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리 주상절리
나는 결혼하면서 가장 먼저 차를 바꾸고 싶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여행, 캠핑을 다니기에는 더 크고 안정적인 차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오빠를 설득했다. 그럴 때마다 오빠는 캠핑용으로 리모델링된 갤로퍼 같은걸 보여주면서 나를 설득했다. 어차피 출퇴근용으로 차를 쓰는 게 아니니까, 가끔 차가 필요할 때에는 경차를 타고 세컨카로 갤로퍼를 타고 여행을 하자는 거였다.
사실 3년 전만 해도 캠핑이나 차박이 핫할 때가 아니라 보기만 해도 삐그덕 소리가 날 것 같은 올드카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오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감성은 끝장나겠지만 가는 길에 바퀴가 빠지거나 브레이크라도 안 듣는 날엔 인생이 끝장 날수도 있다고 방어했다. 그리하야 우리는 3년 내내 작고 소중한 경차를 타고 여행을 다녔다. 뒷자리는 점점 각종 캠핑 용품으로 꽉 찼고, 더 이상 짐을 실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우리는 차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의견이 다른 상태에서 무언가를 결심할 때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의견이 일치되면 그때부턴 속전속결로 일을 진행한다. 구경이나 하자며 들어갔던 대리점에서 꽂힌 차로 계약하고, 한 달 만에 새 차를 인수받았다. 트렁크에 캠핑 용품이 가득 실리고, 뒷자리를 사수할 수 있는 우리의 아지트가 새로 생겼다. 새 차로 하는 첫 차박지는 동이리 주상절리였다.
서울 근교에 이런 주상절리가 있다고? 사진만 보고 의아해하며 찾아간 곳이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차로 내려갈 수 있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어서 차박지를 정하기까지 정말 많이 헤맸다. 게다가 새 차를 끌고,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어마어마한 스크래치를 남길 것만 같은 비포장 도로를 이리저리 방황하다 보니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그래도 이러려고 마련한 차니까, 포기할 수 없었다.
바다를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특성상, 강가는 올 일이 전혀 없었는데 강가에서 하는 첫 차박이기도 했다. 동이리 주상절리는 생각보다 멋진 뷰를 자랑했고, 잔잔한 강가가 주는 고즈넉한 느낌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뒷자리 2열 시트를 접어서 평탄화 작업을 하고, 아늑한 우리만의 공간을 만든 후에 막걸리를 한잔씩 했다. 그래도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같이 차도 사고, 뭔지 뭐를 뿌듯함과 전우애가 느껴지는 하루였다.
남편은 민물낚시를 한다면서 낚싯대를 두 개나 던져놓고 멍을 때렸고, 나는 불멍에 꽂혀서 불장난을 하면서 멍을 때렸다. 오빠는 결국 메기 한 마리를 잡았고, 나는 온몸에 장작 냄새를 뒤집어쓰고도 부채질을 해대며 불멍을 즐겼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며, 조명을 켜자마자 우리는 더 이상의 강가 차박은 없는걸로 하자고 다짐했다. 정말 태어나서 이때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밝은 조명 주변에 거의 지구종말 수준으로 달려드는 온갖 종류의 벌레들... 그것도 수백만, 아니 셀 수도 없는 개체수를 자랑하는 벌레들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이 세상은 정말 벌레가 지배하고 있는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집이 그리워졌다. 더 이상의 야외 활동은 거부한다! 방법은 얼른 조명을 끄고, 모기장이 설치된 아늑한 차에 들어가서 안전하게 잠을 청하는 거였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우리를 맞이해주는 풍경은 또 너무 심각하게 아름다웠다. 사람 마음이 이리도 간사하다니... 어제의 벌레떼는 까맣게 잊은 채, 오빠가 아침으로 만들어준 항정살 짜파게티를 한입 먹자마자 이런 행복이 없다고 느꼈다. 다음번에 강가로 캠핑을 떠날 일이 생긴다면, 막걸리를 몇 병 더 사가는 방향으로 해야겠다. 살짝 취하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처럼, 벌레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날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