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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Nov 26. 2023

공동육아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공동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파란하늘 포트스 방과후의 시작


“안녕하세요. 이번에 졸업을 하게 된, 그리고 파란하늘 방과후 12기 기수장을 맡게 된 서현이 아빠 푸른숲입니다. 지난해 가을 경주로 졸업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포스트 방과후’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중등교육을 받게 되는 우리 아이들에게 공동육아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이제부턴 뛰는 거다!” 갑자기 태세전환을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요. 물론 현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더 나은 삶을 위한 길 찾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려 합니다.”      


올해 3월 1일, 파란하늘 어린이집 & 방과후 카페에 <포스트 방과후 1기> 게시판을 개설하고 올린 첫 번째 글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오글거림을 참기 힘들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는 ‘아직은 방과후가 있으니까’라고 믿을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과후까지 졸업을 하게 되니 기댈 곳이 사라진 것입니다. 허전하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선배 조합원들의 졸업을 아쉬워하는 후배 조합원들에게 뭔가 희망을 주고 싶다는 포부도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건방지고 무모한 생각이었지만 말이죠.


성내천 플로깅 기념사진(左)과 포스트 방과후 준비모임 웹자보(右)



일곱 가지 원칙


세월호 참사 9주기였던 4월 16일 거여동에서 성내천을 거쳐 올림픽공원까지 플로깅을 하고 어린이날 전날인 5월 4일에는 두 번째 준비모임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첫째, 매월 1회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모임을 갖는다.

둘째, 역사, 문학, 예술, 과학,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는다.

셋째, 아이들이 주도하는 모임을 지향하지만, 아마들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고려한다.

넷째, 가구별로 연 1회 교육아마를 맡는다.

다섯째, 비용은 모임을 할 때마다 교육아마가 부담한 후 추후 정산하는 방식으로 한다.

여섯째, 포스트 방과후 계획 및 평가를 위해 정기적으로 아마 모임을 갖는다.

일곱째, 5월 말 시작 모임에서 아이들에게 모임의 취지와 전반적인 개요를 설명한다.   

  

이후 포스트 방과후 모임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5월에는 비가 내리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스트 방과후 출범 기념 캠핑을 진행했습니다. 6월에는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가는 친구와 함께 중학교 입학 기념 우정 사진을 찍었습니다. 8월에는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 열린 전국학생발명품경진대회 수상작 전시회와 창의력 올림피아드를 관람하면서 ‘제2의 스티브잡스’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10월에는 2박 3일간 지리산 둘레길 3코스(인월-금계)를 걸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마들과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고 있습니다. 어린이집부터 방과후까지 길게는 10년을 갈고 닦은 노하우가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벚나무가 만든 지리산 둘레길 일정표



우리들의 느티나무 수호대


김중미 장편소설 『느티나무 수호대』를 읽고 있습니다. 마을의 당산나무인 느니타무가 인간이 되어 아이들의 넓고 푸근한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신비롭고 따뜻한 소설입니다. 20년 전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보듬던 작가는 이제 우리 사회의 새로운 이웃이 된 이주 배경 청소년들을 감싸 안고 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외부로 몰아내는 자본의 탐욕이 마을의 수호신인 느티나무마저 집어삼키려고 하자 아이들이 발 벋고 나섰습니다. 절대적 환대의 공동체, 느티나무 수호대를 결성한 것이죠.      


저에게는, 우리 아이들과 아마들에게는 ‘공동육아’가 넉넉하게 곁을 내주는 느티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꿋꿋하게 아이들을 지키던 믿음직스러운 느티나무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3년 동안의 고립과 단절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들을 앗아갔습니다. 연대는 느슨해지고 환대는 희미해졌습니다. 함께 손을 맞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동육아’를 직면하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방과후에도 크나큰 도전입니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은 고립과 단절을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외로운 마음들을 다시 연결할 수 있을까요? 공동육아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공동육아를 놓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이 글은 <공동육아> 2023년 겨울호(통권 149호)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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