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포 해수욕장
성공적인 첫 번째 캠핑 덕분에 남편도 나도 캠핑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하야 두 번째 캠핑은 캠핑장 예약 없이, 급으로 떠나는 노지 캠핑으로 정했다. 노지 캠핑의 매력은 취사와 야영 금지구역만 아니라면, 우리가 장소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거다. 전기도 없고, 화장실, 개수대, 데크 등등 관리된 편리함을 기대할 순 없지만 낭만과 감성의 끝판왕이 바로 노지 캠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의 목적지는 안면도 샛별해수욕장으로 결정됐다. 서해가 해루질하기 좋은 때라는 남편의 추천이었다. 저녁에는 해루질, 낮에는 광어와 농어 낚시를 해야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항정살이랑 가리비를 잔뜩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는데 오마이갓! 갑자기 거센 파도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도저히 캠핑을 할 수 없는 음산함이 우리를 반겨주는 게 아닌가.
사람 한 명 없이 깜깜한 해수욕장에서 캠핑을 할 엄두가 안났다. 내가 여긴 아닌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자 오빠도 덩달아 멘붕이 왔다. 결국 우리는 밤 열한 시에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 오토캠핑장에 전화를 돌려가며 남는 자리가 있는지 확인했고, 남편은 항구 쪽에는 사람들이 좀 있을 거라며 가보자고 했다. 웬걸 영목항과 구매항은 더 스산했다.
나는 모험가 본능을 발휘해서 차라리 캠핑장 주변 해수욕장으로 가보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장삼포 해수욕장으로 출발했다.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은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이었지만 어차피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역시,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평온하게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소리가 반갑게 들려온다.
약간 진정된 우리는 두 번째 고민에 빠졌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캠핑장에서 편안한 캠핑을 즐기느냐, 노지 캠핑에 도전하느냐. 웬일인지 오빠가 조금 더 들어가 보잔다. 해수욕장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니 장박 텐트 한 채가 서해 바다의 매서운 바람을 홀로 받아내고 있었다. 직감이 왔다. 우리는 장박 텐트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원터치 텐트가 바닷바람을 버틸 리 없었지만 오빠는 그 강풍 속에서 이리저리 몇 번을 텐트와 함께 휘청거리더니 결국엔 펼쳐서 고정시켰다. 불멍이고 바베큐고 헛된 꿈이 되어버린 상황에 시간마저 열두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가리비라도 먹고 자야겠다 싶어 그나마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차 옆에 테이블을 세팅했다.
둘다 머리 산발에 만신창이가 되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버너에 가리비를 올리고, 소주 한잔씩 털어 넣으니 바람이 감쪽같이 멎었다. 이제야 웃음이 터진다. 남은 가리비를 넣고 끓인 라면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안주삼아 마시는 소주는 왜 이렇게 달달한 건지. 그렇게 두 번째 캠핑을 계기로 나는 어디서든 잘 잔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 맞이하는 풍경은 어젯밤과는 사뭇 달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일 줄이야.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가슴 장화를 신고 해루질에 나섰다. 멀리까지 물이 빠져 모습을 드러낸 돌들을 뒤집으며 낙지 사냥에 열을 올렸는데 배가 고파질 때까지 돌을 뒤집었더니 낙지가 3마리나 잡혔다. 우리 부부의 자급자족 능력치가 레벨업되는 경험이었다.
낙지님들을 싱싱하게 집으로 모셔와서 낙지탕탕이를 해 먹으며 캠핑을 리뷰하는데 오빠가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단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난무했을 때 화내고 짜증 낼 줄 알았는데, 침착하게 대안을 제시하고 리드해가는 모습이 섹시했다고. 역시 아내 말을 잘 들어야 된다고. 나는 이날 먹은 낙지탕탕이 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