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삶에 관한 애정 가득한 시선
함께 읽는 책 No. 41
헤르만 헤세(2021), 『헤르만 헤세의 나무』
자크 브로스는 『식물의 역사와 신화』에서 “나무는 그 자신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축소된 세계라고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완전한 하나의 세계라고 보아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말한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에도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11쪽)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은 나무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18편의 에세이와 21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나무 그림들도 책의 정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우울한 빛깔이 감도는 듯하지만 그래서 더 위로가 되는.
책에서 나의 눈길이 가는 에세이는 「대립」이다. 헤세는 이 글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이 건강, 유용함, 생각 없는 낙관론에 빠져 온갖 심오한 문제는 웃으면서 거부하고 공격적인 의문 제기는 통통하고 비겁하게 포기한다고 말한다. 순간의 향락에 사는 기술이 이 시대의 표어라고 지적하면서 부담스러운 1차대전의 기억을 슬그머니 속여 없애려 한다고 비판한다. 터무니없이 멍청하고 믿을 수 없이 행복하게 빛나는 낙관론이 유행하는 현실, 모든 위대함이 순간의 것이 되고, 모든 사진과 기록이 하루밖에 지속되지 않고, 새것이 계속 나오는 현실을 비통해한다.
헤세는 뿌리 뽑힌 삶을 애도한다. 그것은 나무의 삶인 동시에 인간의 삶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추억들의 장소가 완전히 파괴돼 이름 없이 황폐해진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편에는 외따로 낡은 주막이 있었고
나는 그것의 지붕을 멀리서도 알아보곤 했다.
집은 예전처럼 서 있었지만
이상하게 변한 모습이었는데
처음에는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하게 기억해 내려고 애쓴 끝에
주막집 앞에 키 큰 포플러나무
두 그루가 서 있던 것이 떠올랐다.
- 헤르만 헤세, 「뿌리 뽑혀서」 중에서
그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훤한 대낮에 남이 뱉은 침을 맞은 기분을 느낀다. 자신의 모든 비밀의 뿌리가 잘린 듯한 고통을 느낀다. 도시 주변의 사방에서는 오로지 잔해, 구덩이, 풀처럼 베어지고 부서진 숲의 경사면, 탄식하며 태양을 향해 뿌리를 드러낸 나무 시체들이 널려 있다. 그럼에도 그를 위로하는 것은 꽃이다. 나무다.
작고 여린 나무가 거기 서 있다, 우리가 사라지고,
우리 시절의 시끄러운 위대함과
끝없는 곤궁과 미친 불안감이
잊힌 다음에도 거기 서 있을 테지.
(…)
나무가 경험하고 맛보고 당하는 일들,
세월의 흐름, 바뀌는 동물 종족,
압박, 치유, 바람과의 우정과 해와의 우정,
그 모든 것이 날마다 속살거리는 나뭇잎의 노래되어
나무에서 흘러나올 테지
- 헤르만 헤세, 「일기 한장」 중에서
생각해보니 나무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인간이 탄생하기 전부터 있었던 나무들은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고 울고 웃고 창조하고 파괴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3월이다. 겨울 내내 말없이 침묵하던 나무들이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한다. “조용히 해봐! 조용히 하렴! 나를 봐봐! 삶은 쉽지 않단다. 하지만 어렵지도 않아. 그런 건 다 애들 생각이야. 네 안에 깃든 신神이 말하게 해봐. 그럼 그런 애들 같은 생각은 침묵할 거야. 넌 너의 길이 어머니와 고향에서 너를 멀리 데려간다고 두려워하지. 하지만 모든 발걸음 모든 하루가 너를 어머니에게 도로 데려간단다. 고향은 이곳이나 저곳이 아니야. 고향은 어떤 곳도 아닌 네 안에 깃들어 있어.” (10쪽)
헤르만 헤세
1877년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태어났다. 1891년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시인을 꿈꾸던 헤세는 그곳을 탈주, 자살을 시도한다. 이후 시계공장과 서점에서 견습직원으로 일하며 글쓰기에 전념하던 그는 1895년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을 출간하고,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1904), 『수레바퀴 아래서』(1906) 등을 발표하며 문학적 성공을 거둔다. 1914년 1차대전에 자원입대를 하지만, 고도근시로 복무 부적격 판정을 받는다. 1919년 발표한 『데미안』으로 폰타네상을 받았으며, 장편소설 『싯다르타』(1922), 『나르치스와 골드문트』(1930), 『유리알 유희』(1943) 등을 발표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간다. 이 밖에 단편집, 시집, 평론집, 서한집 등 다수의 간행물이 있다. 194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23년 국적을 취득해 이주한 스위스에서 1962년 8월 9일 뇌출혈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