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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석 Feb 12. 2024

오랜만에 오르는 산길

새해 첫 심학산 등산을 마치고


답답한 마음에 산을 찾았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산에 오르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었고 그 장소가 산이었으면 싶었다. 파주에 살며 심학산을 딱 한 번 가본 것 같다. 자주 찾는 출판단지에 있는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산인데 말했듯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심학산 인근에 있는 식당만 찾았지 산을 오를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어제 문득 산을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르다 보면 뭔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설 연휴 마지막 날 홀로 심학산을 향했다.



누군가 심학산을 다녀온 경험을 블로그에 올려놓은 걸 보고 대충 어디로 가야 할지 머릿속에 그리며 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만석이다. 겨우 한 곳을 발견해 주차를 하고 산 입구에서 등산 코스를 봤다. 둘레길이 있고 등산길이 있었는데 처음엔 가볍게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오려고 했지만 산 초입 오르막 길을 걷다 보니 정상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학산이 아주 높은 산도 아니어서 한 번 가보자고 생각했다.


이어폰으로 라디오를 들으며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발목이 찌릿찌릿하다. 평소에 안 걷는 낯선 오르막 길을 걸으니 가장 약한 부위에 반응이 온다. 살짝 불편하긴 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기에 무심히 걸었다. 군생활 때 많이 봤던 진지도 보이고 겨울이어서 나뭇잎이 풍성하진 않지만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산행의 기분이다. 군대 훈련병 시절 전투화를 신고 발에 물집이 생겨도 참고 걸었던 행군 생각이 났다. 물론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산행이지만 걷다 보니 여러 생각이 났다.



휴일이라 그런지 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부부, 가족, 청년들,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산을 하고 있다. 나도 가족과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내가 오래 걷는 게 쉽지 않아 등산보다는 산책길을 찾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날 밤에 옷을 준비하며 겉옷을 어떻게 입을까 고민을 했다. 산에 오르다 보면 분명 두꺼운 점퍼는 불편할 것 같고 또 가볍게 입자니 혹시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국 겨울 점퍼를 입고 갔다. 오르다 보니 더워서 옷을 반쯤 벗어 어깨에 걸쳤다. 조끼나 조금 더 얇은 점퍼를 입고 갔어야 했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산 정상으로 가고 싶었는데 표지판이 명확히 정상을 가리키고 있지 않아 중간에 조금 헷갈렸다. 그래도 살아온 인생 짭밥이 있는데 이 정도는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어떤 때엔 감으로 방향을 잡기도 했다. 다행히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았는지 길을 잘 찾았다. 그렇게 오르다 보니 정상이 보인다. 정상 근처엔 여느 산에서 본듯한 큰 바위가 길목에 떡하니 있다. 큰 바위를 지나 위를 올려다보니 정자가 보였다. 잘 만들어 놓은 나무 계단을 구불구불 오르니 얼마 안 가 정상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꽤 있다. 저마다 숨을 돌리며 장난감 같은 산 아래 풍경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확실히 산 정상에 오르니 마음이 탁 트인다. 비록 초미세먼지가 가득한 날이어서 아주 먼 곳까지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좋았다. 낯익은 파주출판단지와 한강이 보이고 그 너머에 흐리게 김포가 보였다. 날이 좋았다면 그 이상도 보였을 것 같다.



정자에서 360도로 돌며 산 아래 세상을 눈에 담았다. 멀리서 보니 저기서 저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높은 곳에 오르면 항상 하는 생각이다. 정자에 머무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러 걱정거리를 가지고 올라온 산행이었지만 오르고 나니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 같다. 생각이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몸을 좀 움직여보고 싶었었다. 움직이다 보면 어쩌면 해결책을 찾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산에 올라도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산에 오른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변할 리도 없고 내 삶이 짠 하고 변할 리도 없지만 그래도 다행히 한 가지 얻은 게 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그 문제를 뚫고 갈 힘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산행은 좋았다. 둘레길을 선택하지 않고 등산로를 선택한 것도 좋았다.



작년에 계획한 2024년에 할 일들이 어려움으로 멈추거나 하지 않고 하나씩 실행되길 바라고 또 도전해야겠다. 언제는 안 힘들었나. 돌아보면 고비가 아닌 적이 없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흔한 말이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이 말이 참 위로가 된다. 내게 온 위기가 기회가 되고 도전이 되고 결과가 되길 바란다. 정상에서 다시 내려가다 보니 오를 때와는 또 다른 곳에 통증이 있다. 오를 때는 발목이, 내려갈 때는 무릎에 통증이 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산을 오르며 힘들기도 하지만 내려갈 때도 쉬운 건 아니다. 어렵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쉽다고 좋은 것도 아닌 것 같다. 그 상황에 맞는 즐거움과 어려움은 항상 함께 있는 것 같다.


너무 낮은 산이라 등산을 했다고 생색내는 것이 민망하지만 그래도 생각에 머물지 않고 몸을 움직여 산을 올랐다는 데 의미를 찾아본다. 올해는 하고자 하는 일을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자꾸 도전하며 행동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오늘 산에 오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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