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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갑낫을 Jul 21. 2020

퇴근하고 전국일주 (3)

남애리 해수욕장


나는 불장난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제대로 불멍을 즐길 수 있는 겨울 캠핑을 가장 기다려왔다. 코가 시리도록 추운 날, 타닥타닥 마른 장작 타는 소리를 듣는 그 순간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이 왔다고 느껴지는 어느 금요일 저녁, 퇴근하자마자 롱패딩을 챙겨 입고 겨울 캠핑에 도전하기 위해 떠났다. 캠프 사이트는 주로 남편이 검색해서 제안하는데, 이번에는 강원도 양양 남애리 해수욕장이 당첨됐다.


양양은 하조대 해수욕장이나 서피비치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작고 예쁜 해수욕장들이 줄지어 있는 동네였다. 동산 해수욕장부터 인구해변을 거쳐 남애리 해수욕장까지 캠핑하기에도, 서핑을 즐기기에도 좋은 장소들이 넘쳐났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주문진 수산시장부터 들러 자연산 회를 뜨고, 가리비와 뿔소라까지 잔뜩 샀다. 캠핑에는 고기가 또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소갈비살과 항정살도 준비했다. 이 날의 주종은 안주에 따라 소주로 결정됐다.



가리비와 뿔소라 구이



남애리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안면도 샛별해수욕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로등이 해변을 밝게 비춰주고, 마침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는 팀도 있었다. 아무도 없었으면 약간 쫄았겠지만 용기를 얻어, 밝은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남편은 저녁에 뭐가 잡힐지 궁금하다며 낚싯대를 세팅해서 바다에 던져두고, 화로대에 참숯을 가득 넣고 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노지 캠핑을 한번 해봤더니 죽이 척척 맞는 우리다.


남편과 나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일에 여기저기서 시달렸던 피로가 풀리는 시간이다. 집에 있었다면 넷플릭스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인데, 밖에 나오니 온전히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동네 강아지 두 마리가 고기 냄새를 맡아서 인지 우리 곁으로 와서 재롱을 피운다. 강아지들이랑 같이 사진 찍고 실컷 낄낄거리다 보니, 매일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랑스러운 동네 개님들



끌어당김의 법칙을 다룬 시크릿에서였던가 실제로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미 그것을 다 이룬 것처럼 행동해야 하고, 그 상황이 매우 구체적이고 디테일해야 한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 날, 남애리 해수욕장에서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짜 보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어디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그날 나의 메모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 부부의 꿈은 푸른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잔디 마당과 수영장이 있는 집을 짓고, 마메시바 두 마리를 키우면서 로리네 민박을 하는 것입니다. 햇살 좋은 날에는 해먹에서 낮잠도 자고, 구릿빛 피부가 될 때까지 태닝도 하고, 저녁마다 돌판에 삼겹살도 구워 먹고, 불멍도 실컷 하고요. 해질녘 바다로 숨어드는 노을을 바라보며 글도 쓰고, 물때를 맞춰서 낚시와 해루질도 실컷 하는 그런 삶을 살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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