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소설을 보여주면 들을지도 모르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학교에 들어섰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교실로 걸어가 실내화를 갈아 신도록 지도했다. 학생들은 한 손에 신발을 들고 양말을 신은 채 복도를 걸었다. 양말 바닥이 까매지는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그게 싫었는지 신발을 신고 교실 앞까지 와 갈아 신기도 했다.
나의 답답함은 소심함에 버무려진 불가능한 바람으로부터 왔다. 학창 시절 나는 모든 학생들이 신발을 입구에서 벗고 들어가면 비가 오는 날에도 아무도 양말이 젖지 않은 채로 교실로 걸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누군가는 양말이 다 젖더라도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고. 지금 생각하니 내 생각을 밀어붙이려는 고집도 한몫했다.
소설 속 태현이는 무슨 일이든 여자친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두고 싶어 하면서 자신과 다른 그녀의 모습에 힘들어한다. 태현이는 자신도 그녀도 바뀌지 않은 채로 함께하기를 원한다. 그는 갈등 없이 완벽한 행복을 꿈꾼다. 친구가 화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우리 학교 학생들의 실내화 보관함은 1층 실외에 있다. 학생들은 본관과 후관을 잇는 통로 아래 비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신발을 갈아 신고 교실로 올라간다. 깔끔하고 편리한 방법이다.
불가능을 내려놓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꺼내어 놓는 것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을 겁내지 말 것. 내가 앞으로도 노력해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태현이의 답답함이 아주 싫지는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답답한 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