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런 날 이럴 땐

병원에서 보내는 추석은

by 원석


이런 날 이럴 땐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중약 배전으로 잘 로스팅된 과일의 산미와 달콤한 후미가 좋은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추석날 아침 난 병원에 있다. 경기가 어려워 디자인 일로만 안 될 것 같아 저녁 시간에 오토바이 배달을 했는데 사고가 났다. 사고는 예측할 수 없다. 아무리 안전하게 타야겠다고 다짐해도 어쩔 수가 없다. 며칠 전 저녁, 콜을 잡고 이동하는 중에 비보호 좌회전 차선에서 승용차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속력을 이기지 못한 스쿠터는 차의 옆면을 그대로 받았다. 통원 치료를 받다가 안 되겠어서 입원했다.


쌀쌀한 날씨, 연휴의 한적한 도로, 추석에 집에 가지 못한 환자들, 당직 간호사들, 병원 지하 손님이 드문 편의점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청년. 아빠 없이 추석을 보내야 하는 가족들. 이상한 추석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에 긴 연휴는 자영업자에게 부담이 된다. 내야 할 돈, 벌어야 할 돈이 산적해 있는데 이렇게 긴 연휴라니. 그리고 이렇게 입원하다니. 모르겠다. 삶은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잘 되는 듯 평범한 일상을 누리다가도 어느샌가 눈앞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쌓여있다.


이런 날 이럴 때 커피를 마시고 싶다. 중약 배전으로 잘 로스팅된 에티오피아 계열의 드립 커피라면 좋겠다. 하염없이 창 밖을 보며 비가 오면 빗방울을, 해가 뜨면 구름을 보며 적당히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할머니와 서커스 보러 간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