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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겨울 사이

by 원석


길을 걷다 땅에 떨어진 나뭇잎을 만났습니다. 여름내 초록빛을 뿜었던 나뭇잎은 가을의 냉정함과 단호함에 땅에 떨어진 듯 보였습니다. 나무는 그렇게 꼭 붙어 있던 나뭇잎들과 이별하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습니다.


계절은 해야 할 일을 미루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습니다. 도망가지도, 쫓아가지도 않습니다. 매 순간 해야 할 일을 어떤 연민도 갖지 않고 쳐냅니다. 초록빛 나뭇잎은 보색인 붉은빛으로 바뀌어 자신을 감춥니다. 주연에서 조연으로, 엑스트라에서 관람자로 물러섭니다.


나무는 봄의 새싹을 위해 가을부터 홀로서기를 준비합니다. 이 모든 일이 가을 안에 담겨 있습니다. 선선한 날씨, 높은 하늘, 하얀 구름을 보며 감탄하는 중에 가을은 여름을 보내고 겨울을 만나러 갑니다. 붉은 나뭇잎은 다가올 겨울을 위한 따뜻한 불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겨울이 오면 잊힐 가을을 오늘 기억에 담아 봅니다. 초록 잎으로 영원하기보다 붉은 잎으로 잘 떨어져야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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