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따뜻함이 묻어 있느냐 그저 집요함의 차이냐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면 글을 쓸 수 있다.
그들이 왜 좋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마치 열렬한 독자 같다고나 할까.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디테일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끊임없는 관심을 뜻한다. 끊임없는 관심과 세심한 관찰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독심술이 있지 않은 한 말이다.
무언가를 생각하면 그것에 대한 글을 계속해서 써 내려갈 수 있다.
그것에 대한 비평이라던가 그것에 대한 모양 생김새 등 말이다.
그것은 고민과 관찰이다. 고민과 고찰, 세심함은 사랑이다. 시선의 따뜻함이 묻어 있느냐 그저 집요함의 차이냐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고심은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잘난 작가들이 어떤 것에 대해 유한한 글들을 써낼 수 있는 것은 그것에 대한 관심의 고찰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애정이 담긴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관심 고찰. 나의 안녕을 물어주는 사람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더 이상 나의 안녕을 묻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글을 쓴다. 고찰을 한다. 생각을 하고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때? 내게 질문을 던져줄 순간을 기다린다.
나의 안녕을 묻지 않는 당신에게 어떤 인연에 묶여 있는 우리에게 나는 당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저 그 순간을 기다리면 될까. 나는 안다.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변한 어떤 사람을 이해하려는 시선이 없다면 그건 그저 일방정인 관심의 요구 일 뿐이라는 걸.
넌 뭘 그런 말을 해?라고 하면 더 이상 전달의 의미는 없어진다. 그리고 그럴 것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기다리면 될까. 내게 질문을 던져줄 순간을. 아니면 더 이상의 질문을 기대하지 않으면 될까. 나의 그릇의 문제라면 나는 그릇이 작아 그저 기다려 줄 수가 없다. 나도 그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정도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