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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Oct 06. 2015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세월호 그리고 수현이의 버킷 리스트

지난 10월 4일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 <스틸 플라워>로 초청받은 박석영 감독이 동료 PD와 함께 해운대 영화의 전당 부근에서 세월호 피켓을 들었다. 피켓엔 "세월호 인양!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세월호 사건 이후) 바뀐 게 아직 아무 것도 없고, 유족 분들도 힘들어 하고 계신다"며 "시위를 한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조속하고 성의 있는 인양 작업을 촉구하고 유족 분들에게 영화인들이 그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며 힘을 실어 드리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그보다 하루 전인 10월 3일 가수 이승환이 기부 재단 '차카게 살자' 설립 소식을 알렸다. 여기에는 영화감독 류승완, 방송인 김제동, 웹툰 작가 강풀, 시사인 기자 주진우가 의기투합했다. 그들은 "사랑을 위해서는 도망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피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로 시작하는 선언문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 그리고 어제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한끼 식사를 나누었다.


이 글은 세월호 사건 1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난 4월, 교내에 <세월호 추모 게시판>을 마련한 제자들과 동료 교사들을 위해, 아니 그들과 함께 읽기 위해 쓴 글이다. 이 글을 쓰고도 또 반 년이 흘렀다. 그러나 박석영 감독의 말처럼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 세월호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


세월호는 사건이다     


소설가 박민규가 명료하게 말했습니다.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요.

   

김애란 외, <눈먼 자들의 국가>


아시다시피 처음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사고로 인해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것을 승객도 알았고, 승무원도 알았고, 선장도 알았고, 해경도 알았지요. 문제는 승객들은 사고 직후 매뉴얼대로 움직였는데,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소방안전교육을 실시합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대피경로를 따라 안전한 곳으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전한 곳이라고 가정되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소방안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송과 함께 항상 반복해 오던 것이지요. 세월호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승객들은 특히 선생님과 학생들은 그 매뉴얼대로 움직였습니다. 배가 계속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객실에서 대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매뉴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배가 급격히 기울어진 상황에서 그들도 이상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반복적으로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우려사고 대비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선내방송이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소방안전교육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요. 우리가 방송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듯이 그들도 방송의 지시에 따라 가만히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승무원과 선장과 해경은 매뉴얼을 따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매뉴얼이 뭔지 알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일부러 매뉴얼을 어긴 것일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승객의 소중한 생명은 그들의 안중에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고의로 저버렸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세월호가 사고인 동시에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가 아니라 ‘살인사건’입니다.          


대통령의 입     


이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참사에서 수백 명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과 승무원의 무책임한 행동은 사실상 살인행위”라고요. 사실 이 말은 지난 해 5월 19일에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나온 말이라 신빙성이 떨어지기는 합니다. 6월 4일 이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태도가 돌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일말의 진심이 담겨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그 당시 눈물을 흘리며 읽어 내려갔던 대통령의 담화문의 일부를 들어보겠습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건 직후에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명 구조 활동을 펼쳤다면 희생을 크게 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해경의 구조업무가 사실상 실패한 것입니다. 그 원인은 해경이 출범한 이래, 구조·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하고, 수사와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해 온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해경의 몸집은 계속 커졌지만 해양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고, 인명구조 훈련도 매우 부족했습니다. 국민안전을 최종 책임져야 할 안전행정부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해경을 지휘 감독하는 해수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 (중략) …
이번 사건은 오랫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의 관행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소에 선박 심사와 안전운항 지침 등 안전관련 규정들이 원칙대로 지켜지고 감독이 이루어졌다면 이번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해운사들의 이익단체인 해운조합에게 선박의 안전관리 권한이 주어지고, 퇴직관료들이 그 해운조합에 관행처럼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 선박 안전을 관리․감독해야 할 정부와 감독 대상인 해운사들 간에 이런 유착 관계가 있는 한, 선박 안전관리가 제대로 될 수 없었던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20년이 다된 노후선박을 구입해서 무리하게 선박구조를 변경하고, 적재중량을 허위로 기재한 채 기준치를 훨씬 넘는 화물을 실었는데, 감독을 책임지는 누구도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민관유착은 비단 해운분야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수십 년 간 쌓이고 지속되어 온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중략) …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이번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 박근혜, <대국민 담화문>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믿어지시나요?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전혀 믿어지지 않지만 어쨌든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담화문 속에 언급된 해경, 안전행정부, 해수부, 해운조합, 대통령은 모두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요.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의 개혁과 대변혁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남은 우리들의 의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이게 세월호 사건 직후 팽목항을 방문한 것 말고는 세월호 유가족을 단 한 번도 만나주지 않은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에요.

         

이제 그만하라고?     


지난 겨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습니다. 조그만 강이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아담한 마을에 사시는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의 사랑과 이별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할머니가 장터에 가서 여아 내복 다섯 벌과 남아 내복 한 벌을 구입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막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손주, 아니 증손주의 내복을 사는 건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주 먼 옛날, 그러니까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인 시절에 사고로, 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자신의 아이를 위해 내복을 산 거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미 한참 전에 죽은 자식인데. 영화를 계속 보니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잦아지자 직감적으로 할아버지와 이별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기침으로 쇠약해진 할아버지에게 내복을 꺼내 보이며 울면서 말합니. 할머니는 죽은 자식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살았을 적에 내복을 못 입힌 게 평생 마음에 걸린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저 세상 가서 우리 애들 만나면 꼭 내복 입혀주세요."

   

50년이 넘어도 자식의 죽음은 잊히지가 않는 겁니다. 바로 부모의 마음이죠. 저도 딸이 있다 보니 그 마음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엄마, 아빠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신경질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롱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가족이 벼슬이냐고요. 벌써 1년이나 지나지 않았냐고요. 세금 도둑이라고요. 그분들의 마음을 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거지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안다면요. 자식을 가진 엄마, 아빠의 심정이라면요.          


금요일엔 돌아오렴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금요일만 되면 수학여행을 마치고 곧 돌아오지 않을까, 현관문을 두드리며 엄마! 아빠! 라고 외치지 않을까 기다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엄마와 아빠들 말입니다. 그 분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습니다. 자신의 딸이, 아들이 침몰하는 뱃속에서 추위에 떨며, 두려움에 떨며 엄마, 아빠를 불렀을 생각에 자다가도 가슴을 치고 밥을 먹다가도 통곡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보시지 않았나요? 배가 가라앉기 전 선장과 일부 선원들이 구조되는 장면을요. 바로 그 시각에 승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되기만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 중에는  고향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 아줌마도 있고 오랫동안 고생한 아내를 위해 큰 맘 먹고 첫 제주여행을 계획한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부푼 꿈을 안고 제주도로 이사를 하는 가족도 있었지요. 어떤 엄마는 행방이 묘연한 어린 아들에게 입혀주려고 구명조끼를 계속 들고 있었답니다. 울면서요. 여러분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이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믿으실 수 있겠어요?

   

자식의 어이없는 죽음과 마주한 수많은 엄마들 중 한 엄마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단원고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하자, 동아리 친구들과 단체 카톡방에서 ‘다들 사랑해’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다 용서해줘’ 등의 문자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다독였던 김수현군의 엄마가 쓴 글입니다.    

 

수현아! 엄만 요즘 바빠. 그동안 너무 사회에 관심이 없던 엄마는 매일 신문도 읽고 책도 읽고 인터넷 기사도 빠지지 않고 읽으려고 애쓰고 있단다. 며칠 전 난생처음 구치소라는 데 가봤어.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촛불시위 하던 어떤 대학생 누나가 구치소에 있거든. 짧은 시간이지만 고맙고 미안한 엄마 마음 전하고 왔어. 현실에만 안주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그들은 채찍질해주는 스승이요, 나라의 희망이야. 그리고 엄마도 누군가를 위해 촛불 들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자극제이기도 하고….

며칠 전 분향소를 지나오는데 친구들 사진이 나오더라. 눈물이 쏟아졌어. 우리 아들 얼마나 그립던지…. 영원한 우리 아가 수현아. 누나랑 네가 보고 싶어 정말 많이 울었어. 아빠는 새벽마다 흐느끼곤 하셔. 혹시 엄마도 울면 아빠가 더 슬퍼할까 봐 우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잘 안된다. 햇감자가 나오기 시작하니 감자를 좋아했던 네 생각이 나 눈물이 더 나고 고기가 냉장고에 그냥 있는 것만 봐도 슬프고…. 운전하다가도 복받쳐 운 것도 한두 번이 아니야. 근데 엄마가 너무 울면 우리 아들 싫어할 것 같아 웃으려 노력하지만 잘 안되는구나.

아들! 정말 보고 싶고 그립다. 근데 우리 아들 바쁜가 보다. 엄마 꿈에 놀러 올 시간도 없는 거 보면. 오늘만큼은 꼭 엄마 꿈에 나타나 주렴. 한 번만 안아 보게.     

- 박수현군 엄마, <햇감자 나오니 네 생각나 아들이 싫어할까봐 눈물 참아도 잘 안되네>          


수현이의 엄마는 아들의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아들의 수첩에서 버킷 리스트를 발견합니다. 그 버킷 리스트에는 ‘아빠 수제 기타 만들어 드리기’, ‘자서전 내보기’, ‘재즈 피아노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진정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기’,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책 2000권 읽기’, ‘유명한 뮤지션들 싸인 받기’, ‘나 혼자서 세계 여행하기’ 등이 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수첩을 발견한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시간은 멈춰버렸습니다. 수현이는 이제 이곳에 없고, 수현이의 버킷 리스트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습니다.  


작가기록단, <금요일엔 돌아오렴>

        

잃어버린 시간     


수현이의 아빠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수현이가 세월호 침몰 당시 배 안에 있던 학생들의 대화 등이 담긴 동영상을 휴대전화로 찍었던 겁니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니 사고 당시 세월호 내부 상황 중 유가족들이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이 동영상을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수현이가 남긴 동영상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동영상 속에는 수현이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수현이의 친구들과, 담임선생님과, 덥다고 보채는 아기의 울음소리까지 등장합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08:52 아! 기울어졌어! (선내방송-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우려사고 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짜 침수되는 거 아니야? 떨리는 거 장난 아니야. 막 이쪽으로 쏠려. (선내방송-방 안에서 나오시면 위험하오니 안전우려사고 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내리고 싶어. 진짜 진심이야. 상황이 어때? 그래도 더 안내려가지. 야, 더 쏠리는데? 쏠림이 장난이 아니야. 그냥 힘을 빼면 이쪽으로 가.

08:53 좀 조용히! 조용히! (선내방송-현재 있는 자리에서 이동하지 마시고…) 아. 뭐야. 빨리 구하라고! 진짜 죽는 거 아냐? 창가 밖이었으면 우린 죽었어. 흔하지 않은 일 아냐? 야! 팔 후들거려. 더 기울어져! 더 기울어진다고? 장난 하냐? 위급 상황이 아니야. 이건 실제라고. 누가 구명조끼 좀 꺼내 와라.

08:54 혹시 모르니까 꺼내 놔. 꺼내 놔야 될 것 같아. (선내방송-다시 한 번 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손님이 계시는 위치에서…) 아! 살려줘! 우린 죽기 싫다고! 물이 들어오긴 하나요? 기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08:55 우리 구명조끼 꺼냈다. 우리 지금 이건 실전이라고. 장난이 아니야. 다 안정되고 있다. 아니야. 아까보다 괜찮아진 것 같아. 그런데 왜 갑자기 배가 기울어진 거야? 이상한 냄새 나. (선내방송-선내 계신 분들은 움직이지 마시고 잡을 수 있는 봉이나…) 야 이거 뉴스에 뜨는 거 아냐? 같이 있자.

08:56 삶은 달걀 냄새 나. 우리 구명조끼 꺼냈다. 적응. 적응 완료. 떨어지지 말라니까. 나 진짜 내려가고 싶다. 여기 무섭거든? 난 내려가지 않는 것을 추천할게. 우리 죽기 싫어요. 죽기 싫어요. 죽어도 난 죽기 싫다. 지금 이 상황은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아빠 나 죽기 싫어. 진짜 물이 들어오면 우린 나가야 돼. 엄마한테 전화해 볼 까? 엄마 나 마지막일 수… (선내방송-절대 움직이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08:59 나 구명조끼 입는다. 나도 입어야 돼. 진짜 입어야 돼. 나도 입어야겠다. 야. 너도 입어. 너도 입을래? 이런 거 사진 찍어야 돼. 이런 걸 마지막 기념으로 찍어. 이렇게 찍어줘. 중력을 무시한 사나이 하면서. 엄마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지금 배가… 야. 우리 진짜 추락하는 거 아니야? 지금 우리는 살아야 되겠다.

09:00 구명조끼 다 던져.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진짜. 진짜 침몰해요? 구명조끼도 주네. 구명조끼 입어 너도.

09:01 구명조끼 입어 얘들아. 없어 이제? 구명조끼? 어. 너 어떻게 하냐? 지퍼가 안 잠겨. 나도 지퍼 고장 났어. 여기 구명조끼 한 개 없어요. 아기용 입어. 아기용. 구명조끼 없어. 받아와야 돼. 네 꺼? 응 받아와. 내 거 입어. 너는? 나? 가져와야지. 받아와.

09:02 다섯 개만 더 줘봐. 하나도 없어? 끝에 봐봐. 끝에. 던져. 다 던져. 왜 없어. 있는데. 여기 밖에 입었어? 밖에 애들 안 입었는데? 밖에 애들 안 입었어. 지금 밖에 상황, 베란다에 있는 애들은 상황을 몰라. 선장은 뭐 하길래. 아니 뭐가 걸린 것 같아. 타이타닉 된 것 같아. 전화 안 터진다고? 어 안 터져. 아! 망했다. 마지막 할 말을 남기고 죽어야 될 것 같은데.

09:03 자 지금 남겨. 녹음해. 지금 동영상이야. 살 수만 있다면 엄마 아빠 사랑해요. 자 그 다음엔 너야. 엄마. 아빠. 아빠. 아빠. 내 동생 어떡하지? 내 동생만은 절대로 수련회 가지 말라고 해야겠다. 다 됐어? 너네 다 됐냐고? 너는 왜 안 입냐? (담임선생님-다 입었어? 그쪽 다 입었는지 확인해봐.) 네. 다 입었어요.

09:04 나 그러고 보니까 나쁜 짓을 거의 안 했는데… 야. 이거 뉴스에 뜬다. 내가 100퍼센트 확신한다. 이거 뉴스에 뜬다. 안 떠 이런 걸로. 침몰 안 하면. 지금 침몰하는데? 침몰 안 할 거야. 안 해야만 돼.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둘 다 사랑해. 아들이 고합니다. 이번 일로 죽을 수 있을 거 같으니 엄마 아빠 사랑해요. 마지막이야. 나 지금 기울어진 거 보이지? 고마워.     

- 박수현, <마지막이야. 나 지금 기울어진 거 보이지? 고마워>     


우리가 그 상황이라면 어땠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섭지만, 너무나 무섭지만 곁에 있는 동료에게 구명조끼를 전했을 거에요. 겁에 질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상황에서도 내 가족들을 생각했을 거에요.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을 거에요.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을 거에요.

   

우리가 유가족들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그런 상황이라면 다 똑같을 거에요.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서명을 받으러 전국을 돌아다녔을 거에요. 그런 상황이라면 농성을 하고 단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라면요. 사랑하는 나의 딸이, 나의 아들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요. 다시 얘기하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분명하게 해경, 안전행정부, 해수부, 해운조합 등에 책임이 있고 최종적인 책임은 대통령인 자신에게 있다고 얘기했어요. 입으로는요.         


다시 그 시간이 돌아온다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교사로서 학생들과 세월호에 탔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똑같은 사고가 반복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선내 방송을 따라야 하는 걸까? 아니면

제 살 길은 스스로 찾게 해야 하는 걸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우리 교육이 잘못되어 학생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다가 죽었다고요. 평소에 좀 놀던 애들은 다 살았다고요. 선내 방송대로 따르지 않은 어른들은 구조되었다고요. 매우 무책임한 말이에요. 그 분들께 되묻고 싶어요.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말은 결국 각자도생, 그러니까 내 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려요. 뭐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 사람의 자유겠지만 혀를 끌끌차며 학생 탓을, 교육 탓을 하는 것은 좀 어이가 없어요. 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그 상황에서 학생들은, 선생님들은 이성적으로 최선의 선택을 한 거에요.

   

하지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한 어른들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에요. 저는 자기만 살겠다고 제복까지 벗어던지고 속옷 바람으로 탈출한 세월호 선장의 모습을 도처에서 발견합니다.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무능과 과실을 감출 수 있을까 전전긍긍 하던 해경의 모습을 도처에서 발견합니다. 그들은 명령을 내릴 줄은 알지만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해요. 다른 이들의 책임을 추궁할 줄은 알지만 자신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알지 못해요.

   

문제는 정부조차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거에요.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대로 우리는 이 정권의 민낯을 보았어요. 무시무시하면서도 비참한 민낯을요.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어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보았어요.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세월호에 탔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요? 선내 방송을 따라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내 살 길은 내가 찾아야 하는 걸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용기를 내서요.     


당신의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

책임질 수 없다면

그 마이크를 나에게 넘겨라.     


우리를 구조할 수 있는가?

구조할 수 없다면

우리를 가로막지 마라.    

 

당신의 뒤에서 애타게 손을 뻗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우리를 구조하게 하라.     


이제부터 세월호는 우리가 지휘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조할 것이다.

당신은 뒤로 빠져라.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기나긴 슬픔 속에서 잠깐이나마 위로와 안식의 시간을 선사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 드릴께요. 그건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수현이의 버킷 리스트에 관한 이야기에요. 이룰 수 없는 슬픈 꿈이 되어버릴 줄 알았던 수현이의 버킷 리스트가 조금씩 실현되어 가고 있어요.

  

수현이의 아빠와 엄마와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책 2000권 읽기’를 틈틈이 해나가는 중이랍니다. 수현이가 살아있다면 이제 고3이겠죠. 꿈을 이루기까지 아직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어요. ‘유명한 뮤지션들 싸인 받기’도 이루어졌어요. YB 윤도현, 국카스텐, 김민기, 박효신 등을 비롯하여 백여 명도 넘는 뮤지션들이 수현이를 위해 싸인을 전달했습니다. 부활의 김태원은 자신의 싸인과 함께 수제 기타 한 대를 수현이 아빠 앞으로 보내왔다네요. 이로써 ‘아빠 수제 기타 만들어 드리기’의 꿈도 이루어진 것이지요. 아직 남아있는 꿈들도 있습니다. ‘나 혼자서 세계 여행하기’는 이제 대학생이 된 누나가 맡았어요. 수현이를 대신해서 누나가 세계 방방곳곳을 누비고 다닐 거에요. ‘자서전 내보기’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이 이뤄진 뒤, 수현이 아빠가 그 과정을 정리한 것에 수현이의 일기를 묶어서 대신하기로 했구요.


여러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그건 뭘까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의 아들, 나의 딸이 다시 돌아오는 것.

아니, 그럴 수 없다면 단 1분 만이라도 한 번 안아보는 것.

그동안 미안했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     


슬프게도 이 꿈은 이뤄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저는 슬픔에 빠진 유족들을 위해 우리의 위로와 약속이 담긴 버킷 리스트를 전달해주고 싶어요. 여러분과 함께요. 다음과 같은 소원이 들어 있는 버킷리스트를.     


세월호 희생자들이 왜 죽었는지 진상을 규명하는 것.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 사회를 고쳐나가는 것.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 세월호를 잊지 않는 것.     


우리 함께 버킷 리스트를 채워 봐요. 우리가 하겠다고 말해 봐요. 우리는 할 수 있어요.


이 글은 세월호 사건 1주기를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난 4월, 교내에 <세월호 추모 게시판>을 마련한 제자들과 동료 교사들을 위해, 아니 그들과 함께 읽기 위해 쓴 글이다. 이 글을 쓰고도 또 반 년이 흘렀다. 그러나 박석영 감독의 말처럼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 세월호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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