만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나는 손을 머리 위로 크게 들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큰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앙”


살아남은 민식이와 그 패거리들은 울면서 도망가고……나는 그대로 진흙에 머리를 처박으면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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