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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머로 전향하다

by 원석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는 충격이 괘 컸다. 그토록 원하는 학교를 가려고 열심히 공부했는데, 고등학교 재수생이라는 좋지 않은 시선도 이겨냈건만. 학교는 별 희망이 없어 보였다. 반장을 맡고 있다 보니 여러 불합리한 것들이 더 잘 보였다.


기능반 신고식도 있었는데 냉면 사발에 맥주, 소주, 환타 등을 넣어서 마시라고 강요했다. 지금 보면 대학교나 들어가야 있을법한 일들이 공고에는 비일비재했다. 기능반을 감독하는 조교가 있었는데 유명무실했다. 오히려 선배들의 폭력과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묵인하거나 동조하기도 했다. 왜 내가 이 학교를 들어가서 이렇게 고생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많았다.


방과 후 바로 기능반 지하실에 내려가 실습을 했다. 합판을 사포질 하고 헤라(밀대)로 젯소를 입히고 굳으면 그 위에 도면을 보고 도안을 만든다. 생각보다 정교한 작업이라 작업할 때는 정말 집중해서 했다. 로트링 펜으로 글자를 쓰고 페인트에 시너를 섞어 도장을 했다. 겨울이면 붓을 빨아야 하는데 어찌나 손이 시렸던지. 빨랫비누에 붓을 문지른 후 손바닥에 좌우로 비비면서 빨았다. 찬물에 쉽게 페인트가 빠질 리가 있겠는가. 한참을 비벼야 색이 빠졌다. 또, 늦은 시간까지 실습하다 보니 저녁이 되면 끼니를 해결해야 했는데 학생이라 돈이 없어 거의 라면을 주로 먹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대형 주전자에 라면을 약 10개 정도를 넣고 끓인다. 그리고 거의 10~20명 정도가 모여 종이컵에 라면을 떠서 먹고 주전자로 국물을 받아먹었다. 그게 92년도 일이다.


기능반을 가지 않는 날에는 음악 하는 친구 집에 가서 음악을 들었다. 장르는 트래쉬 메탈. 거의 메탈리카를 많이 들었고 세풀투라 등을 들었다. 토요일에 학교 끝나고 동대문이나 압구정동 합주실에 가서 합주를 했다. 처음엔 베이스 기타로 연주하다가 드러머가 탈퇴하는 바람에 내가 드럼 스틱을 잡게 됐다. 평소에 딱히 드럼에 관심이 없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드럼을 시작하게 됐다. 종로서적 건너편에 있는 세기음악학원에 등록해 몇 개월간 드럼 기초를 배웠다. 그리고 독학을 시작했다. 카센터에 가서 버려진 타이어를 주워다 깨끗하게 닦아 방 안에 놓고 연습했다.


드럼이 생각보다 나하고 잘 맞았다. 그리고 가기 싫은 학교에서 벗어나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연주하는 동안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친구들과 모여 음악 얘기, 농담, 합주를 하는 게 그때 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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