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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Apr 03. 2022

루틴의 힘

愚公移山의 비결, routine

루틴(routine)은 직종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규칙적으로 특정 시간에 습관적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순서나 방법을 이야기 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루틴이라는 말을 단순히 '습관'이나 '버릇'으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루틴이라는 말은 개인 혹은 공동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습득한 하나의 '학습체계'라고 할 수 있다.



주말마다 딸램과 함께 방문하는 스케이트장에서 한가해진 나는 세 가지 루틴을 인식한다. 첫번째는 나(와 가족)의 루틴이다. 주말 오후 5시부터 6시까지는 딸램의 스케이트 시간이다. 나와 우리 가족의 주말 일정은 이 일정의 영향을 받는다. 토요일 아침 일어나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의 『공부하는 삶 』을 필사한다. 아점을 먹고 날이 좋으면 집 앞으로 산책을 나간다. 딸램과 농구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 책과 신문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블로그에 정리를 한다. (물론 사이사이에 설겆이, 빨래, 분리수거 등의 루틴도 있다. 이 루틴의 핵심은 쌓이기 전에 바로바로 처리하는 것이다.) 


딸램이 스케이트를 마친 토요일 저녁 여섯 시는 뭔가 설레는 시간이다. 오늘은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 몇 가지 문구류도 구입하고 오랜만에 외식도 했다. 슈퍼마켓에서 '주말의 영화 파티'를 위한 몇 가지 장을 보고, 들어와서 함께 넷플릭스로 영화를 본다. 오늘 우리 가족이 선택한 영화는 2007년 커스틴 쉐리단이 감독하고 프레디 하이모어가 '어거스트 러쉬'역으로 출연한 미국의 음악영화 「어거스트 러쉬 」. 


일요일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르다. 오전에 (온라인으로) 주일예배를 드리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날이 좋으면 집앞 산책이나 운동도 한다. 그리고 또 스케이트장에 간다. 일요일 저녁은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해야 하므로 마음이 조금 무거워 지기도 한다. 간단하게 가족회의를 하고 서로의 일정을 공유한다. 가방을 싸고 짐을 챙긴다.



두번째는 딸램의 루틴이다. 딸램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5시부터 한 시간동안 스케이트를 탄다. 이것은 코로나19로 인해서 체육관이 문을 닫았던 기간을 제외하고 몇 년 동안 계속 되었던 루틴이다. 세번째는 한체대 스케이트 프로그램의 루틴이다. 기초반, 중급1반, 중급2반, 상급반으로 이어지는 교육과정 단계와 각 단계에 맞게 훈련시키는 선생님들의 루틴이 있다. 이 루틴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해서 보는 사람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 루틴이 강력할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코치의 전문성이다. 이 스케이트장에서 이들보다 더 스케이트를 잘 타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아이들의 자세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하고 잡아준다. 여기서 말하는 자세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몸의 자세도 있고 마음의 자세도 있다. 이것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둘째, 적절한 학생수다. 한 반에 인원이 열 명을 넘지 않는다. 셋째, 훌륭한 시설이다. 스케이트를 타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넷째, 학생의 자발성이다.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 아이와 학부모가 어려운 경쟁 - 누구보다 빨리 신청해야 하는 - 을 뚫고 들어온다. 스케이트를 타기 싫은 학생이 있을 수 없다.


'루틴'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렇게 길고 영양가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육, 특히 학교 수학교육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 진행되는 사적 평생교육과 누구나 배워야 하는 공적 의무교육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공이산(愚公移山). 사소한 실천들이 누적되어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것만큼은 공교육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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